러시아 최대 미디어 그룹, '반전' 예술인 퇴출 발표
공연계에도 블랙리스트 퍼져 공연 못 하게 막아
반면 푸틴에 충성하면...방송·콘서트 출연 활발
일부 음악인들 러시아 공연 대신 해외로 눈 돌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전 메시지를 전하는 문화예술인들에게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고 영국 BBC방송이 보도했다.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방송에서 퇴출하거나 공연을 못하게 하는 작업을 시작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21일(현지시간) BBC에 따르면, 지난달 러시아 최대 미디어 기업 중 하나인 러시아미디어그룹(RMG)이 인기 있는 라디오 방송이나 음악 TV 채널에 일부 예술인들을 더 이상 출연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이 발표한 '출연 금지' 예술인 목록, 즉 블랙리스트에는 러시아의 전설적인 록그룹 아쿠아리움과 3명의 러시아 배우, 그리고 몇몇 우크라이나 음악인들이 포함됐다고 BBC는 전했다.
RMG는 당시 성명에서 "이러한 결정을 한 이유는 일부 음악가들의 거친 언사 때문"이라며 "청취자에 대한 존중이 최우선인데 일부 음악인들의 오만한 태도에 계약을 해지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사실상 방송계에서 퇴출하겠다는 의미다.
사실 아쿠아리움은 러시아의 정치적 압력에도 할 소리는 하는 록그룹으로 통한다. 이 그룹의 전설인 보리스 그레벤시코프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러시아의 침공을 "미친 짓"이라고 격하게 반응하기도 했다. 그는 BBC 인터뷰에서도 "나는 인생의 절반을 일종의 '금지' 속에서 보냈다"며 "(19)70년대에도, 80년대에도 그랬다. 그 시절에 그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방송계에서 유출된 블랙리스트가 러시아 공연계에도 나돌며 문화예술인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가수 이반 도른은 러시아인들을 향해 "이 참사를 끝내고, 이 살인적 전쟁에 참전하지 말라"는 내용의 동영상을 SNS에 게재했다. 며칠 뒤 그는 RMG에 의해 출연 금지 리스트에 올랐고, 이 블랙리스트는 공연계로 퍼져 전쟁을 반대하는 음악인들의 공연을 금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도른씨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게 그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블랙리스트에 오르기 전에도 러시아와의 그 어떤 협력도 불가능했다"며 "우크라이나 국가를 말살하고 수천 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하고, 전체주의 체제를 구축하고, 반대 의견을 냈다는 이유로 자국민을 감옥에 집어넣고 있는 상황에서 침략자들과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라고 말했다.
반면 러시아와 푸틴 정부에 충성하는 예술인들은 활동에 아무런 제약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 음악인들은 지난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출연한 화려한 TV 콘서트 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 8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에 초대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공연에도 공공연한 비밀이 존재했다. 크림반도 합병 기념 콘서트에 참석해 러시아 국기를 흔든 수만 명의 청중이 사실은 "그곳에 있어야 한다는 압력을 받았다"고 BBC가 보도했다.
블랙리스트 오른 예술인들...해외 공연으로 대신해
그러나 누가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는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BBC는 보도했다. 하지만 음악업계 관계자는 그런 문서가 드문 일이 아니라고 전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BBC에 "블랙리스트에 대한 압력은 일반적으로 지역 보안 서비스에서 비롯되며 관리들이 콘서트홀에 나타나 폐쇄 및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위협한다"고 폭로했다.
이러한 영향 때문에 일부 음악인들은 해외에서 공연하는 것을 택하고 있다. 러시아 언론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러시아 래퍼 옥스시미론은 러시아 투어 공연을 연기하고 대신 우크라이나 난민 돕기 기금을 마련하는 해외 자선 콘서트를 열었다. 그 결과 그는 이스탄불 공연에서 3만 달러(약 3,600만 원) 이상 모금했으며 이번 주 런던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옥스시미론은 러시아 투어 공연 연기를 발표하면서 "러시아 로켓이 우크라이나에 떨어지는 동안 키이우 주민들은 지하실이나 지하철역에 숨고, 일부 사람들은 죽어가는 상황에서 청중들에게 즐겁게 할 수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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