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격 위치 '합의 위반' 기준 한참 못 미쳐
인수위 "합의 정신 위배했다는 뜻" 수습
'안보 우려 불식' '합의 파기 포석' 관측도
“방사포는 9ㆍ19 (남북군사합의) 위반 아닙니까? 명확한 위반이죠?”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 회의실. 첫 인수위 간사단 회의를 주재하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불쑥 북한이 쏜 ‘방사포(다연장로켓포)’ 얘기를 꺼냈다. “올해만 해도 11번째 (북한 도발)인데, 방사포는 처음”이라며 “빈틈없이 잘 챙겨달라”고 당부했다. 감염병 대응 및 공급망 파장 대응책을 얘기하다 갑자기 던진 말이었다.
윤 당선인은 북한이 앞서 20일 평안남도 숙천군 일대에서 서해상으로 발사한 방사포 4발을 문제 삼았다. 당시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긴급 회의를 열어 ‘굳건한 대비 태세’를 강조했지만, 군 당국은 방사포 사격 사실은 공개하지 않는 관례에 따라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그런데 이틀이 지나 윤 당선인이 방사포를 고리로 돌연 ‘9ㆍ19 군사합의’를 언급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윤 당선인의 발언은 사실과 다르다. 9ㆍ19 합의는 2018년 9월 19일 남북이 발표한 ‘평양공동선언’의 부속합의다. 양측의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해 지상에서는 군사분계선(MDL)으로부터 5㎞ 이내, 해상에서는 서해 남측 덕적도~북측 초도 수역에서 포 사격을 중지하는 방안이 핵심이다. 하지만 북한이 방사포를 사격한 숙천은 MDL에서 200㎞, 초도에서는 120㎞ 정도 떨어져 있다. 낙탄 지점도 초도 이남의 ‘해상완충구역’에는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욱 국방부 장관 역시 이날 국회에서 관련 질의에 “(합의 위반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논란이 일자 “북한이 새해 들어 10차례나 미사일을 발사한 상태에서 방사포를 발사했으므로 긴장고조 의도가 명백해 보인다. 9ㆍ19 합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라며 수습에 나섰다. 다만 해명이 맞더라도 ‘합의 파기’가 아닌 ‘합의 파기 위협’인 만큼, 사실관계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사실 여부를 떠나 윤 당선인의 발언은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해석이 많다. 사건 발생 이틀 뒤 다시 거론한 것도 그렇고, 파급력이 큰 9ㆍ19 합의를 조준한 것에서도 무언가 메시지를 보내려는 속뜻이 느껴진다. 우선 대통령실을 국방부로 옮기는 계획을 둘러싸고 군 당국과 청와대는 물론 여론도 ‘안보 공백’을 우려하자 “청사 이전과 관계없이 안보 상황을 잘 살피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이 참에 탐탁잖게 여겨온 9ㆍ19 합의를 파기하겠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는 대선후보 시절부터 9ㆍ19 합의에 대해 “북한이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국민적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등 비판 일색이었다. 인수위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대선 캠프 실무진은 남북 간 기존 합의는 존중하겠다는 입장이었다”면서도 “대선 승리 후 윤 당선인의 생각이 한쪽으로 확실히 기울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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