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도시는 생명이다. 형성되고 성장하고 쇠락하고 다시 탄생하는 생로병사의 과정을 겪는다. 우리는 그 도시 안에서 매일매일 살아가고 있다. 과연 우리에게 도시란 무엇일까, 도시의 주인은 누구일까. 문헌학자 김시덕 교수가 도시의 의미를 새롭게 던져준다.
<25> 부천 역곡동 안동네와 박희자 고택
오늘은 경기 부천시 동쪽 끝에서 철거될 상황에 처한 전통마을과 기와집에 대해 말하려 한다. 서울 구로구 온수동과 경계를 맞닿은 부천시 역곡동의 안동네 마을에 남아 있는, 100년 넘은 기와집이다.
5대를 이어온 고택
현재 이 역곡동 고택을 지키고 있는 분은 박희자 선생이다. 선생은 증조부인 박주순이 1894년에 이 집을 지었고 본인에 이르기까지 5대에 걸쳐 집안 여성들이 주도적으로 집을 지켰다고 증언한다. 이 부분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 고택을 문화재로 등록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한때 이 집에 친일파가 살았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집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류성룡 선생이 2021년 2월 3일 서울건축사신문에 투고한 '벌응절리 한옥의 위기'라는 글을 읽게 되면서부터였다. 벌응절리(伐應節里)는 역곡동 북쪽 개발제한구역을 가리키는 옛 지명이다. 벌판의 언저리에 있다는 벌언저리에서 발음이 바뀌어서 벌응절리가 된 것으로 생각된다.
약 500년 전 형성된 이 마을에서도 특히 이 역곡동 고택은 "1910년 지적원도 시절부터 2020년 지적도에 이르기까지 번지수도 그대로이고 땅의 경계선과 세세한 모양까지 일절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도농복합도시나 농촌 지역에서는 이런 사례가 흔하지만, 부천시에서는 이런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역사도시 부천에 역사의 흔적이 없다
부천은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살아온 흔적이 남아 있는 오랜 역사의 도시다. 하지만 양귀자 선생의 소설 '원미동 사람들'로 상징되듯이 서울에 직장을 둔 시민들의 베드타운으로서, 그리고 경인공업지대의 중간 지점으로서 일찍부터 개발되다 보니, 뜻밖에 전통시대의 마을이나 집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얼마 남지 않은 전통시대의 마을과 집도 신도시·택지개발 사업으로 인해 꾸준히 파괴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이 벌언저리 마을은 전통마을 구조를 남기고 있는 부천의 몇 안 되는 동네 가운데 하나다.
역곡역 북쪽의 주택단지가 끝나면서 벌응절리 마을이 시작되는 초입에는 현대 한국의 농촌계몽운동을 상징하는 4H 비석이 서 있다. 전통시대의 장승이 그러했듯이, 전국의 농촌 마을에서는 4H 비석을 마을 입구에 세운다. 4H 비석을 지나면, 이제는 폐지된 행정구역이 '부천시 남구'라는 글자를 남긴 가옥조사표가 붙은 기와집이 나타난다.
1987년 지도에 '안동네'로 표기되어 있는 이 역곡동 마을은, 김포공항 남쪽의 대장동과 함께 부천시에서 전통시대 마을과 주택의 형태를 남기고 있는 양대 축이다. 역곡동 안동네는 부천역곡 공공개발사업으로 철거될 예정이고, 안동네와 마찬가지로 마을 어귀에 4H 비석이 서 있는 대장동 마을도 3기 신도시 대상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 역곡동 안동네는 공공주택사업이 완료되면, 부천의 새로운 중심으로 자리매김한 7호선 연선 지역과 서울 양천구의 중간에 자리한 지역으로서 주목받을 것이 예상된다. 그렇기에 부천시는 이 지역의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개발 계획에서 안동네와 역곡동 고택은 철거가 예정되어 있다.
철거 위기 고택...공원화로 보존?
모든 택지개발에는 공원용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안동네는 벌응절리라는 마을 이름처럼 벌판과 춘덕산, 세럴산, 원미산이 맞닿는 경계 지역에 위치해 있다. 이 건물의 보존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어차피 공원용지를 지정할 거라면 이 역곡동 고택 주변을 원형대로 남겨도 되지 않겠는가라고 호소하고 있다. 서울의 돈의문 뉴타운 사업 때 옛 마을 블록 일부가 공원용지로 보존되어 '돈의문 마을박물관'이 되었고, 경기 양주 고읍지구 택지개발사업 때에도 죽산안씨연창위종가 고택 주변이 녹지공간으로서 살아남은 사례가 있다.
이 역곡동 안동네와 고택을 보면서, 그간 수도권에서 일어났던 몇 가지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례는 일산 신도시를 개발할 때 철거되지 않고 살아남은 '일산밤가시초가'다. 이 일산밤가시초가는 흔히 볼 수 있는 'ㄱ'자나 'ㅁ'자가 아닌 'ㅇ'자 형태를 이루고 있다. 중부 지역의 차가운 겨울을 이겨내기 위한 고양 지역 주민들의 아이디어로 보인다.
예전에는 이런 형태의 집이 좀 더 많았던 것 같다. 사진가 김기찬 선생의 '잃어버린 풍경 1967-1988'에는 1978년 6월 4일 서울 은평구 수색동(화전)에서 찍었다고 하는 초가집 건물 사진이 실려 있다. 이 사진에 실린 초가집은 일산의 밤가시 초가와 똑같은 형태의 'ㅇ'자 한옥이다. 김기찬 선생의 설명을 보자. "수색에서 버스를 내려 화전을 지나 행주산성 쪽으로 가다 보면 초가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 나타난다. 그 마을에서 'ㄱ'자도 'ㄴ'자도 아닌 'ㅇ'자 초가집을 보았다. 다시 논틀밭틀을 걸어가면 뚝길이 나오는데, 뚝 위에서 김포평야 쪽을 바라보니 강물이 햇살에 반짝거리며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 건물은 현재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일산밤가시초가는 살아남았고
지어진 지 150년쯤 된 일산밤가시초가는 두 번의 철거 위기를 겪었다. 한 번은 1970년대에 지붕을 개량하고 초가집을 없애자는 새마을운동이었고, 또 한번은 일산 지역을 통째로 갈아엎는 일산 신도시 개발이었다. 조상들로부터 이 집을 이어받은 이경상 선생은 새마을 운동 때에 낫과 호미로 공무원들을 물리치고 밤가시초가를 지켰다. 서슬퍼런 박정희 정권의 압박을 이겨낸 이경상 선생은, 그로부터 20년 뒤인 노태우 정권 때에도 건설부와 토지공사에 맞서 공중 농성을 벌여 이 밤가시초가 한옥을 지켜냈다(2018년 3월 30일 자 고양신문 '또아리 지붕 위로 둥그런 하늘이 열리네').
개발주체들에게는 이경상 선생이 도시화에 반대하는 시대착오적인 인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일산밤가시초가가 살아남게 된 지금, 고양시는 이 한옥을 청소년들의 교육의 장으로 잘 활용하고 있다. 일산밤가시초가를 지킨 이경상 선생과 마찬가지로, 부천 역곡동 고택의 주인인 박희자 선생도, 본인이 이 집을 지켜내서 부천의 청소년들에게 부천의 전통 유산을 남겨주겠다는 분명한 자각을 하고 계신 것으로 보였다.
한양주택은 결국 사라졌다
한편, 현재 '진관 뉴타운'으로 개발이 완료된 서울 은평구와 고양시 덕양구의 경계지역에는 한양주택이라는 단독주택단지가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북한 측 인사들의 한국 방문에 대비해서 통일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철거민들을 집단 이주시킨 마을이다. 이 마을 주민들은 마을을 꾸미는 데 열심이어서, 1996년에는 서울시에서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명박 시장 때 은평뉴타운 사업이 추진되면서, 이 마을도 수용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한양주택 사람들은 자신들의 마을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2006년 1월 근대문화유산 신청서를 문화재청에 제출했다. 자신들의 행동이 '알박기'로 매도되는 것을 막기 위한 행동이었다. "2001년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지정 제도가 도입된 뒤 주민 스스로 신청서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당시의 보도에서는 전하고 있다(한겨레21 '한양주택, 제발 그대로 놔둬라' 2006년 2월 8일 자). 주민들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한양주택은 철거되었다.
역곡동 고택의 운명은
2021년, 역곡동 고택은 내셔널트러스트 시민공모전 '이곳만은 꼭 지키자'의 최종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시민을 위해 꼭 지켜야 할 건물이라는 뜻이다. 부천시의 뜻있는 시민들은 소설 '원미동 사람들'이 워낙 히트한 바람에 부천의 아이덴티티가 서울의 베드타운 정도로 굳어진 것을 아쉬워한다고 듣고 있다. 그렇다면 전통시대 부천의 역사성을 전하는 건물과 그 주변의 옛 마을길 약간 정도는 남길 수도 있지 않을까? 건물 뒤편의 산 위에까지 빼곡하게 아파트를 지을 게 아니라면 말이다.
구한말 부천과 고양에 지어진 두 채의 한옥은, 지난 100여 년간 경기도가 얼마나 급격한 도시화와 인구증가를 겪었는지 증언한다. 그리고 그러한 급변을 이겨내고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옛 시대의 흔적은 무엇 하나 우연히 전해진 것이 없음을 알려준다. 그 흔적 하나하나는 모두 이경상 선생이나 박희자 선생처럼 강한 의지를 지닌 사람들에 의해 겨우 살아남은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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