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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해병대를 탈영하면서까지 우크라이나에 가려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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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해병대를 탈영하면서까지 우크라이나에 가려 했나

입력
2022.03.28 14:00
수정
2022.03.28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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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폴란드 머물며 귀국 거부한 해병대 탈영병
"우크라이나 민간인 무차별 학살 등 돕고 싶어"
군인 신분 공항서 무사통과됐나..."네" 답해
"부사관 준비 이유로 선임들에게 괴롭힘당해"
"부대 내 신고했지만...들은 체하지 않고 덮어"

러시아군 포격으로 무참히 파괴된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의 한 아파트 앞에서 27일 발렌티나 데무라(70) 할머니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이 할머니는 다른 주민들과 함께 아파트 지하실에서 대피 생활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군 포격으로 무참히 파괴된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의 한 아파트 앞에서 27일 발렌티나 데무라(70) 할머니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이 할머니는 다른 주민들과 함께 아파트 지하실에서 대피 생활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휴가 중 우크라이나 국제의용군에 합류하겠다며 입국을 시도하려다 행방이 묘연했던 해병대 탈영병 A씨가 현재 폴란드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그는 폴란드로 무단 출국해 우크라이나 국경지대까지 접근했으나 한국 외교부의 조치로 검문소를 통과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탈영병 신분으로 우크라이나행을 택한 게 군 부대에서 부조리한 일을 당했던 게 큰 원인이 아니었느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A씨는 군에서 선임 상사의 괴롭힘 등을 부대 내 신고했지만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A씨는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전화 인터뷰를 하고 귀국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일단 제가 온 목적이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서였는데 한국에서는 법을 어기고 온 건 사실"이라면서도 "귀국할 시간에 한시라도 1분이라도 빨리 (우크라이나로) 들어가서 (돕겠다는) 그런 생각을 가져서 귀국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휴가를 나왔다가 우크라이나행을 결심하게 된 계기에 대해 "민간인들이 죽어나가는 상황을 계속 영상을 통해 봤다"며 "뉴스에서도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어린이집을 포격했다거나 민간인들을 무차별하게 학살하고 있다는 등 진짜 한국법을 어기더라도 일단 가서 도와야 된다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군인 신분으로 무단 출국해 탈영병 신세가 된 것에 "일단 마음에 걸리기는하고 이게 잘못됐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데 군인 신분으로서, 아무리 탈영한 군인이어도 같은 사람인데 죽어나가는 게 좀 마음이 아프고 걸린다는 게 있다"고 했다. "그래서 뭐 탈영이라는 그런 범죄를 저지르고 일단 오게 됐다"고 덧붙였다.

군인 신분으로 공항에서 걸리지 않았느냐는 질문엔 "네"라고 답했다.

A씨는 우크라이나 검문소를 통과하지 못했던 것을 "외교부 쪽에서 대사관에 막아달라고 요청을 했었나보다"며 "그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갔다가 넘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고 털어놨다.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까지 들어가는 경로도 험난했다고 전했다. A씨는 우크라이나 국경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잠들었다가 버스 기사와 함께 탔던 사람들이 깨웠고, 외국인 신분이라 직접 들어가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했다. 이후 A씨는 국경을 걸어 들어가려다 "폴란드 경찰한테 처음에 제지를 받았고, 또 지금 들어가면 죽거나 마찬가진데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했다"며 "폴란드 경찰이 민간인 차를 잡아줘 저를 부탁했고 그분 차로 국경으로 들어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부사관 준비한다는 이유로 기수열외받아...신고까지 했지만"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모습. 뉴시스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모습. 뉴시스

A씨는 평소 해병대 활동에 대한 자부심이 아주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이에 대해 "복무한다는 자체에 자부심 있었다"며 "거칠고 더 강하고 더 사납고 그런 곳이니까, 제가 거기를 거쳤다는 것 자체가 일단 자부심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A씨는 모바일 채팅방에 "군대 갔다가 부조리란 부조리는 다 당해봤다"고 군 생활에 대한 글을 남겼다. 그는 이에 대해 "처음에는 선임들한테 예쁨을 많이 받았고 인정받았던 해병이었다"고 했다. 그러다 입대하기 전 수술을 받은 다리 때문에 부사관을 준비했고 선임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아무래도 병사들한테는 부사관 이미지가 좋지는 않으니까 그때부터 '너는 우리의 주적이니까 말도 걸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선임 중 한 분은 '얘 그냥 기열(기수열외) 처리해라', 기열이 약간 투명인간 같은 느낌인데 기열 처리해라(한 것이다). '너희 말하다 걸리면 죽여버린다'라는 말을 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솔직히 말해서 부사관을 준비한다는 이유로 당하는 게 억울하기는 하더라"고 토로했다.

'부사관을 준비한다는 이유로 왜 따돌림을 당하나'라는 질문에 "저도 그거는 아직까지 궁금하다. 왜 제가 당하고 있었는지"라고 말했다.

A씨는 부대 내 신고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처음에는 마음의 편지를 썼었고 간부들이 그걸 덮더라. 너무 힘들고 선임이 나를 힘들게 한다고 (적었다)"라며 "그런데 부대에 대해서 경위서를 작성하게 하고 끝내더라. 저는 다른 선임들이 와서 쌍욕도 먹어보고, 기수열외시킨 선임이 '너는 사람 새끼도 아니다. 내 맞선임을 신고한 새끼다' 이런 식으로 온갖 욕을 먹었다. 숨쉬는 자체가 욕을 먹을 이유였다"고 털어놨다.


"신고했을 땐 들은 체도 않던 수사관들...폴란드까지 한달음에"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A씨는 선임 상사들의 괴롭힘에 "이거는 답이 없다고 생각을 했다"며 결국 휴가를 나와 우크라이나행을 택하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조금 깜짝 놀란 게 여기 해병대 수사관들이 찾아오기는 하는데, 제가 그렇게 신고했을 때 들은 체도 안 하던 사람들이 저 한 명 잡으러 바로 빨리 오더라. 깜짝 놀랐다"고 했다.

이어 "그러니까 부조리 같은 걸 신고하면 들은 체도 안 해 주고, 그냥 진짜 아예 사람이 얘기를 안 한 것마냥 그렇게 들은 체를 안 한다"면서 "그런데 여기 오니까 바로 잽싸게 오더라. 폴란드까지"라고 씁쓸해했다.

A씨는 부대에서 신고를 한 후에도 아무런 조치가 없어서 "아, 여기 수사관들은 사람이 아닌가 보다, 그냥 로봇인가 보다, 너무 느려서 그런 생각까지 했다"면서 "그 시간에 우리가 신고했던 걸 빨리 조치를 했었으면 뭔가 부대가 바뀌었을 건데, 그런 건 도와주지도 않고 이렇게 무작정 오니까 좀 이상하기는 하더라"고 전했다.

'군인 신분이기 때문에 무슨 일을 당하면 외교적 문제로 비화될 수 있어 우려가 크다는 걸 알고 있느냐'는 지적에 "그런 부분은 충분히 인지하고 듣기는 들었다"며 "저는 포로로 잡힐 바에는 그냥 자폭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이미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자진 귀국하는 방법을 고민해달라'는 말에 "네. 알겠다"면서 "신경 써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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