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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본드'가 될 뻔했던 백작, 살인 후 연기처럼 사라지다

입력
2022.04.01 05:3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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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루칸 백작 실종 사건

편집자주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루칸 백작이 보모 샌드라 리벳을 살해한 다음 날인 1974년 11월 8일, 런던 경찰이 사건 현장인 로워벨그레이브 스트리트 46번지 앞에 배치되어 있다. 루칸 백작의 아내 베로니카 던컨은 사건 후에도 이 집에 계속 살다가 2017년 9월 27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데일리미러 캡처

루칸 백작이 보모 샌드라 리벳을 살해한 다음 날인 1974년 11월 8일, 런던 경찰이 사건 현장인 로워벨그레이브 스트리트 46번지 앞에 배치되어 있다. 루칸 백작의 아내 베로니카 던컨은 사건 후에도 이 집에 계속 살다가 2017년 9월 27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데일리미러 캡처

2017년 9월 27일 오전 영국 런던 중심가 로워벨그레이브 스트리트 46번지. 런던 경찰엔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곳에 거주하는 할머니가 늘 산책하던 공원에 3일 동안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지인의 신고였다. 출동한 경찰이 집 문을 뜯고 들어가보니 80세 노파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망자의 이름은 베로니카 던컨. 경찰은 그녀가 파킨슨병을 진단받은 뒤 신병을 비관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세간의 시선은 그의 사인보다는 다른 곳으로 쏠렸다. 그의 다른 호칭은 ‘루칸 백작부인’. 영국 시민들은 40여 년 전 루칸가(家)에서 일어났던 참혹한 살인사건과 그와 관련된 한 남자의 실종을 다시 소환했다.


루칸 백작이 보모 샌드라 리벳을 살해한 영국 런던 로워벨그레이브 스트리트 46번지 현장. 바닥에 피해자를 담았던 마대자루와 혈흔이 보인다. 데일리메일 캡처

루칸 백작이 보모 샌드라 리벳을 살해한 영국 런던 로워벨그레이브 스트리트 46번지 현장. 바닥에 피해자를 담았던 마대자루와 혈흔이 보인다. 데일리메일 캡처


별거 아내 죽이려다 보모 살해... 종적 감춰

시곗바늘은 1974년 11월 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7대 루칸 백작’ 리처드 존 빙엄은 이보다 1년 전 베로니카와 이혼한 후 세 아이에 대한 양육권 분쟁을 벌이고 있었다. 아이들 돌보는 것을 돕겠다는 구실로 자신이 뽑은 보모를 베로니카에게 보내 감시하는 등 전 부인과의 관계는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틀어졌다. 결국 이날 술에 취한 루칸 백작은 쇠파이프를 들고 베로니카의 집에 쳐들어가 부엌에서 마주한 사람을 향해 마구 휘둘렀다. 루칸 백작의 표적은 베로니카였을 테지만, 정작 이에 맞아 숨진 사람은 보모 샌드라 리벳(당시 29세)이었다. 차를 끓여오겠다는 리벳이 오지 않자 이상히 여긴 베로니카는 아래층 부엌으로 내려갔다가 머리를 가격당했다. 가까스로 집에서 빠져나온 베로니카는 근처 술집으로 도망친 뒤 “백작이 나를 죽이려고 한다”고 소리쳤다. 출동한 경찰이 사고현장으로 갔지만 피투성이의 리벳의 시신만 남아 있었다.

피해자 샌드라 리벳. PA 자료사진

피해자 샌드라 리벳. PA 자료사진

사건 직후 루칸 백작은 이스트서섹스의 뉴헤이븐에 있는 지인 이언 맥스웰스콧의 집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그는 이언의 아내 수전에게 “아내가 살인청부업자를 고용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모친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맥스웰스콧은 추후 증언했다. 루칸 백작은 8일 오전 1시 15분경에 그 집을 떠났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사건 발생 3일 뒤 인근 뉴헤이븐 항구에서 루칸 백작의 차량이 발견됐고, 내부엔 살해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쇠파이프와 혈흔 등이 남아 있었다. 이후에도 루칸 백작은 가까운 지인들에게 “모든 정황 증거가 나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짧은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경찰은 대대적인 수색 작업에 착수했으나 허탕을 치기 일쑤였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루칸 백작이 감쪽같이 자취를 감춘 배경에는 그의 귀족 지인들이 있다고 의심했다. 이른바 ‘귀족 카르텔’이 그를 숨겨주고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증명할 길은 없었다. 영국 법원은 사건 발생 1년 뒤인 1975년, 루칸 백작이 리벳을 살해했다고 판결했다. 공격에서 생존한 베로니카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판결인데, 범인이 없는 살인사건 재판이었던 셈이다.

영국 경찰이 루칸 백작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인 뉴헤이븐의 한 골프장에서 1974년 11월 27일 경찰견을 동원한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데일리미러 캡처

영국 경찰이 루칸 백작이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인 뉴헤이븐의 한 골프장에서 1974년 11월 27일 경찰견을 동원한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데일리미러 캡처


목격담만 난무...정작 루칸 백작은 아니었다

루칸 백작 사건은 오랜 세월 세간에 오르내렸다. 그가 귀족 출신인 데다가 한때 첩보영화 ‘007 시리즈’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 역할을 할 배우 물망에 올랐던 점도 화제였던 탓이다. 잘생긴 귀족에서 살인 혐의를 받는 도망자로 전락한 유명 인사의 너무나도 완벽한 ‘실종’이었기에 끝없는 관심은 어쩌면 당연하기도 했다. 그의 행방에 대한 관심은 되레 사람들이 그를 찾아 나서게 되는 상황으로 변주했다. 실제 그를 찾았다고 주장하는 목격자들이 넘쳐났다. 호주, 아일랜드, 남아프리카, 네덜란드, 모잠비크 등 목격 장소도 대륙을 넘나들 정도로 다양했다.

사건 직후인 1974년 호주 경찰은 루칸 백작으로 추정되는 남성을 체포했지만 그는 한 달 전 자살을 위장해 정체를 숨긴 영국 국회의원 존 스톤하우스였다. 2003년 한 스코틀랜드 전직 형사는 인도 고아에 살고 있는 나이든 히피가 루칸 백작이라고 주장했지만, 그는 영국 출신 벤조 연주자로 확인됐다. 남미 콜롬비아에서도 목격담이 나와 확인한 결과, 미국인 사업가였다. 2007년 뉴질랜드 매체들은 영국 출신 노숙자 로저 우드게이트를 루칸 백작으로 지목했으나 이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 특히 우드게이트는 출신과 외모, 심지어 억양까지 비슷해 루칸 백작이 신분을 위장한 인물로 지목됐는데, 키가 백작보다 10㎝ 넘게 작아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다.

2012년에는 루칸 백작의 동생 휴 빙엄이 새로운 주장을 내놨다. 그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있다고 주장한 것인데, 휴 빙엄은 형이 실종되기 수년 전부터 일체의 교류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나 신빙성은 떨어졌다. 2020년엔 피해자 리벳의 아들 닐 베리먼이 10년 동안 루칸 백작을 추적했다며 그가 호주에서 불교 승려로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루칸 백작의 아들 조지 빙엄은 “그럴 것 같지 않다”고 일축했다. “수년에 걸쳐 수많은 목격담을 들어 보니 회의론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다. 영국 경찰도 이를 부인했다. 그가 실종된 이후 수천 건에 달하는 목격담은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2017년 루칸 백작의 아내 베로니카 던컨이 영국 ITV와 인터뷰하고 있다. ITV 캡처

2017년 루칸 백작의 아내 베로니카 던컨이 영국 ITV와 인터뷰하고 있다. ITV 캡처


아내 "자살" 추정... "호랑이 먹이" 황당한 소리도

40여 년간 그의 행방은 물론 생존 신호조차 없자 루칸 백작이 사건 이후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살아있다면 그 긴 세월 동안 단 한 번이라도 어딘가에서 포착됐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는 점은 그가 이미 숨졌고 시신을 찾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루칸의 귀족 친구였던 제임스 윌슨은 2015년 텔레그래프에 “그가 유모를 죽였다는 사실을 인식한 후 죄책감과 후회에 휩쓸렸을 것”이라며 “뉴헤이븐 절벽으로 몸을 던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 부인 베로니카도 2017년 영국 ITV와 인터뷰에서 “백작은 영국해협을 건너는 페리에서 투신하는 ‘용감한’ 결정을 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끔찍한 살인사건의 목격자이자 자신이 살해당할 뻔했던 피해자였던 것치고는 담담한 어조였다.

황당하지만 그가 스스로 ‘호랑이 먹이’가 되는 것을 선택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루칸 백작의 귀족 친구인 존 아스피널의 장모, 오스본 남작부인은 2017년 인디펜던트에 “내가 루칸 백작에 대해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그가 내 사위의 동물원에서 스스로 먹이가 되었다는 것이다”고 털어놨다. 아스피널 역시 “호랑이들에게 ‘양질’의 먹이를 줬다”고 말했지만 인디펜던트는 이러한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낮다고 봤다. 귀족 가문의 사생활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영국인들의 시선을 얼토당토않은 말을 통해 차단하려는 ‘블랙 유머’라고 인디펜던트는 진단했다.

루칸 백작과 아내 베로니카가 1963년 결혼식을 올리고 사진을 찍고 있다. 헐턴도이치컬렉션 캡처

루칸 백작과 아내 베로니카가 1963년 결혼식을 올리고 사진을 찍고 있다. 헐턴도이치컬렉션 캡처


사건 42년 후에야 법적 사망 선고... 진실은?

루칸 백작은 실종 42년이 지난 2016년 2월이 돼서야 법적으로 사망 선고를 받았다. 아들인 조지 찰스 빙엄이 법원에 청구한 백작 작위 계승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법원이 정식 사망증명서를 발급한 것뿐, 그가 사망했다는 것은 여전히 미확인 상태다. 앞서 1999년 영국 고등법원은 루칸 백작이 숨졌다고 공증했지만, 이 역시 토지 등 재산 상속을 위한 결정이었다는 점에서 2016년 선고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결정이다.

1934년생인 루칸 백작이 살아 있다면 현재 87세의 노년일 것이다. 1935년 기준 영국 신생아의 기대수명이 61세가량인 점을 고려한다면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통계는 통계일 뿐, 그가 지금도 살아있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누구도 확답할 순 없다. 사건 이후 도피든, 사망이든 그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니다. 정작 기억해야 할 부분은 루칸 백작은 전 부인을 살해할 목적으로 침입한 불청객이었고, 죄 없는 보모 리벳에게 둔기를 마구 휘둘러 살해한 살인자이며, 죄는 인정받았지만 죗값은 치르지 않은 도망자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의 아들 조지 빙엄은 2016년 백작 작위를 계승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어느 누구도 당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며 앞으로도 모를 것입니다. 그리고 법정에서 유죄가 입증될 때까지 (아버지는) 무죄라고 생각합니다.” 단죄받지 못한 범죄는 이렇게 왜곡되고 탈색된다.

김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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