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인구 급감에 노점 불황 극심
정부, 재난지원금 신청 문 열었지만
"신청 정보가 단속 정보 될 수도" 꺼려
"단속 위주 정책 대신 상호신뢰 회복을"
서울 대학가에서 18년 동안 액세서리 노점을 운영해온 A씨는 2년 넘게 계속된 코로나19 유행 여파로 지난해 말 장사를 중단하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로 유동인구가 줄어들면서 매출이 출퇴근 차비조차 마련하지 못할 만큼 떨어진 탓이다. 지병 악화 속에 부모님 병간호도 해야 했던 A씨는 건강보험료 체납으로 병원도 못 가게 되자 결국 수급자 신청을 택했다.
정부도 노점상의 어려운 처지를 감안해 이들도 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A씨는 지원금을 신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지원 조건으로 소득 증명이나 사업자등록을 요구하는 당국 방침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노점상인에겐 지원금 50만 원을 받지 못하는 것보다 신원이 드러나 단속 대상이 되는 게 훨씬 두렵기 때문이다.
소상공인 재난지원금 대상 확대에도 노점상들은 여전히 사각지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지난해 4차 긴급재난지원금을 집행하면서 노점상도 수혜 대상에 편입해 소득안정지원금을 주기로 했지만 신청률은 저조하다. 빈곤사회연대가 올해 1월 발표한 전국 노점상인 116명 대면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득안정지원금을 신청했다는 응답자는 26.7%에 그쳤다.
30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노점상인이 지원금 신청을 꺼리는 이유는 '불법 장사'라는 딱지 때문이다. 신청 과정에서 제공하는 개인정보가 단속의 빌미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서울에서 과일 노점상을 운영하는 60대 김모씨는 "구청에선 (개인정보를) 악용해서라도 재산 조회를 한다"고 주장하면서 "(개인정보가) 장사를 못 하게 추적하는 수단이 될까 봐 신청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빈곤사회연대 조사에서도 지원금을 신청하지 않은 이유로 '개인정보를 제공하기 싫어서'(38.2%)가 가장 많이 꼽혔다.
인근 상가의 견제도 노점상의 지원금 신청을 불편하게 한다. 일부 지자체는 노점상에게 '지원금을 신청하려면 지역 상인협회의 직인이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통에 노점을 적대적으로 대하는 상인회가 있는 구역에선 지원금을 신청하지 못한 사례도 발생했다. 서울에서 분식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B(64)씨는 "주변 상인들에게 '세금도 안 내면서 정부 지원을 바라면 어떡하느냐'는 비난을 많이 듣는다"며 "괜히 상인들 심사를 건드려 구청에 신고라도 당할까 봐 지원금을 받을 엄두가 안 난다"고 토로했다.
현장에선 노점상 대부분이 저소득 고령자로 거리에서 장사를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고려해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항아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사무처장은 "정부는 사업자등록을 하면 지원금을 주겠다고 하지만, 기초생활수급자가 사업자등록을 하면 수급 자격이 박탈되는 등 노점상인들이 처한 현실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생계를 빼앗길 수 있다는 노점상들의 두려움이 정부 지원책을 무용하게 만든다"며 "단속 위주 정책을 철회하고 상생위원회를 설치해 지자체와 노점단체 간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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