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21세기 당파싸움에 휘말린 작금의 대한민국을 200년 전의 큰 어른, 다산의 눈으로 새로이 조명하여 해법을 제시한다.
'정권교체' 넘어 새 시대정신 다듬어야
하드파워→소프트파워 대전환이 핵심
창의와 상상과 혁신이 넘치는 나라로
500년 전의 '대항해 시대'에는 스페인이 무적함대의 총칼을 앞세워 금, 은 자원이 풍부한 남미 신대륙을 선점하며 패권자가 되었다. 뒤늦게 경쟁에 뛰어든 영국에는 춥고 검은 숲으로 가득한 북미지역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숲속 곳곳에 살고 있던 인디언들의 공격과 긴 겨울의 추위는 스페인의 관심 밖이었다. 스페인은 눈앞의 금은보화를 위해 가차 없이 채찍을 들었고, 남미의 거의 모든 지역을 철권통치로 다스려 피의 흔적을 남기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그 후 500년이 흐른 지금 그들의 식민지는 손과 발의 근육 힘에 의존하는 힘 없는 나라로 모조리 전락했다.
반면 영국은 불리한 여건하에서 원주민들과의 반복된 갈등으로 좀처럼 전진하지 못하자 전략을 바꾸게 되었다. 바로 공존, 협력이다. 프런티어 정신으로 무장한 청교도들을 중심으로, 총칼의 위협이 아닌 창의적 사고와 상호 협력으로 새로운 도전을 장려하는 제도 정립에 방점을 둔 것이다.
이들은 177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과 동시에 창의성에 기반을 둔 과학기술 중심의 두뇌 근육을 키우는 나라를 꿈꾸었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징표가 미국헌법 제1조 8항에 담긴 특허 보호조항이다. 지식자원의 존중은 원천적으로 평등사상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당연히 자유주의를 지향해야 가능하다. 500년이 지난 지금 아메리카 대륙의 북쪽지역은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으나 더욱 막강한 소프트파워로 무장, 세계 혁신경제의 메카로 발돋움했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 '에스모 글루'의 시각에서 본 국가의 흥망성쇠는 자원의 유무나 국토의 크기에 있지 않다. 국민의 창의력을 격려하는 나라는 성장하고, 억압해온 나라는 실패의 길을 걷는다는 것이다. 손발의 부지런함을 앞세운 하드파워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는 다음 단계는 두뇌의 창의성을 거침없이 표출하게 하는 소프트파워다. 집현전을 두어 천재 과학자 장영실을 발굴한 세종대왕과 규장각을 만들어 실학자 정약용을 발굴한 정조대왕의 뜻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 연장선에서 유네스코가 한국인 최초로 다산 어른을 2012년 올해의 인물로 등재한 바 있다. 비록 그들을 발굴했던 군주가 서거하면서 더 이상 격려받지 못했으나, 그들이 남긴 자취는 하드파워가 강한 조선이 아니라 소프트파워가 강한 나라를 꿈꾼 흔적들이다.
19대 대통령까지 대한민국은 자원이 없는 상황에서 근면 자조 협동을 바탕으로 근육의 힘을 키우는 하드파워의 나라였다. 강한 교육, 문화, 제도, 금융이 자산이었다. 그러나 20대 대통령은 시대정신을 새롭게 가다듬어야 할 딱 맞는 시기에 서 있다. 상상을 혁신으로 만드는 힘을 키우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지만 세상을 쥐고 흔드는 새로운 힘을 갖게 하는 것이다.
정권교체를 대선 기간의 시대정신으로 내세웠다면, 이제 국민 창의력을 격려하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가다듬어야 할 때다.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게 하는 교육이 아니라 만들 줄 알게 하는 교육, 위험을 회피하는 융자중심이 아니라 감수하는 투자중심의 금융, 누리려고 노크하는 자에게는 지옥이지만 봉사하려고 두드리는 자에게는 천국인 정치, 원료를 제품으로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상상을 혁신으로 만드는 글로벌 경제를 향해 소프트파워가 강한 대한민국으로 대전환하는 것이다.
우리의 과학자들은 세계 10위권의 강국을 만들어 냈으나 우리의 제도는 아직도 하드파워에 머물러 있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와 소설 '대통령 정약용'을 통해 21세기로 환생하신 큰 어른, 다산의 눈으로 시대정신을 리셋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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