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보험? 육아해야 하는 A씨에겐 '그림의떡'
고용부 "개정법안 국회 통과 위해 노력하겠다"
지난달 30일 낮 12시 20분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 인근 도로에서 전기자전거를 타고 배달을 하던 40대 여성 A씨가 5톤 화물차에 치여 숨졌다. 두 아이를 홀로 키웠던 A씨는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해 올해 초 쿠팡이츠 플랫폼에 가입해 배달기사로 일해 왔다.
배달 라이더들도 작년부터 산업재해보험 가입이 의무화됐다. 하지만 A씨는 산재보험금을 전혀 받을 수 없다. 산재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되 근로시간과 소득이 일정 기준을 넘어서야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전속성 기준'을 만들어 둬서다. 열악한 처지에 놓은 배달 라이더일수록 여러 회사에서 돌아가며 일하는 현실을 외면한 것이란 지적이 일고 있다.
"사고 나도 대부분 산재보험 미적용"
쿠팡이츠 공동교섭단(민주노총 서비스일반노조 배달플랫폼지부·라이더유니온)은 1일 서울 송파구 쿠팡이츠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고인은 산재의 전속성 기준인 월소득 115만 원, 종사 시간 93시간을 충족하지 못해 산재보험 적용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쿠팡이츠는 무보험정책을 즉각 폐기하고 유가족에게 사과·보상하라"고 촉구했다.
'전속성'은 업무상 하나의 사업장에 속한 정도를 의미한다. 산재보험법은 플랫폼 종사자 등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 가운데 전속성이 강한 배달기사와 택배기사, 퀵서비스기사, 골프장 캐디, 보험설계사 등 14개 직종에 대해서만 산재보험 가입을 의무화했다.
사측이 산재보험금 50%를 부담해야 하는 만큼 업무 대부분을 특정 사업장과 함께 하는 특고에 대해서만 산재보험 가입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고용부는 전속성을 판단하는 기준도 제시했는데 올해 고시에 따르면 '월 소득 115만 원, 월 종사 시간 93시간'이다. 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산재보험에 가입하거나 보상받는 것이 불가능하다.
정부도 '전속성 폐지' 추진... 국회 문턱 못 넘어
하지만 아이를 키우며 중간중간 배달 일을 해야 하는 A씨는 주문이 많은 시간에만 제한적으로 일을 했다. 시간이나 소득 등 전속성 기준을 채우기 어렵기 때문에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없었다. 위대한 라이더유니온 쿠팡이츠 협의회장은 "회사 측이 산재보험금을 떼고 건당 임금을 지급한 뒤 매달 근로시간 등을 확인해 전속성 기준에 미달하면 산재 가입이 안 된다며 보험금을 돌려준다"며 "A씨도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노동계는 전속성 기준이 플랫폼 종사자의 산재 적용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해왔다. 여러 업체에서 물량을 받아 일하는 택배·배달기사들이 늘어나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제도라는 것이다. 작년 6월 서울시가 배달대행업체 배달원 1,01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보면 57.1%가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고용부도 2020년 이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발표했으나 관련 법안이 작년 10월 뒤늦게 발의되고, 아직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한 상태다. 고용부 관계자는 "전속성 요건으로 인해 산재보험에 가입하거나 보상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는 만큼 개정 법안이 조속히 통과돼 시행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쿠팡, 무보험 정책 일관... 안전장치 마련해야"
노조 측은 회사의 의지만 있다면 법 개정 이전에도 산재보험 적용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가령 음식 배달 플랫폼 업계 1위인 '배달의민족'은 전속 계약을 맺은 배달기사들에게는 근로시간이나 소득을 따지지 않고 모두 산재보험에 가입해준다. 민간 보험사와 시간제보험 상품을 만들어 유상보험 가입 또한 의무화했다.
홍창의 서비스일반노조 배달플랫폼지부장은 "지난해 쿠팡이츠에서 한 건 이상 배달을 한 노동자가 약 60만 명에 달하는데도 쿠팡이츠는 전속성 기준을 이유로 산재보험 적용을 제대로 하지 않고 민간 보험 가입도 의무화하지 않고 있다"며 "일하는 사람들의 최소한의 안전 장치도 마련하지 않겠다는 '무보험 정책'을 하루빨리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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