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가뭄에 단비'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았다. 지난주 찾은 충남 태안군 소원면 파도리해수욕장에서 만난 봄비를 두고 하는 말이다.
계절로는 완연한 봄이지만 여전히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한 날씨인 데다 비까지 내려서인지 제법 넓은 백사장에 사람의 인기척을 찾을 수 없는 한적한 풍경이 펼쳐졌다. 가끔씩 밀려오는 파도 소리만 정적을 깼을 뿐...
묘한 분위기에 취한 채, 비에 젖어 단단해진 백사장을 걷던 중 갑자기 바다에서 소리 없이 밀려온 해무가 내 앞의 풍경을 모두 지워 버렸다. 한참 동안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바다를 향해 멍하니 서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다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는 순간 해무가 서서히 걷히면서 원래의 풍경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숲과 함께 나타난 등대가 반갑기 그지없었다. 모두가 눈 깜짝 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봄이면 바다 일을 하는 어부들에게는 갑자기 나타나는 해무가 큰 위협이 된다. 언제 어디서 밀려올 줄 모르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우리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이럴수록 우리에게는 등대 같은 존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때마침 등대를 지나 바다로 나가는 배들이 눈에 띄었다. 등대의 존재감을 다시 일깨워 준 소중한 풍광이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