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태생 안드레아스 거스키, 국내 첫 개인전
아모레퍼시픽미술관서 8월 14일까지
멀리서 보면 격자 구도의 추상화 같다. 가까이 다가서서 보면 한 치 오차 없이 가로 세로 반듯하게 자리한 아파트 창문이다. 그 안의 사람들 표정부터 커튼의 주름, 창가에 놓인 작은 화분 속 식물까지 식별 가능하다. 실제 750여 가구가 모여 사는 프랑스 파리 몽파르나스의 한 공동주택을 촬영한 사진이다. 독일 태생의 현대사진 거장 안드레아스 거스키(67)를 대표하는 '파리, 몽파르나스(1993년 작)'다. 이 작품으로 1990년대 이후 현대사진의 새로운 역사를 쓴 거스키가 한국에 왔다. 그의 작품 세계 전모를 살펴볼 수 있는 국내 첫 개인전이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1980년대 초기작부터 대표작은 물론 신작 2점까지 40점이 걸렸다.
가로 5m, 세로 2m의 대작 '파리, 몽파르나스'는 '조작된 이미지'다. 사진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한다는 말은 틀렸다. 렌즈로 촬영한 사진이었다면 가장자리가 휘는 등 왜곡이 생겼을 거다. 거스키는 아파트 건너편 두 곳에 설치한 카메라로 촬영한 이미지를 이어 붙이고, 디지털 데이터를 조작해 '파리, 몽파르나스' 속 완벽한 격자 구조를 완성해냈다. 한 프레임 안에 똑같은 크기의 창문이, 이토록 선명하고 정확하게 담길 수 있었던 비결이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 '99센트'에도 거스키 작품 세계의 정수가 담겨 있다. 미국의 1,000원 숍인 '99센트' 매장을 찍은 이 작품은 각각의 선반을 따로 촬영해 이어 붙인 것이다. 원근이 없어지면서 뒤편 제품의 상표까지 보일 정도다. 배경 색채를 흐리게 처리해 상품만 부각했다.
이 작품은 2016년 아마존 물류 센터를 찍은 '아마존'과 비교해 보면 재미있다. '99센트'에는 품목별 상품이 대량으로 쌓여 있다면 '아마존' 속 선반 위엔 개별 고객에 따라 분류된 맞춤 상품이 일사불란하게 자리잡고 있다. 인간의 삶을 압도하듯 산더미처럼 쌓인 상품을 통해 대량소비사회의 단면과 변화 양상까지 살펴볼 수 있게 한다. 이처럼 현대 문명의 특징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포착하고, 그 안에 존재하는 인간을 주제로 삼는 게 거스키의 일관된 작업 세계다. 먼 발치에서, 또 가까이서, 거시와 미시를 오가며 디테일한 부분까지 찬찬히 봐야 그의 작품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이유다.
'사진 아닌 사진'이라고 불릴 정도로 추상회화를 닮은 것 역시 거스키 작품의 특징이다. '라인강' 연작은 미국의 색면 추상 대가 바넷 뉴먼의 추상화를 떠올리게 한다. 전시에서는 2011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433만 달러에 팔리면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사진으로 남아 있는 '라인강Ⅱ (1999년 작)'와 2018년 작품 '라인강Ⅲ'를 볼 수 있다. 직선으로 흐를 리 없는 강물과 강둑을 수평 구도로 담아낸 '라인강' 연작은 대상의 흔적을 지우고, 본질에 가까이 들어가고자 한다는 점에서 '사진으로 그린 추상'이라 할법하다.
거스키의 신작 2점도 전 세계 최초로 공개됐다. 라인강 인근 목초지에서 얼음 위를 걷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코로나19 시대의 일상을 보여주는 '얼음 위를 걷는 사람'과 엄청난 경사를 자랑하는 스키 코스를 담은 '스트레이프'다. 국내에 잘 알려진 '평양' 연작도 선보인다.
우혜수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부관장은 "거스키 작품은 사진 그대로 매우 중요하고, 그가 성취한 표현 방법과 그 안에 담긴 메시지도 중요하다"며 "인류가 걸어온 길을 거스키의 사진을 통해서 보고, 이를 통해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방향을 찾는 것이 중요한 주제"라고 했다. 전시는 8월 14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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