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 1년 전만 해도 병들고 야윈 고양이 300마리
마라도, 국제적 멸종위기종 뿔쇠오리 등 철새 사냥
중성화와 급식소 설치로 개체 수 조절하며 공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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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생태계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동식물에 의해 쉽게 영향을 받는다. 고립된 지리적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다. 제주의 대표적 부속섬인 가파도와 마라도에 주민 수보다 고양이들이 늘면서 농작물을 파헤치거나 다른 동물에게 피해를 주는 사례가 늘었다. 제대로 관리받지 못하는 고양이들의 건강도 문제였다. 섬 주민과 고양이의 공존을 위해 시민과 동물보호단체가 나섰다.
가파도 고양이, 1년 만에 천덕꾸러기에서 귀여운 이웃으로 변신
"고양이들이 밭에 똥싸고 말린 생선을 헤집어 놓으니 사람들이 싫어했지. 관광객 오면 핫도그 달라고 사납게 달려들었어. 지금은 안 그래. 중성화 수술 하면서 발정 때 우는 소리 안 나는 게 제일 좋아."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도에서 7년째 염색공방을 하는 이영렬씨는 1년 만에 고양이를 바라보는 주민들의 시선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초 제주 본섬에서 10분가량 배를 타고 방문한 가파도에서는 기대만큼 고양이들을 만나기 쉽지 않았다. 고양이 200여 마리가 산다고 들어 쉽게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 것과 달랐다. 길고양이 급식소를 돌며 주택가에서 본 고양이들은 따사로운 햇볕에 나뒹굴고 있었다. 모두 노란색 털의 고양이 '치즈냥이'로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하지 않아 보였다. 삼삼오오 모인 고양이들은 봉사자들이 건넨 캔을 맛있게 먹었다.
1년 전만 해도 이곳에는 치즈냥이 300여 마리가 야위고 병든 채 돌아다녔다. 중성화 수술(TNR∙포획해서 중성화한 뒤 제자리 방사하는 것)을 하지 않은 고양이들 간 근친교배로 수가 급격히 늘어나서다. 가파도에 사는 135가구보다 많은 고양이들이 농작물을 헤치고, 관광객들에게 음식을 구걸했다.
고양이와 주민이 공존하게 된 데는 서귀포시 동물보호명예감시원 김지은씨와 자원봉사자들, 지역 주민들의 공이 컸다. 김씨가 가파도 고양이의 실태를 알게 된 건 지난해 3월. 그는 "지저분하고 사나운 고양이들이 많다는 민원이 많았다"며 "번식기가 되면서 수가 늘었는데 먹을 게 없으니 밭을 헤치거나 핫도그가게 앞에 몰려나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근친으로 태어난 데다 제대로 먹지 못한 고양이들의 건강 상태도 나빴다"며 "청보리 축제로 섬을 찾은 사람들은 행복해 보였는데 고양이만 가여워 보였다"고 덧붙였다.
고양이 중성화와 급식소 설치가 주효
김씨가 뜻을 같이하는 봉사자들과 가장 먼저 공을 들인 건 개체 수 조절을 위한 중성화다. 지난해 6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수의사 3명이 가파도를 찾아 120여 마리의 중성화 수술을 마쳤다. 김씨와 봉사자들은 또 안정적 사료 공급을 위해 서귀포시청과 개인 후원을 받아 총 18곳의 급식소를 설치했다.
하지만 주민들의 이해가 없으면 고양이와의 공존은 이뤄지기 어렵다. 특히 김씨와 봉사자들이 기상 상황으로 가파도에 가지 못할 경우 주민들이 밥을 주지 않으면 고양이들은 며칠을 굶어야 한다. 김씨는 "고양이들이 안정적으로 밥을 먹고, 수가 늘어나지 않으면서 주민들도 고양이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며 "이제는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고양이 건강 상태를 점검해 준다"고 말했다.
60여 년 가파도에 거주한 진영환 가파리 이장은 "10년 전부터 고양이들이 늘면서 지들끼리 싸우고 방충망도 망가뜨리고 했는데 이제 고양이들이 질서정연해졌다"며 "젊은 사람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이 기특하다. 주민들도 만족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고양이 중성화와 급식소 운영은 마음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김씨는 "예비사회적기업 동물의집과 봉사자들이 운영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사료를 후원받고, 제주와 가파도를 잇는 여객선을 운영하는 선사는 봉사자들의 뱃삯을 감면해 주고 있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어 "지금까지는 시민과 민간 기업의 힘이 컸다"며 "앞으로 가파도 고양이 급식소 관리 등 관련 업무를 공공근로로 전환하기 위해 도청과 논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라도 고양이, 멸종위기종 뿔쇠오리 등 철새 사냥
우리나라 최남단 섬으로 알려진 마라도의 전체 면적은 가파도의 3분의 1 수준인 0.3㎢. 이곳에만 현재 150여 마리의 고양이가 사는 것으로 추산된다.
2019년부터 마라도에서 고양이를 돌보고 있는 김정희씨를 따라 수풀로 들어가니 삼각형 모양의 급식소가 눈에 띄었다. 김씨가 사료를 부어주자 기다렸다는 듯 근처에서 하나둘씩 고양이들이 나와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밥을 먹는 고양이만 10여 마리로 김씨가 수년간 돌봐온 개체들이다.
2019년만 해도 마라도 내 고양이는 40여 마리 정도였다. 김씨에 따르면 마라도 내 주민들이 풀어 키우던 개들이 고양이를 잡았는데, 반려견 수가 줄면서 고양이 수가 늘기 시작했다. 먹을 것은 부족한 데 개체 수가 늘면서 고양이들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건강 상태도 나빠졌다.
마라도 내 고양이 수 증가가 우려되는 건 이곳이 국제적 멸종위기종 뿔쇠오리의 번식지라는 점이다. 뿔쇠오리는 주로 우리나라와 일본 무인도에서 번식을 하는 소형 바닷새로, 마라도는 현재까지 알려진 번식지 가운데 유일한 유인도로 알려져 있다. 학계에서는 이곳에 최대 300~400쌍이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고양이가 뿔쇠오리에 피해를 준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뿔쇠오리를 연구해 온 최창용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는 "2018~2019년 조사 당시 뿔쇠오리 개체 수 가운데 5% 이상이 고양이로부터 피해를 입은 것으로 파악됐다"며 "고양이가 늘었다면 피해는 더 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마라도는 뿔쇠오리뿐 아니라 국제적 멸종위기종 섬개개비 등 철새들이 우리나라에 처음 도착하는 지역이다"라며 "지쳐 있는 새들이 포식자인 고양이에게 노출되고 있어 고양이 개체 수 조절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개체 수 조절 시급... 동물단체 "중성화와 입양 등 추진할 것"
김씨와 주민들은 고양이 개체 수 조절을 위해 2020년 8월 고양이 30마리의 중성화 수술을 했다. 고양이를 배에 태워 서귀포시로 이동시킨 뒤 수술을 하고 다시 마라도로 데려오는 방식이었다. 고양이 개체 수를 줄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술 실적이었다. 기상 악화로 수술을 받지 못하고 다시 방사된 고양이가 많았기 때문이다.
김씨와 주민들의 요청으로 지난해 10월 섬사랑 수의사회, 생명환경권행동 제주비건, 제주동물권행동 NOW 등이 힘을 모아 65마리의 중성화 수술을 진행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동자연)가 급식소 8개를 설치했다. 한혁 동자연 전략사업국장은 "뿔쇠오리 서식지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고양이의 활동범위를 급식소 위주로 제한하고자 했다"며 "이달 말 추가 중성화 사업을 진행하고, 사람을 따르는 고양이는 입양을 보내는 식으로 개체 수를 줄여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주민들과 동물단체들은 지금까지 개인과 민간 단체 주도로 이뤄진 고양이 지원 사업에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섬의 지리적 특성을 고려한 고양이 중성화 사업과 철새들의 번식지를 고려한 생태계 보호 정책이 필요해서다. 서귀포시 농수축산경제국 축산과 관계자는 "길고양이 TNR 사업에 지난해보다 2,000만 원 늘린 1억800만 원을 책정했다"며 "길고양이 중성화 필요성과 학대 방지 내용을 담은 현수막을 배포하는 등 주민과 고양이의 공존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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