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정략적으로 혐오ㆍ배제 활용
양극화ㆍ청년문제 방치해온 정치
약자 보호ㆍ공동체 구축 나서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치열했던 대선이 끝난 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이른바 ‘갈라치기 정치’가 실패했다는 분석이 꽤 많았다. 남녀를 가르고 세대 갈등을 부추겼지만 정작 몰표를 기대했던 20대 남성의 표심조차 확실히 잡지는 못했고, 20대 여성이 경쟁 후보에게 향하게 만들었다는 출구조사 결과가 근거다.
이해는 되지만 고개가 끄덕여지진 않는다. 무엇보다 이 대표의 정치행태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선 승리로 입지가 넓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윤 당선인은 선거운동 기간 중 갑작스러운 ‘여성가족부 폐지’ 메시지 등을 통해 이 대표의 정치행태를 적극 수용했다. 이 대표는 최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를 겨냥한 비난ㆍ혐오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발언권이 한껏 높아졌음을 과시했다.
이 대표의 정치행태에 대한 규정은 점차 ‘혐오ㆍ배제ㆍ선동 정치’로 굳어지는 듯하다. 정치권 세대 교체의 상징과도 같은 30대 중반 유력 정치인이 특정 상대를 비난하면서 딱지를 붙이고 다른 이들과의 갈등을 부추기는 낡은 정치행태의 대명사가 되어 가는 건 비극이다. 더욱이 이 대표가 이런 류의 규정에 개의치 않아 하거나 오히려 즐기는 듯한 모습은 참담하다고 할 수밖에.
2011년 말 이 대표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이 됐을 때 ‘이준석 정치’는 가능성의 영역에 있었다. 세대 교체는 말할 것도 없었고 하버드대 출신 공학도이면서 교육봉사단체를 운영한 이력 등은 그야말로 ‘새 정치’에 대한 기대를 부풀리기에 충분했다. 이듬해 총선에서 상위 순번 비례대표나 보수진영 강세 지역구 대신 서울 노원병을 택했을 때 당락과 무관하게 많은 응원이 쏟아진 이유다.
하지만 그가 지난해 제1야당의 대표가 되는 과정과 이후의 행보는 사뭇 낯설었다. 성별과 세대와 지역을 가리지 않는 그의 무차별 공세는 예외 없이 인화성이 상당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아픈 고리로 선택했을 ‘공정’ 화두는 무한경쟁에 내몰린 2030세대에게 되레 ‘능력주의’의 신화로 뿌리내렸다. 대선 기간 중 당무 거부와 공동선대위원장직 사퇴 등으로 윤 당선인과 대립하면서 당내 입지를 확보하던 모습에선 노회함마저 읽혔다.
주목할 건 ‘이준석 정치’가 확산일로에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이 대표는 자신의 폭주가 가져올 정치적 이득을 확신하는 듯하다. 전장연의 시위를 ‘비문명적’이라고 비난하면서 ‘시민 볼모’를 거론한 건 차별ㆍ혐오를 개별적 이해관계로 교묘히 가리는 정치적 수완이다. 공정한 경쟁을 그토록 주장하면서도 기회의 평등이나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해 일언반구도 않는 건 자신이 학벌과 신분 상승 욕구로 소비되고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결국 정치다. 1990년대부터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광풍이 한국 사회를 휩쓰는 동안, 2000년대부터 청년세대의 불안과 불만에 대한 숱한 경고가 쏟아지는 동안, 그 과정 내내 양극화의 그늘이 짙어지는 동안 여의도 정치는 외면하거나 무능했다. ‘능력자 줄세우기’가 공정으로 받아들여지고 예비 집권여당 대표가 장애인과 여성과 외국인 혐오를 거리낌없이 배설하는 지금의 현실은 전적으로 정치 탓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조차 매번 ‘표’ 계산에 밀리는 그런 정치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양극화 심화가 혐오와 배제와 갈등의 자양분이 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제라도 사회적 약자 보호와 공동체 연대 구축으로 숨 막히는 경쟁을 완화하고 누구나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20대 앳된 청년이 10년 만에 혐오ㆍ편견 정치의 아이콘이 됐다. 이대로면 ‘이준석 정치’의 10년 후는 공포일 수밖에 없다.
양정대 에디터 겸 논설위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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