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목은 기본이었고 자세는 껄렁해졌다. 손은 주머니 안에 들어가 있었다. '불도저에 탄 소녀'를 찍은 후 몇 달 동안 배우 김혜윤은 그렇게 살았다. 역할에 깊게 몰입했던 만큼 헤어 나오기도 힘들었다.
물론 현재의 김혜윤은 달라졌다. 혜영 그 자체가 돼 하루하루를 보냈던 그는 다시 대중이 사랑하는 배우 김혜윤으로 돌아왔다. 최근 서울 마포구 상암동 K-ART 스튜디오에서 본지와의 인터뷰를 진행한 김혜윤은 진지하게 작품 얘기를 하다가도 농담을 하며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가 출연하는 새 영화 '불도저에 탄 소녀'는 살 곳마저 빼앗긴 채 어린 동생과 내몰린 19세 혜영(김혜윤)이 자꾸 건드리는 세상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는 이야기를 담는다.
김혜윤이 '불도저에 탄 소녀'에 끌린 이유
김혜윤은 이번 영화를 통해 첫 장편 주연을 맡았다. 그는 "굉장히 많이 떨린다. 설레고 걱정이 된다"며 관객들과의 만남을 앞둔 소감을 밝혔다. '스크린 또한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불도저에 탄 소녀'의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는 강렬한 느낌에 놀랐단다. "대본을 읽을 때 혜영이를 연기하는 제 모습이 상상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더 해보고 싶었던 작품이에요. 제가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궁금했어요."
파격적인 혜영의 용 문신
혜영으로 분한 김혜윤의 모습은 파격 그 자체다. 용 문신과 분노가 담긴 표정은 그가 '어쩌다 발견한 하루' '어사와 조이' 등에서 보여줬던 사랑스러운 모습과 거리가 멀다. 김혜윤의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김혜윤은 "처음에는 문신을 한 내 모습이 낯설어서 계속 쳐다봤다. 사진도 많이 찍었다"고 했다.
혜영의 문신과 관련해 했던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용이 도롱뇽처럼 나와 위압감이 없을까 봐 걱정했다"는 게 김혜윤의 설명이다. 그러나 자신의 팔을 뒤덮은 용 문신을 본 뒤에는 근심이 사라졌다. 김혜윤은 "가까이서 봤을 때도 전혀 타투 같은 느낌이 안 들더라"며 미소 지었다.
촬영 중 맞닥뜨린 난관
2종 보통 운전면허 보유자인 그는 직접 불도저를 운전하기도 했다. 김혜윤은 "(불도저가) 커서 걱정됐고 긴장도 많이 했다. 다행히 안전하게 마무리했다"며 뿌듯함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극 중에서) 운전을 능숙하게 해야 했다. 빨리 부수러 가야 하는데 엑셀에 발이 안 닿더라. 거의 눕다시피해서 운전했다"고 장난스레 이야기했다.
욕 연기는 김혜윤이 맞닥뜨린 난관 중 하나였다. 그는 어려움 속에서 요령을 터득해나갔다. "다양한 욕이 많이 나와서 어려웠어요. 발음이나 욕 자체에 신경을 쓰다 보면 더 이상해지는 듯하더라고요. 화나는 생각만 하며 연기하려고 했죠. 속에서 욕을 한번 하고 (대사를) 내뱉으면 더 잘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김혜윤이 혜영에게 하고 싶은 말
김혜윤이 바라본 혜영은 화끈한 성격이 매력적인 인물이다. 김혜윤은 혜영에 대해 "좋고 싫음이 확실하다. 시원시원한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끔 상대가 어른인지 또래인지조차 신경을 안 써서 문제긴 하다"고 장난스레 덧붙였다. "혜영이가 화가 너무 많고 에너지가 세다 보니 현장에서 빨리 지쳤다"고 밝히기도 했다.
혜영은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환경 속에서 많은 이들에게 가시를 드러내게 됐다. 김혜윤은 이러한 혜영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괜찮아. 열심히 했어'라는 응원을 건네며 안아주고 싶어요. 혼자 어린 나이에 지키려고 하는 것들이 많다 보니 아등바등 살았을 거예요. 털어놓을 곳도 없죠. 강한 척을 하려는 이 친구를 다독여주고 싶어요."
김혜윤이 혜영에게 건네는 위로는 홀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독특한 습관을 쉽게 지워내지 못했을 정도로 깊게 몰입했기에 그가 혜영을, 그리고 현실 속 수많은 혜영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김혜윤의 깊은 고민이 담긴 '불도저에 탄 소녀'는 7일 개봉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