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개 기밀 활동 예산 외국에도 있지만
대부분 정보기관... 대통령실 없는 곳 많아
"정보공개 민감" 비공개 인한 논란 드물어
"목적 안 맞는 특활비 폐지·투명성 제고해야"
"총리(대통령)가 지출에 대한 영수증을 내지 않는다면
심하면 탄핵까지 당할 수 있다."
노르웨이 대사관의 '총리실 특수활동비 관련 답변' 중
외국에도 한국처럼 특수활동비(특활비)가 존재한다. 기밀정보 취득이나 수사 등 특정 목적을 위한 국가 예산이 합법적으로 편성된다는 얘기다. 여기에 구체적인 지출 사항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공통점도 있다.
그러나 한국처럼 다양한 국가기관에서 기밀 활동에 사용되지 않은 돈까지 상세 지출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사용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전문가들이 기밀 활동과 상관 없는 특활비를 없애고 투명성 제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12일 한국일보 취재와 한국납세자연맹이 웹사이트에 공개한 자료 등을 종합하면, 해외 여러 나라에선 한국의 특활비처럼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수사, 그리고 이에 준하는 국정 활동'을 위한 예산을 편성·집행하고 있다.
다만 '비공개 예산'을 사용하는 곳은 대부분 정보기관으로 국한돼 있다. 프랑스는 2002년부터 대외안보총국과 국내안보총국 등 안보·정보 관련 7개 기관에 특활비에 준하는 '특별 업무추진비'를 할당하고 있다. 미국 의회 정보위원회는 정보기관인 중앙정보국(CIA)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정보 활동에 대한 직·간접적 지출을 승인하고 있다. 당연히 이들 정보기관의 구체적인 예산 사용 내역은 공개하지 않는다.
한국과 차이점이 있다면, 사용 기관이 매우 제한적이란 점이다. 프랑스는 2002년 연간 4억 프랑(당시 700억 원 규모)의 대통령·총리실 '특별경비'(특활비와 같은 개념)를 없앴다. 리오넬 조스팽 당시 총리에게 1997년 이후 5년간 10억 프랑(당시 1,750억 원 규모)의 특별경비가 지급됐고, 자크 시라크 당시 대통령이 파리시장 시절 특별경비로 4억 원대 여행 비용을 지불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등 논란이 반복되자 예산 자체를 없애버린 것이다. 노르웨이와 캐나다도 '(총리실에) 비공개 예산이 있느냐'는 한국납세자연맹 질의에 "없다"고 답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AP통신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미국은 정부가 경호실과 비서실 운영비 등을 제공하지만, 식비와 생활비 등은 모두 대통령 사비를 써야 한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가 2014년 백악관을 떠날 때 200만 달러 넘는 빚이 생겼는데, 이는 스캔들 소송 비용과 더불어 백악관 살림 때문에 진 빚이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 있었다.
논란 있었지만... "한국만큼 주기적이진 않다"
외국에서도 '깜깜이 예산'을 멋대로 썼다가 후폭풍을 맞은 사례가 있기는 했다. 2009년 영국에선 하원의원들이 활동비를 생활비와 대출금 상환 등에 유용한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의회 세비 오·남용 스캔들'로 인해 현역의원 142명이 이듬해 총선에 불출마했고, 장관 6명이 사임했다. 노동당이 이후 집권에 실패하게 된 결정적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일본에서도 정권 2인자로 총리를 보좌하는 관방장관에게 할당되는 연 140억 원 규모의 관방기밀비가 논란의 중심에 선 적이 있다. 관방기밀비는 관방장관이 '국정 운영에 필요하다고 판단해' 쓰는 돈으로 구체적인 용처를 안 밝혀도 되고, 영수증도 필요 없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시민단체의 정보공개 소송에 대해 2018년 1월 기밀비의 이월액과 총 잔액, 월별 사용액 관련 일부 문서를 공개토록 했다. 반면 조사정보대책비(정보수집비)와 활동관계비(정보수집을 돕기 위한 경조사비)는 공개 대상에서 빠졌다. 법원이 '국민의 알 권리 보장'과 '국정 수행을 위한 기밀 유지'를 절충해 수용한 것이다.
그럼에도 '깜깜이 예산'으로 인한 논란이 한국만큼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나라는 드물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은 "선진국들은 정보공개에 대한 국민 요구가 높아서 지출 내역을 대부분 공개한다"며 "설령 비공개하는 예산도 영수증을 첨부해 매년 내부 감사를 받게 하는 등 통제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고 짚었다.
"목적에 안 맞는 특활비 없애고, 지출 내역 투명 공개해야"
전문가들은 정권마다 반복되는 특활비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선 기밀 활동과 관련성이 낮은 특활비부터 없애야 한다고 지적한다. 2010년대 특활비 문제를 연구했던 고광용 한국외대 행정학과 외래교수는 "국회 같은 기관들은 기밀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데다, 설령 그런 일을 하더라도 다른 수당으로 충당하면 되기 때문에 특활비까지 필요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과거 특활비 문제 해결에 천착했던 한 예산전문가도 "한국에선 정보 비공개로 인해 의회가 행정부 예산을 철저하게 감시하기 때문에 의문스러운 특활비가 사라지지 않으면 주기적으로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세비 스캔들' 이후 독립의회윤리기관(IPSA)을 설립해 모든 의원의 예산 신청 및 사용 내역을 웹사이트에 일일이 기재하고 있는 영국이나, 영수증을 첨부해 예산 사용 내역을 공개하는 캐나다와 노르웨이 총리실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선택 회장은 "한국도 지출 내역에 대한 영수증 첨부를 의무화해야 한다"며 "만약 정보를 비공개한다면 기관이 사유서를 구체적으로 작성해 제출하고, 사유가 타당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정보를 공개하도록 강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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