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마에게'는 시리아 제2의 도시 알레포에서 내전 기간 벌어진 끔찍한 참상을 생생하게 그려낸 다큐멘터리다. 영화감독이자 스스로 주인공인 와드 알 카팁은 매일매일 죽음의 공포 속에서 직접 찍은 촬영물을 영화로 만들었다. 영화 제목 '사마'는 아랍어로 하늘을 의미하는 말로 엄마 와드가 폭격 없는 평온한 하늘을 꿈꾸며 딸에게 지어준 이름에서 유래한다.
이 영화에는 폐허가 된 알레포의 하늘 위로 굉음을 내며 폭탄을 퍼붓는 공습의 장면이 등장한다. 시리아 정부군을 도와 출격한 러시아군 소속 전투기들의 군사 작전이다. 러시아의 시리아에 대한 군사 개입은 2015년 7월 이란혁명수비대(IRGC)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의 모스크바 방문 이후 속도를 냈다. 솔레이마니는 백척간두에 놓인 시리아 정부군의 전황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지도를 푸틴 대통령 앞에 펼쳐 보였다. 그로부터 2개월 뒤 러시아의 군사 행동이 개시되었다. 모스크바의 지원 덕분에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은 2016년 12월 최대의 격전지인 알레포 탈환에 성공했고, 반군과의 전투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현재 러시아의 침공으로 초토화된 우크라이나 일부 도시는 마치 영화 속 알레포의 데자뷰가 되고 있다. 러시아군에 의해 봉쇄된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은 통신, 수도, 가스, 전기 공급이 차단되고, 식료품과 의약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인도주의적 위기에 직면했다. 키이우 인근 도시 부차에서 민간인 집단 학살이 자행되며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우크라이나 유럽평의회 상임 대표인 마리아 멘젠체바 하원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가 제2의 알레포가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더군다나 러시아는 시리아에서 실전 테스트를 마친 각종 무기들을 우크라이나의 전장에서 활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사용된 집속탄은 러시아군이 시리아 반군 거점 도시를 무차별적으로 공습할 때 쓰였던 무기이다. 여기에 시리아 내전에서 활약했던 일부 정예 전투원들이 러시아군 용병으로 차출되어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되고 있다. 또한 시리아 곳곳에 러시아군을 위한 용병을 모집하는 사무소가 개설된 것으로 알려진다.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는 시리아인들 가운데 월급을 받고 기꺼이 우크라이나행 비행기에 몸을 싣겠다는 지원자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국제사회를 향한 호소는 시리아 내전 당시 반군 진영의 처절한 외침을 연상시킨다. 시리아 반군 진영의 지도자 하디 알 바흐라는 2014년 8월 13일자 월스트리트저널(WSJ) 기고문에서 미국 정부를 향해 더 늦기 전에 필요한 군사 지원을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알레포의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던 2016년 8월 현지에 남아 있던 의료진들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서한을 직접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탈중동 기조 속에서 미국은 시리아에 대한 적극적 개입을 주저했고, 국제사회는 시리아의 현실을 애써 외면해 버렸다. 워싱턴이 설정한 레드라인을 넘어선 아사드 정권의 화학무기 공격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공언했던 응징은 없었다.
지난 2월 12일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과의 전화 통화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면 미국은 동맹국과 함께 심각한 대가를 반드시 치르도록 하겠다며 강한 경고성 메시지를 전했다. 하지만, 푸틴은 바이든의 경고를 무시하고, 침공을 단행했다. 미국은 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행동 억지에 실패했을까? 알레포의 비극에 눈을 감지 않았더라면 우크라이나 사태를 좀 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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