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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평등!" 그들은 왜 한끼 식사 대신 '평등밥상'을 차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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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평등!" 그들은 왜 한끼 식사 대신 '평등밥상'을 차렸을까

입력
2022.04.0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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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 제정 위한 릴레이 단식행동 '평등밥상'
11회 발의된 '차별금지법', 매번 국회 문턱 못 넘어
차제연 "4월 임시국회서 제정 위해 행동 계속할 것"

8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정문 앞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주관 '평등한끼' 집회 참석자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호빈 인턴기자

8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정문 앞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주관 '평등한끼' 집회 참석자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호빈 인턴기자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평등! 평등세상 끝까지 달려라 평등!"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선 '달려라 하니' 주제곡을 패러디 한 노래 '달려라 평등'이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익숙한 멜로디에 발걸음을 멈췄다. 신나는 멜로디와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소리에 분위기는 금방 축제 분위기였다.

노래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하늘에는 무지개색 깃발이 흩날렸고, 맨 앞줄에는 무지개색 발언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마치 이곳이 차별금지법제정연대(차제연)가 주관한 '차별을 끊고 평등을 잇는 릴레이 단식행동(평등한끼)' 집회라는 것을 알리듯 했다.


밥상 대신 차린 '평등밥상'으로 '릴레이 한 끼 단식'

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평등한끼 집회 참석자들이 각자의 '평등밥상'을 차린 뒤 사진을 찍고 있다. 김호빈 인턴기자

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평등한끼 집회 참석자들이 각자의 '평등밥상'을 차린 뒤 사진을 찍고 있다. 김호빈 인턴기자

오전 11시가 되자 국회 정문 앞을 떠들썩하게 만들던 노래가 꺼졌다. 참석자들이 하나둘 도착해 "잘 지내셨어요"라며 서로의 안부를 묻다 노래 소리가 잦아들자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피켓 시위'를 시작으로 이날 집회가 시작했다. 사람들은 능숙하게 피켓을 들고 국회 정문 앞 횡단보도 곳곳에 섰다. 피켓에는 '모두를 위한 내일', '차별의 정치를 끊고 차별금지법 제정', '평등이 밥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30분 정도 피켓 시위를 마친 뒤, 참석자들은 다시 발언대 주위로 모였다. 다음은 '릴레이 발언' 순서였다. 이날 발언대에 선 전국철도노동조합 코레일네트웍스지부 서한수 부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데도 비정규직 임금이 정규직의 50%도 안 된다"며 "1년 차 정규직 임금과 20년 차 비정규직 임금이 같은 수준"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석자들의 발언이 끝나자 두 번째 피켓 시위가 이어졌다.

두 번의 피켓 시위와 한 번의 발언 이후 집회는 끝을 향해 달려갔다. 피날레를 장식한 것은 참석자들이 종이밥상 위에 각자 글을 쓰는 '평등밥상'이었다. 평등밥상에는 '평등이 이긴다', '공무직법 제정', '비정규직 철폐', '차별 없는 평등한 사회' 등 평등을 향한 다양한 반찬들이 담겼다. 사람들은 서로의 밥상을 공유하며 이날 두 시간 동안의 집회를 마무리했다.

이처럼 '평등한끼' 기간 동안 사람들은 매일 점심시간 국회 앞에 모여 점심밥상 대신 평등밥상을 차렸다. 평등밥상은 온라인에서도 이어졌다. 매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저녁 시간에는 '줌'에 모여 저녁밥상 대신 '평등밥상'을 먹었다.

이종걸 차제연 공동대표는 "시민들이 연대해 한 끼를 단식하고, 대신에 '평등밥상'을 차려 함께 법 제정을 위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선 이후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시위나 여성가족부 폐지 반대 논의가 혐오로 낙인찍히고 얼룩지는 것을 보면서 혐오 정치가 예상되는 윤석열 정부 출범 전에 차별금지법을 만들고자 평등한끼를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평등한끼는 지난달 14일 시작돼 8일 국회 앞 시위를 끝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나 차제연은 이후에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행동을 계속해서 이어갈 계획이다. 다슬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평등한끼가 끝난다고 해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행동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라며 "더 강력하게 국회에 법 제정을 요구하기 위해 11일부터 국회 앞에서 텐트농성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차제연은 "4월 임시국회는 새 정부 출범 전 국회가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수 있는 마지막 기간"이라며 "텐트 농성과 더불어 이 공동대표는 국회 앞에서 단식투쟁을 시작한다"고 전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향한 시민들의 높아진 인식을 접한 차제연은 고무돼 있다. 이진희 차제연 공동집행위원장은 "평등한끼까지 달려오면서 시민들의 평등을 향한 열망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년 전 관련 법이 발의가 됐고 지난해 6월에는 차별금지법 청원이 10만 명을 달성했다"며 "이후 도보행진과 11월 농성을 거치며 점점 커진 열망이 평등한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15년 동안 11회 발의...번번히 국회 문턱 넘지 못한 '차별금지법'

8일 한 시민이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열린 '평등한끼' 집회 바로 옆에서 '차별금지법 반대'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 김호빈 인턴기자

8일 한 시민이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열린 '평등한끼' 집회 바로 옆에서 '차별금지법 반대'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 김호빈 인턴기자

이처럼 차별금지법과 관련된 논의는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법 제정 논의는 2002년 노무현 대통령 공약에서 시작됐고, 국가인권위원회는 2006년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했다. 이후 2007년 제 17대 국회를 시작으로 15년 동안 11회나 법안이 발의됐지만, 매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 공동대표는 "지금까지 사람들이 투쟁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법 제정이 안 되는 것은 정치가 움직이지 않아서 그렇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고 있다. 이날 평등한끼 집회 현장 곁에서도 '차별금지법 반대 시위'가 있었다. 차별금지법 반대 피켓을 든 한 시민은 "차별금지법 안에 성소수자를 포함시킨 것이 이해가 안 된다"며 "군대 내 동성애를 인정하면 국방이 위험해지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군대 기강이 무너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이 위원장은 "'평등한끼'는 국회 2정문 앞에서 진행되는데 보통 1정문 앞에는 반대 집회가 열린다"며 "생각은 자유지만 이러한 혐오와 차별에 정치가 응답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권이 적절한 책무와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0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차별금지법 제정에 국민의 85.5%가 찬성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으며, 지난해 6월에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향한 국민청원 동의는 10만 명을 넘겼다.

김호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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