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필리핀은 17대 대통령선거를 실시한다. 후보들의 면면을 보면, 60%대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상원의원의 이름이 눈에 띈다. 어디서 본 듯한 그 이름. 악명 높은 독재자 마르코스의 친아들이다. 분명 엄연한 현실이다. '철권 통치자' 로드리고 두테르테 현 대통령이 그를 지지하는 이상 판세는 정해진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내년 초 총선이 예정된 캄보디아 상황은 더 헛웃음을 짓게 한다. 37년째 독재를 이어가는 훈센 총리는 지난해 말 "내 아들 훈 마넷이 차기 총리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의 희망은 여당이 만장일치로 훈 마넷을 차기 총리후보로 지명하며 현실화됐다. 정적이 사라진 캄보디아의 정치구조를 고려하면 그 역시 차기 총리로 사실상 굳어진 듯하다.
이들 국가의 권위주의·독재 체제는 어떻게 '현재진행형'일까. 씁쓸한 비결은 법을 악용하고 실제론 법치주의를 내팽개친 사법부에서 찾을 수 있다. 캄보디아 대법원은 2017년 제1야당을 반역죄로 강제 해산시켰다. 당시 대법원장은 훈센 총리의 최측근이었다. 나쁜 짓은 금방 배우는 법. 2014년 쿠데타로 집권한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 또한 2019년 헌법재판소를 이용해 지지율 1위 야당을 해산시켰다. 태국도 내년 총선에서 군부의 재집권이 유력한 상황이다.
필리핀 사법부도 유명무실하긴 마찬가지다. 2018년 마리아 루르데스 세레노 대법원장이 두테르테 대통령에 의해 축출된 후, 대법원은 초법적 살인이 횡행하는 '마약과의 전쟁'에 눈감고 있다. 방관을 통해 현 정권에 면제부를 주고 있다는 얘기다.
법치가 사라진 나라의 민생은 암울함 그 자체다. 독재가 이어진 수십 년 동안 캄보디아는 라오스와 함께 동남아 최빈국으로 남아 있다. 필리핀과 태국도 같은 시간 극심한 빈부 격차와 부패로 개발도상국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뿐이다.
‘법은 멀고 주먹(권력)은 가깝다’는 일상적 한탄은 그래서 경계해야 한다.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법치주의를 간과하는 순간, 독재는 지금의 동남아처럼 언제든 그 틈을 파고드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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