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왕구 논설위원이 노동ㆍ건강ㆍ복지ㆍ교육 등 주요한 사회 이슈의 이면을 심도 깊게 취재해 그 쟁점을 분석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코너입니다. 주요 이슈의 주인공과 관련 인물로부터 취재한 이슈에 얽힌 뒷이야기도 소개합니다.
지난 7일 오전 서울 구로구의 한 아파트 단지 내 상가. 슈퍼마켓, 스터디카페, 음식점, 피아노학원, 데이케어센터 등이 밀집한 평범한 상가건물 3층에 있는 한 내과 의원을 찾았다. 이 병원은 지난 2월 초부터 신속항원검사를 시작했고 지난 4일부터는 코로나19 확진자 대상으로 대면진료를 하고 있다. 92 ㎡(28평) 정도의 작은 규모라 일반 환자와 확진자의 동선(動線) 분리는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이날 오전에도 6명의 확진자가 병원을 찾아와 치료를 받고 갔다. 페이스 실드 없이 간단한 의료용 마스크만 쓰고 진료를 본다는 병원 최태진(57) 원장은 “처음에는 확진자 진료가 조금 두렵기도 했지만 지금은 확진자들이 오면 자연스럽게 혈압약도 처방하고 주사를 놓아주기도 한다”며 “대면진료를 하겠다고 하니 간호사들이 사표를 썼다는 병원이 있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우리 병원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확진자들이 병원 밖 복도 의자에 앉아 대기하다가 진료받는 점만 특이할 뿐 진료 현장 풍경은 코로나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진료를 기다리던 정상돈(76)씨는 “확진자 대면진료를 하는 병원인 걸 아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손자와 며느리도 모두 가볍게 코로나를 앓았다”며 “워낙 확진자가 많아져서 확진자들이 옆에 왔다갔다 하는 일이 크게 걱정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확진자를 대면진료 중인 다른 병원들의 상황도 비슷했다. 서울 강동구의 A의원 관계자(정형외과)는 “주로 통증 치료를 해야 하기에 촉진이 필요한데 우리 병원은 동선 분리가 가능해 확진자들을 부담 없이 진료하고 있다”며 “코로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환자라도 독감환자처럼 일반 병원을 찾아가 진단과 치료를 받고 약 처방을 받아 요양을 하는 단계가 엔데믹(endemicㆍ감염병의 풍토병화)이다. 여전히 하루 10만 명 이상 확진자가 나오지만 대면진료가 시작되면서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이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가 비로소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코로나19 엔데믹 전환은 가능할지, 엔데믹 전환에 대한 대비는 충분한지, 언제쯤이면 전환이 이뤄질지 관심사다.
서서히 고개 드는 ‘엔데믹’ 전환론
지난달 30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미국 캘리포니아 의과대 모니카 간디 교수를 인용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엔데믹으로 전환하는 국가가 될 수도 있다”고 보도하면서 정부 내에서도 엔데믹 전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코로나를 풍토병 수준으로 낮추는 선도국가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언급했을 정도다. 정부가 팬데믹(pandemicㆍ세계적 유행) 방역의 상징인 사회적 거리 두기의 해제를 검토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지난 11일 신규 확진자가 48일 만에 10만 명 이하(9만928명)로 떨어지는 등 확진자 감소 추세가 분명해진 것도 엔데믹 전환론에 불을 지핀다.
다만 확진자 숫자가 엔데믹의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엔데믹을 ‘환자가 일정하게 발생하고 의료체계를 바꿀 정도로 대유행이 없는 상황’(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 ‘역학적으로 감염재생산지수(R)가 1이 되는 상황’(조동호 명지병원 감염내과 교수), ‘유행 상태가 장기간 안정됐다는 의미’(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라고 설명한다. 쉽게 풀이하면 코로나19 환자를 일반적 의료체계로 대응할 수 있는 상황이 엔데믹이라는 것이다.
정책 측면에서는 감염병 예방법상 에볼라, 페스트, 중동호흡기증후군 등과 함께 1급 감염병인 코로나19의 등급을 낮추는 조치가 엔데믹 전환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1급 감염병의 경우 검사와 격리가 의무적이고 발생 즉시 방역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그러나 2급(결핵, 수두, 홍역 등)으로만 등급을 낮춰도 격리의무가 완화되고 신고의무도 발생 이후 24시간 이내로 느슨해진다. 의료체계의 부담을 줄여줄 뿐 아니라 코로나19에 대한 ‘특별대응’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전파하는 조치다. 정통령 중앙방역대책본부 총괄조정팀장은 “국민들이 자연스럽게 적응할 때까지 완전한 엔데믹 전환은 쉽지 않다”면서도 “15일 발표할 ‘포스트 오미크론 대응체계’에서는 감염병 등급 하향 조치를 포함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하루 100~200명대 사망자…엔데믹은 시기상조
코로나19 역시 언젠가는 엔데믹으로 전환되겠지만 언제쯤일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쉽게 예단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지금 당장 일반 의료체계로 코로나19에 대응하기는 쉽지 않다는 목소리가 우세한 편이다. 조건도 갖춰지지 않았는데 엔데믹처럼 대응하면 피해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엔데믹 조기전환이 시기상조라는 주장의 주요 근거는 여전히 많은 사망자다. 지난 3월에만 8,759명이 코로나19로 사망했고 지금도 하루 사망자가 100~200명대를 오르내린다. 거리 두기까지 폐지하고 방역을 완화할 경우 의료체계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중환자ㆍ사망자 증가로 이어질 우려가 여전하다. 먹는 치료제의 공급과 처방이 원활하지 않은 점도 걸림돌이다. 먹는 치료제인 화이자사의 팍스로비드의 경우 재고가 29만3,402명분(7일 현재)으로 두 달가량 버틸 수 있다. 그러나 병용금지 약물이 많고 동네 병ㆍ의원에서 처방을 하기에는 절차가 복잡하다. 각종 검사와 달리 별도 수가도 책정돼있지 않아 동네 병ㆍ의원에서 이 약을 처방할 유인도 약하다. 최근 당국이 팍스로비드의 처방대상과 기관을 넓혔지만 실제 처방이 잘 이뤄지지 않는 이유다. 지난 1~7일 하루 4,235명분의 팍스로비드가 처방됐는데 이는 3월 마지막 주(하루 평균 5,219명)보다도 감소한 수치다. 김우주 고려대 감염내과 교수는 “2008년 유행한 신종플루가 이듬해 엔데믹으로 전환될 수 있었던 건 치료제 타미플루가 빠르게 개발되고 보급됐기 때문”이라며 “팍스로비드의 효과(입원ㆍ사망 예방 효과 88%)는 좋지만 처방 문턱이 높다는 점에서 열만 나면 검사 없이도 처방할 수 있었던 타미플루와 비교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감염된 재택치료자가 의사를 직접 만날 수 있는 대면진료 시스템 정착도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재택치료자가 대면진료를 받을 수 있는 외래진료센터는 지난 1일 576곳에서 7일 5,547곳으로 빠르게 증가했다. 그렇다 해도 전체 의료기관(9만8,479곳ㆍ2021년)의 5% 수준이다. 위중증 환자가 입원해 있는 대형 상급종합병원들에서도 엔데믹 전환은 시기상조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위중증 병상 98병상을 운영하고 있는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은 65~77명의 환자가 꾸준히 병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 병원 관계자는 “위중중 환자가 70명대에서 60명대로 다소 감소했지만 의료진 부담이 줄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엔데믹 전환은 아직 이르다는 반응을 보였다.
겨우 오미크론 유행의 정점이 꺾인 상황에서 엔데믹이 마치 코로나 사태가 끝나는 것처럼 정부 당국이 분위기를 띄우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 목소리가 많았다. 조동호 명지병원 교수는 “최소한 전체 국민 50% 이상이 면역을 획득해야 엔데믹에 근접하는데 오미크론 변이는 면역회피 능력이 너무 강력하다”며 “오미크론 변이보다 중증도가 높거나 전파력이 강한 변이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최소한 여름은 지나봐야 엔데믹이 될지 예측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병철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코로나 상황이 우리보다 안정적인 나라에서도 선언하지 않는 엔데믹을 우리 정부가 고려하고 있다는 건 보건학적으로 불필요하다”며 “정부가 엔데믹을 선언하고 싶다면 국민들에게 팬데믹이 엔데믹으로 연착륙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 근거와 지표로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이브리드 면역과 높은 방역의식… 엔데믹 조건은 성숙
물론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이 엔데믹 전환에 근접해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국은 백신 접종률(18세 이상 96.4%ㆍ2차 접종 기준)이 세계 최고 수준이고 병독성이 약한 오미크론 확산으로 감염자가 크게 늘면서 집단면역에 다가간 것도 호조건이라는 것이다. 한국 의료체계의 역량을 감안할 때 엔데믹으로의 전환은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견해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공식적인 확진자는 1,500만 명이지만 실제로는 2배 이상이 감염됐다고 봐야 할 것”이라며 “확진자도 감소하고 있고 낮은 재감염률(0.296%)과 중증화율(0.27%)을 감안하면 최소한 엔데믹으로 가는 길목에 근접했다고는 말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박명하 서울시 의사회 회장은 “감염 전문가들은 걱정을 많이 하지만 2년 이상 비상사태가 이어지면서 의료진의 피로도도 높아졌고 일상회복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면서 “독감 수준이 아니라는 점은 모두 인식하지만 이제 일상생활을 포기할 정도까지라고는 보지 않는다”며 신중하되 너무 늦지 않은 엔데믹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인수위 코로나특위 위원 B씨는 올해 가을, 겨울에 다시 유행이 찾아오겠지만 기존보다는 약한 유행일 것으로 예측한 뒤 엔데믹을 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중환자 병상이 부족하다고 비판했지만 델타와 오미크론을 겪으면서도 어쨌든 우리 의료체계가 이를 감당해 냈고, 하이브리드 면역(백신면역과 자연면역) 조건이 갖춰졌으며 국민들의 방역의식도 높다”며 현재는 엔데믹 전환에 좋은 조건을 갖춘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B씨는 “중요한 것은 확진자 규모나 치사율이라기보다는 국민들이 일상적 의료대응을 심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여부”라며 “국민들이 오미크론을 겪으며 동료와 가족들이 감염되는 걸 보면서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은 많이 누그러졌다”고 말했다. 엔데믹 조건이 성숙했다는 설명이다. 2020년 2월부터 정기적으로 코로나19 국민인식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팀에 따르면 코로나19의 감염 가능성이 ‘높다’는 인식은 2020년 1월 12.7%였으나 지난달 32.2%로 3배 가까이 높아졌다. 반면 같은 기간 ‘감염 시 건강영향이나 피해 심각성’에 대해 ‘심각하다’는 응답은 73.8%에서 50.9%로 낮아졌다. 유명순 교수는 “감염병 위험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은 감염학자들이 중시하는 병리적 요소보다는 감염됐을 때 타인에게 받을 비난 등에 좌우됐는데 오미크론 이후 피해 심각성 인식도가 크게 낮아졌다”며 “당국이 일상회복으로 연착륙할 것이라고 속단하는 메시지만 내서는 안 되겠지만 오미크론의 현실을 겪은 국민들의 심리를 정책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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