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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 차별이라는 유령

입력
2022.04.14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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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2차 국무위원 후보 및 대통령 비서실장 인선 발표를 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2차 국무위원 후보 및 대통령 비서실장 인선 발표를 하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10년 전쯤 목격한 일이다. 누구나 알 만한 회사에서 신입사원 3명을 뽑았다. 1,500여 명의 지원자 중 3, 4단계의 평가를 거쳐 여성 7명, 남성 3명 총 10명이 최종 면접에 올랐다. 공교롭게도 최종 합격자 3명의 성별은 모두 남성이었다. 결과를 두고 탈락자 사이에서 성차별 아니냐는 이야기가 잠시 오갔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회사가 실력대로 뽑았다는데 취업 준비생이 뭐라 할 수 있겠는가.

물론 해당 채용 과정에서 특정 성별을 직접 차별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면접관이 보기에 역량이 가장 뛰어난, 최종 점수 합산 결과가 높은 3명이 우연히 전원 남성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절차상 위법이 없었다는 사실이 곧 이 채용이 공정하고 평등했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당장 이런 문제 제기가 가능하다. 채용 과정에 참여한 면접관, 즉 선발권자의 성비는 어떠했는가. 혹시 전원 남성이거나 남성의 비율이 80~90%로 압도적으로 높지 않았나.

구조적 차별은 매우 교묘하게 특정인에게 유리한 지형을 만든다. 면접처럼 보통 주관이 개입되는 영역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심증은 있어도 물증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다. 동일한 업무 성과를 내도 남성이 여성보다 승진에서 우대되거나 핵심 보직에 기용되는 사례를 숱하게 본다. 인사권자의 위치에 여성보다 남성이 많은 구조 탓이다. 대개의 구조적 차별이 마치 공기처럼, 유령처럼, 눈에 보이지 않게 이뤄지기 때문에 차별의 현장을 잡아내기 어려울 뿐이다.

다만, 구조적 차별의 방증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고등교육기관(대학·대학원)을 졸업한 남성 취업률은 67.1%(2020년 기준)인 데 반해, 여성 취업률은 63.1%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박사학위 취득자는 37.8%(2018년 기준)지만, 국·공립대와 사립대 교수 중 여성은 25.9%에 그친다. 취업 시장에서, 특히 교수와 같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일자리일수록 여성보다 남성을 선호한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할당·안배는 이런 구조적 차별을 보정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인간의 성취는 사회 구조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어떤 결정은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공고히 할 수 있다는 겸허한 인식에 기반한다. 나아가 다양함이 만들어내는 당사자성은 건강한 조직, 사회를 만드는 데 필수적이다. 여성만이 여성 정책을 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당사자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수록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가능성도 커진다. 특히 사회 리더층 인사 구성의 다양성은 이것이 갖는 파급력이나 메시지를 고려하면 여러 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새 정부 첫 내각 인선은 이런 면에서 실망스럽다. 할당은 자리 나눠 먹기라는 발언에서는 능력주의 신화에 매몰된 오만함까지 느껴진다. 정작 자리 나눠 먹기를 하고 있는 건 윤 당선인이다. '40년 지기'와 최측근을 두루 요직에 앉혔다. 16명의 조각 인사 중 여성은 3명뿐인데, 그중 한 명은 폐지를 공약한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다. 실력대로 뽑았다는데 신기하게도 서울대, 영남 출신, 50~60대 남성 일색이다. 이게 바로 구조적 차별이라는 유령이 존재한다는 증거 아닐까. 이 땅의 뛰어난 유전자가 기이한 우연으로, 영남 지역 남성에게 몰빵된 게 아니라면 말이다.

송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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