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에너지 관련 회의서 "수출 시장 다변화"
EU는 러시아산 원유 금수 조치 검토키로
젤렌스키, "獨이 러시아에 피 묻은 돈 줘"
서방의 고강도 제재로 에너지 자원 수출길이 막힌 러시아가 역공에 나섰다. 향후 아시아 지역으로 공급망을 넓히겠다는 우회로를 모색하는 한편, 미국과 유럽 등에는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언급하면서 압박에 나섰다. 유럽연합(EU)은 그간 지지부진했던 러시아산 원유 금수 조치에 속도를 내며 대(對)러시아 제재 ‘최후의 카드’까지 꺼내 든다는 계획이지만, 독일과 헝가리의 반대가 걸림돌이다.
14일(현지시간) 미국 CNN방송 등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에너지 당국과의 화상회의에서 “조만간 서방으로 에너지 공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수출 시장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단계적으로 러시아 동부와 남부의 신흥 시장으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제시했다.
‘동남부’는 동북아와 동남아 시장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서방과 달리 여전히 대러 경제 제재에 적극 동참하지 않는 아시아 국가들로 눈을 돌려 전쟁자금을 조달한다는 얘기다. 실제 아시아 지역은 국제사회 러시아 제재의 ‘구멍’이 되고 있다. 인도는 최근 러시아로부터 저렴한 가격에 원유와 석탄을 대거 사들이고 있다. 전날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중국은 물론 한국과 대만도 러시아산 수입을 늘리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서방 국가의 제재가 러시아 경제를 위축시키고 있다고 인정하면서 나왔다. 특히 EU가 러시아산 석유 단계적 금수 조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 러시아의 긴장도를 높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EU에서 금수 조치에 대한 구체적 논의는 프랑스 대선 결선이 예정된 24일 이후 진행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되레 서방을 향해 엄포를 놓았다. 그는 “현재 유럽에는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대체할 합리적 대안이 없다”며 “대체 에너지를 찾는데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또 유럽이 미국산 에너지로 눈을 돌릴 경우 소비자에 대한 에너지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고도 주장하면서 “그 결과는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에너지 비용 급등 역풍을 국민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될 것이라는 ‘경고’이자 ‘위협’이다.
유럽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미국과 달리 러시아 에너지 수입 비율이 높은 탓에 마냥 제재를 밀어붙일 수도 없는 탓이다. EU가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전면 금수 조치가 아닌 4개월간의 유예 등 ‘단계적’ 방안을 검토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특히 독일과 헝가리는 계속해서 러시아산 에너지를 수입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강조하고 있다. 에밀리 하버 주미 독일 대사는 이날 트위터에 “현대 산업 공장은 전등 스위치처럼 켜고 끌 수 없다”며 “(금수 조치는) EU의 경제 엔진인 독일을 뛰어넘는 엄청난 연쇄 피해를 불러오는 반면, 러시아에는 별 다른 타격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헝가리 역시 EU의 제재 대열 이탈 가능성을 내비쳤다.
우크라이나는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 에너지를 계속 구매할 의사를 내비친 독일과 헝가리를 콕 집어 “러시아에 ‘피 묻은 돈(blood money)’을 가져다 주지 말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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