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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번 넘는 거절의 말...휠체어 장애인은 목사의 꿈을 접었다

입력
2022.04.20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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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 장애인의 날 릴레이 인터뷰]
<3>신학대학원 자퇴한 유진우씨
"장애인으로서 목사 될 수 없음에 회의감"
다른 장애인들 상담·지원하는 직업의 길로
모든 권리의 시작인 '이동권' 확보 투쟁 동참

8일 퇴근길에 지하철을 이용하는 유진우씨. 엘리베이터나 지하철에 휠체어가 들어갈 공간이 없어 기다리는 경우가 많은 탓에 보통 출퇴근에 비장애인보다 두 배의 시간이 걸린다. 최나실 기자

8일 퇴근길에 지하철을 이용하는 유진우씨. 엘리베이터나 지하철에 휠체어가 들어갈 공간이 없어 기다리는 경우가 많은 탓에 보통 출퇴근에 비장애인보다 두 배의 시간이 걸린다. 최나실 기자

"교회 건물 구조상 휠체어가 다닐 수 없습니다" "교회 화장실에 턱이 있어요" "교회 지하로 가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요" "집이 먼데, 출퇴근이 힘들 겁니다" "전도사는 교회 차량을 운전해야 하는 데 못하지 않습니까"

초등학교 3학년부터 품어온 '목사'의 꿈을 위해 신학대와 신학대학원(신대원)에서 5년 넘게 공부했던 유진우(27)씨는 이러한 경험 끝에 17년의 꿈을 내려놓았다. 그는 선천적 뇌병변장애인이며 전동 휠체어를 타고, 약간의 언어장애가 있다.

한신대 신대원에 입학한 2019년 한 해 동안 20곳 넘는 교회에 '전도사 사역 지원서'를 넣었지만, 단 한 번의 면접도 볼 수 없었다. 심지어 "교회 축구부를 지도할 수 없어 안 되겠다"고 했고, 대놓고 장애를 이유로 거절하거나 별다른 설명 없이 탈락시킨 곳도 있었다.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노들센터)에서 만난 유씨는 "공부하는 과정에서 장애인 차별을 인식했고, 도저히 못 견디겠다는 생각에 한 학기를 남겨두고 자퇴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장애인 목회자는 드물긴 해도, 없지 않다. 지체장애, 뇌병변장애, 시각장애 등을 가진 목사들이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목사가 되는 과정이 편견과 차별로 얼룩진 가시밭길과 같다는 점이다.

유씨도 '학교에서 하라는 과제, 공부, 책 읽기'는 모조리 하며 "목사가 되기 위한 노력이란 노력은 다했다"고 한다. 공부도 재밌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신대원 졸업 필수 코스인 ‘현장 목회 실연’과 ‘목회 실습’을 할 교회를 찾을 수 없었다.


유진우씨가 한신대 신학대학원 재학 시절인 2019년 11월 학교 채플(예배)에서 성경봉독을 하고 있다. 유진우씨 제공

유진우씨가 한신대 신학대학원 재학 시절인 2019년 11월 학교 채플(예배)에서 성경봉독을 하고 있다. 유진우씨 제공


장애인은 왜 '간택'돼야 하는가

결국 유씨는 4학기 과정 중 3학기 종강을 코앞에 둔 2020년 12월 자퇴서를 냈다. "'장애인'으로서 목사가 될 수 없는 것, 그것이 제도 때문이든 암묵적인 동의 때문이든 간에 회의감이 들어서 더는 신학 공부를 할 수 없습니다"라고 썼다.

학교와 집이 세상의 전부나 다름없었던 어린 그에게 교회는 '따뜻함'을 느끼게 한 공동체였지만, 교인이 아닌 목회자로서 설 자리는 '허락'되지 않았다. 유씨는 "교인으로서 장애인은 '언제든 오라'면서 환영하지만, 전도사나 목사로서는 '얘가 과연 가능할까’라는 시선이 있다"고 꼬집었다.

유씨의 자퇴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교 교단인 기독교장로회(기장) 내부에서 자성과 변화 움직임이 없진 않았다. 교단 헌법에 제시된 목사 자격 중 ‘신체 건강한 자’란 부분을 삭제하는 한편, 중증 장애인 목사 후보생과 목회자에 대한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 개선과 인식 교육 연구를 진행하기로 했다.

자퇴한 이후 유씨는 뒤늦게 신대원으로부터 '장학금과 사역할 교회를 마련했으니 돌아오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그는 "뻔히 정해진 제도가 있는데도 장애인은 항상 '간택'되는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시혜적 관점에서 나오는 예외적, 일회성 기회 제공이 아니라 비장애인 중심의 제도 자체가 개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차별의 경험, 활동가의 길로 이끌다

유씨는 작년 4월부터 노들센터 자립옹호팀에서 ‘동료상담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신앙을 잃고, 한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진로로 방황을 겪기도 했으나 '차별'의 경험이 그를 활동가의 길로 이끌었다. 그는 웃으며 “'언젠가 노들센터 가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은 했는데, 기대보다 훨씬 빨리 일하게 됐다”고 말했다.

동료상담은 장애를 가진 상담자와 내담자가 동등한 입장에서 장애로 인한 차별과 어려움을 나누고, 내담자의 지역사회 자립과 사회참여를 위한 해법을 함께 모색해가는 과정이다.

유씨는 현재 3명의 지체·발달장애인 당사자를 담당하고 있는데, 이들과 주 1회 한 시간씩 상담을 진행하고 개별 지원을 한다. 주거·교육·건강 등의 사회 인프라를 잘 모르는 내담자를 위해 복지 서비스를 안내하거나, 사회참여 욕구에 맞춰 여행, 공연 관람 등 프로그램을 함께 계획하고 함께 참여하기도 한다.

그는 "내담자와 비슷한 경험과 공감대가 있기 때문에 더 수월하게 상담할 수 있고, 함께 성장하고 발전해가는 즐거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외부 활동 경험이 드물었던 당사자와 함께 남산타워를 가고 뮤지컬 공연을 보거나, 경직이 심해 수동휠체어만 이용했던 당사자가 혼자서도 전동 휠체어를 탈 수 있도록 함께 연습하고 격려하기도 한다.

당신의 회사엔 장애인이 있나요

노들센터 자립옹호팀에서 '동료상담 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유진우씨가 지난 8일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휠체어 높이에 맞게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책상을 이용하고 있다. 최나실 기자

노들센터 자립옹호팀에서 '동료상담 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유진우씨가 지난 8일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휠체어 높이에 맞게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책상을 이용하고 있다. 최나실 기자

10여 명의 장애인, 비장애인 동료가 함께 일하는 노들센터 6층 사무실에는 '의자가 있는 자리'와 '없는 자리'가 있다. 휠체어를 탄 채 바로 일할 수 있도록 의자 자리가 비워져 있는 책상들이다. 유씨는 장애인 센터라는 직장 특성상 '장애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해 일하며 겪는 어려움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다른 장애인 노동자들의 근무 환경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다. 유씨는 "일반 기업에 장애인 의무 고용제로 채용된 경우 회사에서 일을 제대로 안 주는 식으로 은근한 차별 속에 살게 한다든지, 장애인 보호작업장에서는 비장애인 직원과 장애인 직원의 생산라인, 밥 먹는 장소가 다른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유씨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주5일 일하고, 최저임금을 받는다. 당연한 소리 같지만, 현실에선 당연하게 지켜지지 않는다. 최저임금법 제7조에 따라 정신·신체 장애인에게는 최저임금 적용이 제외되는 탓이다. 지난해 고용노동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20년 '최저임금 적용 제외 인가자 수'는 9,060명으로 이들은 월 평균임금 37만 원을 받았다.

유씨와 같은 중증장애인에게는 취업과 노동의 문턱은 더 높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장애인 고용률은 34.6%로 비장애인(61.2%)의 절반 수준이었는데, 장애인 내에서도 중증장애인 고용률(21.8%)은 경증장애인 고용률(40.3%)의 반 토막에 불과했다.

장애인 단체들은 '최저임금 적용 제외 조항 폐지'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확대' 등을 요구하고 있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노동 시장에서 배제돼 온 최·중증 장애인들이 '노동 주체'로 일하며 임금을 받을 기회가 된다.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로 활동하고, 캠페인·시위 같은 장애인 권익 옹호 활동이나 문화·예술 창작 활동도 하나의 노동으로 보는 것이다. 노들센터와 같은 건물을 쓰는 노들야학에서도 30명의 공공일자리 참여자를 두고 있다.

모든 기본권의 시작은 '이동권'

인터뷰를 마친 뒤 유씨의 퇴근길에 동행했다.

그가 사는 곳은 우이신설선 화계역. 비장애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센터까지 30분 남짓 걸리는 거리지만, 유씨는 통근에 두 배가 걸린다고 했다. 불편한 지하철 환승 대신, 4호선을 타고 한 번에 가기 위해 집 근처 수유역까지 휠체어로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 15분. 여기에 엘리베이터 차례를 기다리고, 출퇴근 만원 지하철 중 '탈 수 있는 차'를 기다리다보면 꼬박 1시간이 걸린다.

이날 지상에서 혜화역 지하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는 다행히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서 바로 탔지만, 처음 도착한 지하철은 휠체어로 탈 공간이 남지 않아 그냥 보내야 했다. 유씨는 "자주 있는 일"이라며 "심할 땐 서너 대까지 보낸 적도 있다"고 했다. 두 번째로 도착한 지하철에 어렵게 휠체어를 들이밀었다. 이미 서있는 승객들로 지하철 안이 빽빽해, 고정 벨트가 있는 '휠체어 전용공간'은 유명무실했다.


12일 서울 경복궁역에서 릴레이 삭발 투쟁에 참여한 유진우씨의 모습. 3년 동안 기른, 벚꽃색의 머리카락이 잘려 나갔다. 그는 "권리로 보장된, 법에 명시된 권리를 누리며 살아가고 싶다"며 절박한 마음으로 삭발에 나선다고 밝혔다. 유진우씨 제공

12일 서울 경복궁역에서 릴레이 삭발 투쟁에 참여한 유진우씨의 모습. 3년 동안 기른, 벚꽃색의 머리카락이 잘려 나갔다. 그는 "권리로 보장된, 법에 명시된 권리를 누리며 살아가고 싶다"며 절박한 마음으로 삭발에 나선다고 밝혔다. 유진우씨 제공

인터뷰 며칠 뒤인 12일 유씨는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촉구하는 전국장애인철폐연대의 '릴레이 삭발 투쟁'에 참여했다. 벚꽃색으로 물들인, 그에게 '꾸밀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머리카락을 밀면서 그는 말했다.

장애인은 이동할 수 없었고, 이동할 수 없기에 교육받지 못했고, 교육받지 못했기에 노동할 수 없었고, 노동할 수 없기에 시설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이러한 삶이 싫습니다. 아니, 다시는 이러한 삶을 살지 않을 것입니다. 권리로 보장된, 법에 명시된 권리를 누리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유진우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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