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진영 '네버랜드에서'(문학수첩 상반기호)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얼마 전 선선한 날씨에 취해 긴 산책을 하다 한 대학교 캠퍼스까지 들어가게 됐다. 저녁 늦은 시간임에도 학생회관에서는 음악에 뒤섞인 왁자지껄한 소리들이 흘러 나오고 있었고 동아리방 창문은 저마다 불빛이 환했다. 코로나로 인해 한동안 적막했을 캠퍼스에 다시금 활기가 돌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문득 아련한 기분과 함께 학생회관이라는 곳이 어쩌면 청춘의 네버랜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면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 영원한 20대들의 서식지. 문학수첩 상반기호에 실린 문진영의 단편 ‘네버랜드에서’는 이제는 꿈에서나 찾아갈 수 있는 곳을 그리워하는, 영원히 나이 들고 싶지 않은 피터 팬과 웬디를 위한 소설이다.
주인공인 ‘나’는 가족들과 함께 태국 남쪽 바다 어느 작은 섬에 있는 '피터 팬’이라는 리조트에서 여행 중이다. 그가 보기에 가족들은 어른이 되고 난 뒤 더 이상 모험하지 않게 됐다. 바닷가에선 늘 제일 먼저 물에 뛰어드는 사람이었고 삶에서도 일단 뛰어들고 보는 타입이었던 언니는, 결혼을 하고 난 뒤 몸이 젖는 게 싫다며 바다에 뛰어들지 않는다. 자신이 헤엄치는 게 얼마나 멋있는지 잊어버린 채 조카를 먹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관심 없다는 듯 행동한다.
반면 이곳에서 만난 ‘론’이라는 인물은 마치 피터 팬 같다. 리조트에서 일하는 론은 피터 팬이 웬디에게 하늘을 나는 법을 가르쳐줬듯 나에게 수영을 가르쳐주겠다며 다가온다. 나는 그런 론을 보며 '젊음'에 대해 생각한다. 이곳에서 론은 해변 안전요원, 웨이터, 바리스타, 불꽃 곡예사, 스노클링 강사, 밴드 코러스 등으로 일하고 있었지만 결국엔 “그냥 젊은이”로 불렸다.
“그냥 젊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단지 젊기만 하다는 것은 젊음 외에 내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주인공은 자신이 “그렇다는 사실을 견디느라 젊음을 다 소모해 버린 것 같다”면서도 "무언가가 되리라는 목소리에는 늘 저항감을 느꼈던 것 같다”고 회상한다.
주인공이 도망치고 싶어하는 어른의 책임감은 결혼이다. 나는 스물세 살 때부터 7년간 사귀어온 남자친구 희욱과 결혼을 앞두고 있으면서도, 마치 기업이 합병하듯 결혼이라는 미래를 택하는 것에는 어쩐지 ‘저항감’을 느낀다. “결혼해서 행복해?”라는 질문에 “불행하지 않은 정도일까. 이 정도면 선방한 거 아냐?”라고 되묻는 언니를 보며 자신들의 젊음이 한때의 캠프파이어 같다고 느낀다.
“활활 타오르는 거대한 불을 바라보며 어린 마음이 뜨거워지기도 했던 것 같은데. 불이 꺼지고 나면, 모든 열기와 흥분이 사그라들고 난 시간 뒤에 찾아오는 모종의 쓸쓸함 같은 것이 있었다. 이것으로 축제의 시간은 끝났다는 것, 하얗게 남은 재는 그렇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주는 표식이었다.”
여행은 끝나기 마련이다. 웬디는 현실로 돌아와 어른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소설의 마지막, 나는 네버랜드를 떠나며 론을 향해 손을 흔들지 못한다. 네버랜드의 해안가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을 한참 동안 지켜볼 뿐이다. 그건 분명 쓸쓸한 결말이지만, 다만 한때 젊음의 불이 타올랐다는 기억은 언제까지 우리 안에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것만은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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