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동탄 고양이 살해범.. '동물판 N번방' 행동대장이었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동탄 고양이 살해범.. '동물판 N번방' 행동대장이었다"

입력
2022.04.19 10:30
수정
2022.05.15 10:25
0 0
경기 화성시 동탄 지역에서 길고양이를 학대 및 살해한 범인이 경찰 조사과정에서 자수했다. 이 사건을 최초 제보한 시민에 따르면, 이 범인은 동물학대 사진과 영상을 모바일 대화방에 올리는 '동물판 N번방'의 행동대장이었다. 제보자 B씨 제공

경기 화성시 동탄 지역에서 길고양이를 학대 및 살해한 범인이 경찰 조사과정에서 자수했다. 이 사건을 최초 제보한 시민에 따르면, 이 범인은 동물학대 사진과 영상을 모바일 대화방에 올리는 '동물판 N번방'의 행동대장이었다. 제보자 B씨 제공

길고양이 여러 마리를 학대해 죽인 범인이 경찰 조사 끝에 기소 의견으로 검찰 송치됐습니다. 동그람이 취재를 종합하면 이 범인은 최근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는 동물학대 대화방, 속칭 ‘동물판 N번방’에서 활동하던 행동대장 중 한 명이었습니다.

12일 경기 화성동탄경찰서는 올해 초 길고양이 7마리를 학대해 죽인 혐의로 20대 남성 A씨를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A씨는 자신이 거주하는 경기 화성시 동탄 지역과 자신이 근무하는 경기 용인시의 한 편의점 인근 등지에서 길고양이들을 죽인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그는 길고양이들의 다리를 부러뜨리거나 물고문을 시키는 등 학대한 뒤 살해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A씨의 진술로 드러난 사실입니다. 심지어 A씨는 지난 5일, 경찰 수사 도중 갑작스레 자수 의사를 밝혔습니다. 도대체 그는 왜 갑자기 자백을 한 걸까요? 이 사건을 처음으로 경찰에 고발한 제보자 B씨는 동그람이에 “A씨가 자백을 통해 형량을 줄일 목적이 있는 듯하다”며 그가 다른 사건과도 연관돼 있다고 밝혔습니다.

A씨가 자신이 근무하는 편의점 인근에서 학대를 가한 고양이의 모습.(왼쪽) 그는 나무 막대로 고양이의 이를 부러뜨리려 했으나 한쪽 눈을 터뜨렸다고 자백했다. 제보자 B씨 제공

A씨가 자신이 근무하는 편의점 인근에서 학대를 가한 고양이의 모습.(왼쪽) 그는 나무 막대로 고양이의 이를 부러뜨리려 했으나 한쪽 눈을 터뜨렸다고 자백했다. 제보자 B씨 제공

B씨가 말한 ‘다른 사건’이 바로 ‘동물판 N번방’ 사건입니다. 지난해 1월 카카오톡 오픈대화방에서 벌어진 온라인 동물학대 공간이 적발된 뒤, 정부는 대대적인 조사와 처벌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도 텔레그램, 디스코드 등 해외 메신저 서비스를 기반으로 동물학대 영상을 공유하는 ‘동물판 N번방’은 지속됐습니다. B씨는 “A씨가 이곳에서 지속적으로 동물학대 영상을 공유해왔다”며 “그는 경찰 조사에서 고양이를 7마리 정도 죽였다고 진술했지만, 실제로 이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B씨는 A씨가 근무하던 편의점 인근에서 많은 고양이 사체가 더 발견됐다고 동그람이에 전했습니다.

문제는 초동수사를 벌인 경찰 관계자들이 제보자들의 증거들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검찰 송치를 결정했다는 점입니다. 또한 A씨를 조사한 경찰은 영상을 공유한 텔레그램 대화방 참여자들에 대한 추가 수사를 벌이지는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이에 대해 B씨는 “경찰은 A씨가 자수한 뒤로 추가 제보에 대해 성실하게 대응하지 않았다”며 “검찰 송치 이후에는 ‘우리가 할 일은 끝났다’는 식으로 대응했다”고 말했습니다. B씨를 비롯한 제보자들은 이후 민원을 비롯한 다양한 방법으로 추가 수사를 요구할 예정입니다.

A씨가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양이 사체와 학대 도구는 그가 근무하던 편의점 인근에서 지속적으로 발견되고 있지만, 경찰은 수사를 더 확대하지 않고 검찰에 송치했다. 제보자 B씨 제공

A씨가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양이 사체와 학대 도구는 그가 근무하던 편의점 인근에서 지속적으로 발견되고 있지만, 경찰은 수사를 더 확대하지 않고 검찰에 송치했다. 제보자 B씨 제공

그렇다면 다시 고개를 든 동물판 N번방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제보자들에 따르면 이들의 행동 양태는 더욱 은밀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잔혹성에 따라 대화방을 3단계로 나눠뒀는데, 단계가 높아질수록 동물학대의 잔혹성도 높아지고 보안도 더욱 엄격해졌습니다. 1단계 대화방은 카카오톡 오픈대화방에 개설됐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직접적인 동물학대 영상을 올리는 건 없었습니다. 그저 고양이 사진이 올라오면, ‘고양이를 학대하고 싶다’는 류의 언어적인 동물학대에 그쳤죠. 카카오톡에서 진행된 ‘동물판 N번방’ 사건이 알려진 뒤로 카카오톡 내에서 동물학대 영상을 직접적으로 올리기에는 부담스러운 것으로 보입니다.

이곳에서도 간혹 동물학대 영상이 올라왔다가 삭제되는 일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스카우트’가 진행됩니다. B씨는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영상을 올렸던 사람과 같은 대화명을 사용하는 사람이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영상을 반복적으로 올리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말했습니다. 카카오톡 대화방 방장이 동물학대 영상을 삭제한 뒤, 그 영상을 올리는 이를 더 은밀한 2단계, ‘텔레그램 대화방’으로 초대한 겁니다.

A씨는 고양이가 자신을 할퀴었다는 이유로 머리를 주먹으로 가격하기도 했다. 이후 고양이는 한쪽 방향으로만 반복해서 도는 등 이상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제보자 B씨 제공

A씨는 고양이가 자신을 할퀴었다는 이유로 머리를 주먹으로 가격하기도 했다. 이후 고양이는 한쪽 방향으로만 반복해서 도는 등 이상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제보자 B씨 제공

텔레그램 대화방에서는 직접적인 동물학대 영상이 지속적으로 올라왔습니다. A씨는 이 공간에서 고양이를 물고문하거나, 다리를 부러뜨리는 등의 행위를 반복적으로 했습니다. 심지어 다리 하나를 부러뜨리면 ‘삼륜구동’, 두 개를 부러뜨리면 ‘이륜구동’이라 부르기도 했으며, 머리를 강하게 때려 고양이가 이상행동을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이들은 고양이의 다리를 부러뜨린 뒤 하나를 부러뜨리면 '삼륜구동', 두 개를 부러뜨리면 '이륜구동'이라 부르는 잔인함을 보이기도 했다. 제보자 B씨 제공

이들은 고양이의 다리를 부러뜨린 뒤 하나를 부러뜨리면 '삼륜구동', 두 개를 부러뜨리면 '이륜구동'이라 부르는 잔인함을 보이기도 했다. 제보자 B씨 제공

텔레그램과 디스코드 등 보안이 강화된 대화방에 들어가려면 입장 전, 동물학대 영상을 방장과 공유한 뒤 ‘가입 승인’ 작업을 거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높은 수위의 대화방에서는 누가 영상을 올렸는지 확인조차 불가능하고, 대화 내용 캡처가 불가능해 증거 확보를 원천적으로 차단했습니다.

이렇게 ‘인증 제도’가 도입된 것은 제보자들의 카카오톡 대화방 내용이 일부 공개된 뒤였습니다. 지난 2월, 동물권행동 ‘카라’는 제보자들로부터 대화방 내용을 전달받은 뒤 서울 성동경찰서에 동물판 N번방 사건 당시 피의자들을 전부 재조사해달라는 내용의 고발장을 접수했습니다. 또한 제보자들 중 일부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카카오톡 대화방 내용 일부를 공론화하면서 동물판 N번방 일당이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이들이 지난해 문제가 된 동물판 N번방 사건 피의자들과 동일한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과거 ‘동물판 N번방’ 사건 당시 내려졌던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이 ‘온라인 동물학대’가 더 은밀하게 벌어지도록 방조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동물판 N번방 사건 당시 경찰 조사를 받은 이들은 80명이었지만, 법적 처분을 받은 이는 3명에 그쳤습니다. 그나마도 정식 재판을 받은 이는 행동대장 이모씨 1명뿐이었습니다. 그는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 판결을 받았습니다. 동물판 N번방을 개설한 방장은 벌금 300만원 약식 처분을 받았고, 남은 1명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소년법원으로 송치됐습니다.

지난해 열린 동물판 N번방 행동대장 이모 씨의 동물학대 혐의에 대한 1심 판결은 징역 4년에 집행유예 2년으로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논란이 있었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지난해 열린 동물판 N번방 행동대장 이모 씨의 동물학대 혐의에 대한 1심 판결은 징역 4년에 집행유예 2년으로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논란이 있었다. 동물권행동 '카라' 제공

카라 최민경 정책행동팀장은 이에 대해 “당시 동물판 N번방 이용자들은 ‘더 자극적인 영상을 원한다’고 말하는 등 동물학대 방조 혐의가 짙었지만, 수사기관에서는 이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며 “사법부 역시 온정적인 판결로 범죄 예방의 기회를 놓쳤다”고 말했습니다. 최 팀장은 법원을 향해 다가오는 행동대장 이씨의 2심 판결에서는 유사 범죄가 이어지는 점을 참작해 더 엄중한 판결이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8leonardo8@naver.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