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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기는 건 검찰수사권이 아니라 국민의 권리다

입력
2022.04.19 19: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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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원
정명원검사

편집자주

17년차 베테랑 검사이자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저자인 정명원 검사가 전하는 다양한 사람과 사건, 우리가 사는 세상이야기.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의 검찰 깃발이 흔들리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의 검찰 깃발이 흔들리고 있다. 연합뉴스

'검수완박'이라고 한다. '완'과 '박'의 완고함에 절로 어깨가 움츠러든다.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검사인 내가 가지고 있었고 이제 곧 완전히 박탈될 것이라고 예고된 그것에 대해 돌아본다. 머지않은 날, 어쩌면 추억이 될지도 모르는 수사권에 대해서…

맞았다는 자와 안 때렸다는 자의 진술이 첨예한 폭행사건은 그들이 싸우는 것을 봤다는 목격자가 있으니 기소하면 된다는 결론으로 검찰에 송치되었다. 억울하다고 검사실에 찾아와 목소리를 높이는 피의자는 덩치가 크고 말이 급해서 영 미덥지 못했다. 딱 보면 누구를 때렸을 것 같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확인해보기로 한다. 목격자를 어렵게 찾아 전화를 걸어 보니 큰소리로 싸우는 것을 봤지만, 서로 때리고 맞지는 않았다고 한다. 확인하지 않고 기소했다면 큰일 날 일이었다. 의문과 억울함은 늘 그런 식이다. 어딘가 가려져 있고 일견 뻔해 보인다. 부지런히 의심해 보지 않으면 발견되지 않는다. 아동학대 사건에서도 살인 사건에서도 서민들의 피눈물을 빨아먹는 크고 작은 사기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능력 있고 성실한 경찰관이 수사한 기록이라 해도 미처 규명되지 못한 의문들과 드러나지 않았던 억울함들이 묻혀 있는 경우가 있다. 다른 사람이 다른 각도에서 봐야 보이고, 뻔해 보여도 다시 확인해 보는 번거로움이 있어야 드러난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의 죄를 물어 법정에 세우는 결정을 하기 전에 다시 확인하고 들추어 보려고 한다. 시간과 능력이 부족해서, 충분히 듣고 확인하지 못하는 것이 늘 죄스럽다. 최소한 형사부 검사로 일해 오는 동안 수사권이란 그런 것이었다. 권력을 뜻하는 '권'이 아니라 억울함이 없게 해 달라는 애끓는 민원 앞에 가장 합당한 답을 내어놓기 위해 최선을 다해 떨어야 하는 부지런.

이제 그 권한을 완전히 박탈하니, 다만 사람을 법정에 세우는 일만 하라는 입법자의 명령이 문 앞에 당도해 있다. 수사권이 완전히 배제된 기소권이라는 것이 아무래도 낯설어 자꾸만 묻는다. 우리는 이제 억울한 얼굴로 찾아온 민원인을 만나지 않아도 되는가. 은폐된 의혹들의 거적을 들추어 볼 수 없는가. 그렇다면 이제 무엇에 부지런을 떨고 무엇에 죄스러움을 느껴야 하는가. 더는 부지런을 떨지 않고 죄스럽지도 않은 마음으로, 사람을 기소해도 되는가. 정말 그런 것이 가능한가.

더 큰 문제는 불기소 사건이다. 이미 지난 법 개정으로 불기소사건의 종결권은 경찰로 넘어갔지만 그래도 제한적이나 고소인이 이의를 제기하고 검사가 다시 검토할 수 있는 길이 있었다. 이제 그 방도를 모두 차단한다고 하니, 경찰이 불기소하기로 결정한 사건을 구제할 방법은 없다.

미운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빼앗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빼앗기는 것은 국민의 권리다. 경찰에서 못다 한 말을 다시 들어 달라고 요구할 권리, 경찰의 수사결과를 다시 한 번 들추어 보고 아직 덜 드러난 사실을 찾아 달라고 요구할 권리, 사람을 기소하거나 불기소하는 결정을 하기 전에는 최선을 다해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해 달라고 요구할 권리 말이다. 도대체 그것을 빼앗아 무엇에 쓰려는지 알 수 없는 가운데 근거를 알 수 없는 '선진화'의 깃발만 높이 나부낀다. 남겨 두었던 6대 범죄의 수사개시권조차 다급히 박탈해야 할 사정이야 있다손 치더라도, 경찰의 수사를 보완하는 것조차 못하게 하는 명분은 무엇인지 172명의 발의자 중 누구라도 설명해 주길 바란다. 검찰이 아니라, 오직 범죄의 피해로부터 보호받고 억울한 일 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국민이라는 거대한 민원 앞에 말이다.

정명원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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