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치사 사건 범인 몰려 억울한 옥살이
수사검사 '삼례 3인조' 피해자 찾아 사과
"검사로서 제대로 못 살펴… 죄송합니다"
피해자들 "잘못된 처분 탓 삶 멈춰" 원망
살인자 꼬리표… 부모님 임종도 못 지켜
분노했지만 거듭된 사과에 참았던 '눈물'
"더 미워하지 않고 용서하게 해줘 감사"
"죄 없는 아이들이 사람 죽였다고 누명 쓰고 교도소까지 갔어요. 저는요, 용서 못 합니다."(최수영씨·'삼례 3인조' 최대열씨 누나)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용서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압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최성우 변호사·삼례나라슈퍼 사건 주임검사)
1999년 2월 6일 일어난 '삼례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 당시 금품을 훔치고 주인 할머니를 살해한 범인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이른바 '삼례 3인조'. 경찰의 가혹행위에 억지 자백한 이들을 기소하고, 진범을 무혐의 처분한 주임검사가 사건 발생 23년 만에 피해자들을 찾아가 사과했다. 이들과 함께 긴 세월을 버텨온 가족들은 수사검사의 거듭된 사과에 결국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사건 발생 당시 19세와 20세에 불과했던 '삼례 3인조'는 어느덧 불혹을 넘겼다. 30대였던 검사는 환갑의 변호사가 되어 이들 눈앞에서 용서를 구했다.
삼례 사건 주임검사 "당시 억울함 못 풀어준 제 잘못"
지난 17일 전북 완주군 삼례읍 한 카페에 '삼례 3인조' 임명선(43)·강인구(42)씨와 그 가족들이 모였다. 최대열(43)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으로 오지 못해 누나 최수영(45)씨와 매형 이모씨가 자리했다. 삼례나라슈퍼 강도사건 피해자였던 최성자(57)씨와 당시 유명을 달리한 유모 할머니의 유족 박성우(63)씨, 그리고 주임검사였던 최성우(61) 변호사까지 한자리에 모였다. 모든 일이 시작된 곳, 삼례에 이들이 모인 이유는 복잡하게 얽힌 악연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였다.
최 변호사는 1999년 2월 6일 발생한 삼례나라슈퍼 강도사건 당시 전주지검 주임검사였다. 경찰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3인조'라는 피해자 최성자씨의 진술과 사건 정황에 맞지 않는데도, 가정형편이 어렵고 배움이 짧았던 삼례 토박이 명선·대열·인구씨를 범인으로 지목해 체포했다. 폭행과 욕설을 못 견디고 허위자백한 기록이 검찰로 송치됐고, 최 변호사는 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못하고 강도치사 및 특수강도 혐의로 기소했다.
단 두 차례 공판으로 명선씨는 징역 6년을, 당시 미성년자였던 대열씨와 인구씨는 징역 장기 4년·단기 3년을 받았다. 누명을 벗을 기회는 있었다. 대법원 판결 확정 직후였던 2000년 1월 부산지검이 진범인 '부산 3인조'를 검거, 자백까지 받아 사건을 전주지검으로 이첩한 것. 그러나 '삼례 3인조'를 재판에 넘겼던 최 변호사가 다시 '부산 3인조' 사건을 맡았고 "자백에 신빙성이 없다"며 진범을 무혐의 처분했다.
17년이 지난 2016년 재심을 통해서 '삼례 3인조'는 무죄 선고를 받았다. 최 변호사는 속죄하기 위해 23년간 켜켜이 쌓인 이들의 원망 앞에 섰다. "모든 억울함을 풀어줘야 할 책무가 있는 주임검사로서 잘 살폈어야 했는데 제 잘못입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사과 말씀드리는 게 옳다고 생각해 찾아뵙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최 변호사는 깊이 허리를 굽혔다. 양손을 부여잡아봤지만 떨림을 숨기진 못했다. '삼례 3인조'와 사건 피해자, 그리고 가족에게선 "너무 늦었다"는 한맺힌 탄식이 터져나왔다.
재심 판결 뒤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소송과 최 변호사 측의 반박으로 법정 다툼이 길어지면서 이들의 간극은 더욱 커졌다. 법정에서 대리인들의 날 선 공방이 이어져 화해는 요원해보였다. 최 변호사는 "과거 (삼례 3인조의) 전력과 자백에 예단을 가졌던 것 같다"고 과오를 인정했다. 그는 "다만 검사로서 사건을 조작한 적은 없다는 억울한 마음이 있었고, 돌이켜보면 그 자체가 이기적인 생각이었다"고 반성했다.
최 변호사가 조금 더 일찍 찾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재판 중 대리인을 통해 사과 의사를 밝히기도 했지만, 닫힌 피해자들의 마음을 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최 변호사는 이들에게 "어떻게 살고 있을지 걱정돼 (피해자들을) 무작정 찾아가볼까 생각도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재판이 열리는 법원 주변에 가는 것조차 겁이 나 길을 돌아갈 정도로 두려움이 커졌다"고 털어놨다.
아픔 토로한 피해자·가족들 "그때 바로잡았다면…"
너무 먼 길을 돌아온 사과,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용서 또한 쉬울 리 없었다. 최 변호사가 사과한다는 소식에 이들도 무거운 마음으로 전날 밤을 뒤척였고, 반신반의하며 자리했다. 최 변호사의 고백을 듣던 최대열씨의 매형 이씨는 "그때 이 아이들은 얼마나 무서웠겠느냐"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사건 발생 당시, 대열씨는 건축 일을 하는 매형을 도와 삼례가 아닌 전주에 있었다. 이씨는 동료들과 경찰서를 찾아 대열씨의 사건 당일 알리바이를 강하게 피력했지만, 결국 처남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괴로움에 시달려왔다. 최 변호사는 이씨를 따라 나가 카페 앞 주차장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대열씨의 누나 수영씨도 "지금까지 고통받은 것을 생각하면 쉽게 용서할 수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 대열씨는 지적장애에도 하반신 마비와 척추장애 판정을 받은 부모를 대신해 가족을 부양하고 있었지만, 대열씨까지 수감되면서 집안은 무너졌다. 수영씨는 "아들이 교도소에 가있는데 부모 마음은 얼마나 안 좋았겠나. 돌아가실 때도 편히 눈을 못 감으셨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재심으로 무죄를 인정받았어도 살인자라는 꼬리표는 쉽게 떼어지지 않아 남동생은 지금도 고생하며 살고 있다"고 강조했다.
명선씨 또한 당시 교통사고로 사경을 헤매던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해야 했다. 동생 임모씨는 최 변호사에게 "배고파서 수박을 훔치기 시작한 뒤 자잘한 전과는 있었지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성품은 아니었다"고 항변했다. 임씨는 사건 발생 당시 '오빠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꾸며진 사건기록을 보며 '설마'하는 자신을 미워해야 했다. 재심 재판 때 처음 현장검증 영상을 통해 겁 먹은 오빠의 모습을 본 임씨는 힘없고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 서러웠다. 임씨는 "사회 생활할 나이에 교도소에 갔고, 살인자라는 낙인이 찍히면서 오빠의 삶은 멈췄다"며 "우리는 검사님 같은 아버지가 없어 20년을 이렇게 당했다"고 모진 원망을 쏟았다.
말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명선씨와 인구씨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명선씨는 최 변호사와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검사님이 밉지 않냐, 한마디하라'는 주변의 성화에 입을 연 명선씨는 "교도소에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많이 힘들었다. 사실 안에서 죽으려고 돌을 한 줌 삼키기도 했다"고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명선씨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아 수감 중 동생의 편지를 받고서야 아버지의 임종 소식을 알게 됐고, 빈소조차 지키지 못했다.
삼례나라슈퍼 강도사건의 피해자임에도 범인으로 몰려 형을 살던 '삼례 3인조'를 위해 자기 일처럼 재심 청구에 나섰던 최성자씨도 말을 보탰다. 최씨는 "10대 후반 아이들이 본 적도 없는 사람을 죽였다며 하늘 한 번 마음대로 볼 수 없는 교도소에서 몇 년을 살아야 했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때 검사가 바로 처분했다면 억울한 사람들 대신 죄 지은 이들이 감옥을 갔을 것"이라며 "23년이 지났지만 매번 사건이 언급될 때면 고통스러웠던 현장을 떠올리며 1999년으로 돌아가야 했다"고 토로했다.
검사의 잘못된 판단으로 진범을 확인하고도 기소하지 못한 채 결국 공소시효가 만료된 것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최성자씨를 포함한 피해자들은 2016년 자신의 범행이었다고 고백한 진범 이모씨를 용서했다. '부산 3인조' 가운데 자백한 이씨 이외에 배모씨는 극단적 선택을 했고, 전북에 거주하는 조모씨는 말을 바꿔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사망한 유 할머니의 막내 사위인 박성우씨는 "당시 제대로 단죄하고 교화하지 못해 지금도 진범이 지역사회를 활보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주임검사 용서한 피해자들…"이제 잊고 살고 싶다"
최 변호사를 이날 처음 봤을 때만 해도 격앙된 분위기가 있었지만 '삼례 3인조'와 그 가족, 사건 피해자와 유족은 결국 그를 품기로 했다. 최 변호사는 "검사에게 가장 중요한 인권을 제대로 살피지 못해 모두에게 큰 고통을 드렸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용서를 바라고 온 건 아니다. 그저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며 "잃어버린 날들을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겠지만 검사와 피의자의 악연을 끊고 명선·대열·인구씨의 고향 선배로서 곁에서 남은 생을 속죄하며 살고 싶다"고 재차 고개 숙였다. 최 변호사의 고향은 전북 순창으로 삼례가 자리 잡은 완주군과 멀지 않다. '삼례 3인조'가 더욱 눈에 밟혔던 이유다.
명선씨는 잠시 머뭇거리다 "이제 세월도 많이 흘렀으니 지난 사건은 잊고 싶다. 용서하겠다"며 최 변호사의 손을 맞잡았다. 최 변호사는 "고맙다"며 그를 안았다. 최 변호사는 오는 8월 첫딸을 품에 안을 인구씨에게 건넬 배냇저고리를 준비해왔다. 한사코 거절하던 인구씨는 결국 최 변호사의 마음을 받았다. 직접 참석하지 못한 대열씨에게도 최 변호사는 전화로 "너무 늦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대열씨 역시 그를 용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망설이던 '삼례 3인조' 가족들도 "당사자가 용서한다니 어쩌겠나. 그동안 마음고생 많았을 텐데 검사님을 놓아드리겠다"며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삼례나라슈퍼 사건 피해자였던 최성자씨는 최 변호사의 손을 어루만졌다. 그는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사과는 시점이 중요하다"며 "그럼에도 5년이나 10년 후가 아니라 오늘 와줘서, 더 미워하며 힘들어하지 않고 용서할 수 있도록 해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검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최씨는 "검사에겐 오늘도 내일도 읽을 수많은 사건 기록 중 하나였겠지만 이들에겐 삶의 전부였다"며 "또 억울한 이가 생기지 않도록 그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이 종이 한 장 함부로 넘기지 않고, 한 사람의 인생이라 생각하고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들이 화해한 지 이틀이 지난 19일, '삼례 3인조'와 최성자씨 등은 최 변호사에게 제기했던 손해배상소송 상고심을 취하했다. 배상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한 것이다. 취하서에는 "원고들은 피고(최 변호사)에게 그동안의 아픔과 서러움을 쏟아냈고, 피고는 당시 주임검사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이들의 아픔을 받아냈다. 원고들이 피고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조금이라도 위로가 됐다면 그것만으로도 소송을 마무리할 의미는 충분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앞서 삼례나라슈퍼 사건 피해자들은 국가와 최 변호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1, 2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재판부는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15억여 원을 배상하도록 했다.
이 사건을 포함해 낙동강변 살인사건,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 등 재심을 통해 무죄 선고를 받은 피해자들은 국가배상금 일부를 십시일반 기부해 현재까지 3억4,000만 원이 모였다. 이들을 대리해 온 박준영 변호사는 "재심 청구인과 그 가족을 중심으로 비영리법인을 세워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도울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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