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신임 한은 총재가 21일 취임했다. 전임 이주열 총재의 퇴임 이후 총재 부재 상황이 빚어진 지 20여 일 만이다. 한은은 지난 14일 금융통화위원회를 통해 총재 공백상태임에도 0.25%포인트 추가 금리 인상을 단행하는 등 물가 대응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이 총재 역시 취임 일성으로 “성장과 물가 간 상충관계(trade-off)가 통화정책을 더욱 제약하는 상황”이라며 4%대를 돌파한 인플레이션 대응을 강조했다.
이 총재가 말한 ‘상충관계’는 금리를 안 올릴 수도, 가파르게 올릴 수도 없는 딜레마 상황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물가급등과 2,000조 원에 육박한 가계부채 위기관리,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 등을 감안하면 추가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의 여파로 경기둔화 우려 또한 높아지는 만큼, 금리 인상이 경기회복을 제약하지 않도록 정교하고 유연한 통화정책을 가동하겠다는 얘기다.
이 총재가 취임사에서 구조개혁의 시급성을 강조한 점도 주목된다. 이 총재는 “지금 한국 경제는 코로나 이후 뉴노멀(새 기준) 전환의 도전을 이겨내고 더 도약할지, 아니면 고령화ㆍ생산성 저하로 장기 저성장에 빠질지 기로에 서 있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민간 주도로 질적 성장을 도모하고, 소수의 산업과 국가로 집중된 수출ㆍ공급망도 다변화하는 등 구조개혁을 통해 자원 재배분 노력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한은 총재로서 이례적으로 구조개혁까지 거론한 배경을 “우리 경제가 당면한 중장기적 도전을 생각할 때, 한은의 책임이 통화정책에만 머무를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아ㆍ태 국장을 역임한 경제학자로서 한은의 역할 확대 의지를 천명한 셈이다. 물가와 부채, 경기둔화, 구조개혁 등 이 총재가 거론한 핵심 사안들은 관리와 대응에 실패할 경우, 언제라도 위기를 부를 수 있다. 새 수장을 맞은 한은의 창의적 도전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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