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한 전시체제 전환·반대파 포용
규제 완화로 키이우 식량 위기 해결
언론 통합·입법화 투명성은 아쉬워
‘뭉치면 산다’는 격언을 우크라이나만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또 있을까. 전쟁이 석 달째 이어지지만 우크라이나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중심으로 내각, 의회, 국민이 모두 똘똘 뭉쳐 러시아에 맞서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물론 서방 당국자들까지도 러시아가 침공하면 우크라이나 정부가 쉽게 와해될 거라고 예상했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전쟁 이전 친러시아 세력과 친서방 세력으로 내분됐던 우크라이나가 단기간에 통합을 이룬 비결로 젤렌스키 대통령의 리더십과 신속한 전시체제 전환, 효율적 정부 운영을 꼽았다. 우크라이나 고위 공직자들 중에 망명하거나 피란한 사람은 아직 단 한 명도 없다. 정치인들은 키이우가 포격당하는 순간에도 의회에 모여 전시 관련 법안을 처리했다. 국민은 화염병을 들고 게릴라전에 뛰어들었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할 권리가 없다”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말은 우크라이나인 모두에게 적용되는 듯하다.
단결력이 움튼 결정적 계기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키이우 사수 선언’이었다. 개전 직후 자신의 ‘해외 도피설’이 나돌자 젤렌스키 대통령은 키이우 한복판에서 영상과 사진을 찍어 올렸다. 또 보좌관, 내각, 정부 관료들에게 키이우에 남으라고 지시했다. 세르히 니키포로우 대통령실 대변인은 “전쟁이 터지고 며칠간 모두가 충격에 빠졌다. 키이우에 남아야 하는지 아니면 탈출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대통령의 결정은 어느 누구도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는 키이우에 남아 싸웠고, 그것이 우리를 결속시켰다”고 NYT에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호소력 있는 연설로 국제사회의 지지와 군사 지원을 이끌어낸 사실은 유명하지만, 내치에서 유연성과 지도력을 발휘한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NYT에 따르면 전쟁 초기 젤렌스키 정부는 무기 조달, 식량 및 필수 물자 수송, 연료 공급 유지 등 세 가지 중점 사항을 정한 뒤 이와 관련한 규정을 재정비했다. 일례로 모든 식료품점에 단일한 공급망으로 물품을 신속히 전달할 수 있도록 화물 운송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전쟁 초기 러시아군에 포위됐던 키이우가 식량 위기를 해결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한편으론 부가가치세를 2%로 낮춰 경제 활동이 멈추지 않고 유지되게끔 독려했다. 경제가 지탱해야 국민들도 버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치적으로는 반대파를 포용했다. 페트로 포로셴코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전쟁 직전까지도 포로셴코 전 대통령의 부패ㆍ반역 혐의를 놓고 볼썽사나운 공방전을 벌였던 두 사람은 국가적 위기 앞에서 곧바로 의기투합했다. 자비로 시민군을 이끌고 있는 포로셴코 전 대통령은 “우리에게는 푸틴이라는 단 한 명의 적이 있을 뿐”이라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내민 손을 잡았다.
정실주의라 비판을 받던 측근 인사는 역설적이게도 일사불란한 대응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 됐다. 영화 제작자 출신 안드리 예르막 대통령 비서실장은 외교와 경제 정책을 총괄하고, 전직 언론인이었던 미하일로 포돌랴크 대통령 수석보좌관은 러시아와의 휴전협상을 이끌고 있다. 이에 반해 전장을 누비는 군 지휘부는 발레리 잘루즈니 총사령관을 비롯해 지난 8년간 돈바스 내전에서 실전 경험을 쌓은 베테랑 군인들에게 맡겼다.
물론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다. NYT는 국가 안보를 구실로 TV 방송국 6곳을 뉴스채널 1개로 통합한 조치는 언론자유 옹호론자들에게 비판을 사고 있다고 짚었다. 또 의회가 보안상 이유로 공개 토론 없이 법안을 만들고 신속 처리하는 과정에선 ‘투명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티모피 밀로바노우 대통령 경제보좌관은 “지금은 단결이 필요하다”며 “우크라이나의 다원적 정치문화는 다시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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