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한국포럼 정치분야 토론
박용진·이양수 의원, 박원호 교수, 박성민 대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48.56%' 대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47.83%'.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민심은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최소 득표율 차(0.73%포인트)의 절묘한 결과로 정치권에 경종을 울렸다. 거대 의석의 힘을 입법 독주에 활용한 민주당을 호되게 심판하면서, 국민의힘에도 “권력을 함부로 쓰지 말라”는 경고를 보냈다.
윤 당선인을 반대한 47.83% 이상의 국민을 아우르는 통합 대통령이 되는 것, 0.73%포인트라는 표차가 상징하는 분열의 정치를 치유하는 것. 윤 당선인 앞에 놓인 과제다.
윤석열 정부 출범을 2주 앞둔 26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2022 한국포럼'에 패널로 참가한 정치분야 전문가들은 ‘분열과 대결의 정치에서, 통합과 경쟁의 정치로’를 주제로 정치개혁 방안을 논의했다. 이들은 비대한 청와대 권력을 나누고, 극단적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현정 CBS라디오 앵커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양수 국민의힘 의원,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가 참석했다.
◇검수완박 합의 번복, 국민 뜻? 윤 당선인 뜻?
김현정 앵커= "지금 가장 뜨거운 현안인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민주당이 추진하는 검찰개혁안의 통칭)부터 짚어 보자. 민주당이 내달 3일 국무회의 법안 공포를 목표로 드라이브를 걸던 중 민형배 전 민주당 의원이 안건조정위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탈당해 여론이 악화했다. 박병석 국회의장 중재안으로 정리되는 듯했지만, 국민의힘이 합의를 파기하면서 이 또한 국회 정신 훼손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법안 내용보다 논의 과정에 중점을 두고 평가한다면."
박용진 의원= "검수완박을 추진하는 민주당의 의도나 민주당의 안이 완벽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천천히 하더라도 국민의힘과 같이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첫걸음을 떼는 과정에서 합의가 뒤집혔다. 국민의힘이 의원총회를 통해 중재안을 먼저 수용했음에도 주말 사이 권성동 원내대표가 윤 당선인을 만나고 돌아와서 태도가 바뀌었다. 입법부 차원에서 보완해나가면 되는데 살아있는 권력이 되어가는 대통령 당선인의 입장이 나오니 빛의 속도로 달라지는 것은 정말 안타깝다."
이양수 의원= "윤 당선인도, 권 원내대표도 국민 뜻을 보고 입장을 밝힌 것이다.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인 중재안을 받으면서 비판 여론을 예상했지만, 이렇게까지 큰 나무람이 있을 줄 몰랐다. 번복해야 하는 상황이 미안하고 부끄럽지만, 잘못을 지적받으면 자세를 바로잡고 고치는 것이 맞다. 검ㆍ경 수사권 조정 경과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보고 천천히 추진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민주당이 칼을 빼든 상황이기 때문에 6대 중대범죄(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대형참사, 경제, 부패)에 대한 직접 수사권 중 4개(공직자, 선거, 경제, 부패)는 검찰에 남기는 것이 옳지 않느냐고 다시 제안한 것이다."
박원호 교수= "국회 밖에선 검수완박 입법 논쟁을 복잡한 심경으로 보고 있다. 특히 ‘왜 정권이 끝나가는 지금이냐’는 질문이 많다. 검찰개혁의 핵심 포인트는 검찰이 준사법부가 아닌 행정부의 한 기관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개혁 아이디어나 개혁 작업이 행정부를 경유했어야 했는데, 현 정부는 5년 동안 그것을 하지 못했다. 나서서 해결하는 것도 정치이지만, 제대로 할 때를 기다리기 위해 포기하고 돌아서는 것도 정치다."
박성민 대표=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잘된 합의'라는 의견을 피력한 만큼, 중재안을 없던 일로 할 순 없다. 세 가지 전망이 있다. 우선 민주당이 국회에서 단독으로 원안을 통과시킬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본다. 박 의장의 중재안에 국민의힘이 요구 한 두 가지를 더해 타협하는 것도 가능성이 30%를 넘지 못할 것 같다. 결국 민주당이 중재안을 통과시키는 방안이 유력해 보인다. 박 의장 중재안이 통과되면 국민의힘 원내지도부는 상처를 입게 되고, 민주당도 결국 입법 독주를 강행했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여야가 다소의 이미지 손상을 나눠 갖고, 문 대통령이 법안을 최종 공포할 것 같다."
“尹정부, 에이스 못 데려와”… 청문제도 개선 요구도
국회 인사청문회 절차에 들어간 윤석열 정부 1기 내각 인선에 대해선 대체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과도한 신상털기식 인사청문회의 폐해에 대한 지적도 있었지만, 각론에선 의견이 나뉘었다.
김 앵커= "내각 인사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
이 의원= "국회의원들이 내각에 서로 들어가려 싸우는 행태가 없었다. 대선 공신들의 ‘자리 나눠 먹기’는 극복한 것이다. 되도록 전문가를 영입하려는 노력도 많았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도덕성 의혹으로)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지만, 내정 과정에선 전문성을 봤다. 과거 의사 출신 보건복지부 장관(박근혜 정부의 정진엽 장관 )이 메르스 사태 이후 감염병 대응 시스템을 잘 구축한 덕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초기 파고를 잘 넘은 것을 참고했다."
박 의원= "이번 인사의 특징은 안배 없는 능력주의의 낯뜨거운 파탄'이다. 모든 정부가 인사 때 지역, 성별 등을 안배했다. 윤 당선인은 대놓고 “안배하지 않겠다” “능력만 보겠다”고 했는데, 그 능력이 아빠 찬스를 쓰는 능력이나 사외이사를 맡는 능력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기대를 걸었던 30대 국무위원은 찾아볼 수 없고, 곧 없어질 여성가족부 장관에 여성을 앉힌 것도 모욕적이다. ‘발목 잡기’ ‘내로남불’이라는 말을 듣더라도 청문회에서 철저하게 검증하겠다."
박 교수= "인사청문회 자체가 검증보다는 카메라 앞에서 소속 정당의 대리전을 펴는 양상으로 진행되다 보니 제안을 받아도 장관직 수락을 꺼리는 사람이 많다. 장관 평균 재임기간이 13개월 정도 된다는데, 짧은 기간에 능력을 최대한 뽑아 쓸 수 있는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 위장 전입 여부나 신용카드 사용 내역보다 궁금한 건 그 사람의 능력과 비전이다. 학계에선 청문 과정을 사적 영역과 정책 분야를 나눠서 진행하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자녀와 함께 볼 수 있는 인사청문회가 됐으면 좋겠다."
박 대표= "윤 당선인이 안배를 안 하겠다는 건 문재인 정부 권력기관 인사에 대한 불만이나 반발로도 보인다. 안배를 안 할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능력만 본다고 했으면 모두의 고개가 끄덕여질 에이스를 데려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지금 같은 인사청문회 제도에선 최고 에이스를 데려올 수 없다. 극단적으로 국회 인준이 필요한 국무위원에 대해서만 세게 청문회를 하고, 나머지는 대통령에게 맡기는 것도 좋다고 본다."
박 의원= "인사청문회를 없애면 제왕적 대통령제가 더 강화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국무위원이 되는지 국민이 알 필요도 있기 때문에 적절치 않다."
"제왕적 대통령제 없애야" "비토크라시가 더 문제"
김 앵커= "정치 개혁 이슈로 넘어가 보자. 한국일보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진행한 ‘대한민국 지속가능 솔루션’ 토론에서 제왕적 대통령제를 손 보고,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과제가 제시됐다."
박 교수= "’제왕적 대통령제’가 아니라 ‘제왕적 대통령’이다. 제도에 제왕성이 들어있는 게 아니라 우리 문화에 잔잔하게 깔려 있다. 대통령을 용에 비유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제도에 없는데 관행적으로 권력이 행사되기도 한다. 국공립대 대학 총장은 법적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가 아님에도 대통령의 ‘오케이’ 사인이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개헌을 하더라도 제왕적 대통령 개선이 어려울 수도 있고, 반대로 굳이 개헌이라는 큰 칼을 쓰지 않고도 개선이 가능할 수도 있다."
박 대표= "제왕적 대통령이란 말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입법ㆍ사법ㆍ언론을 모두 장악했던 시대라면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현재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비토크라시(Vetocracyㆍ상대 주장에 무조건 거부부터 하는 파당 정치)다. 권력구조 개편부터 할 게 아니라 선거제도를 먼저 바꾼 다음 이에 조응하는 제도로 개헌을 하는 게 맞는 순서다. 강성 지지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도록 소선거구제를 푸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이 의원= "제가 30세부터 26년간 국회에서 청춘을 보내며 느낀 건 제왕적 대통령제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그 폐해를 봤기 때문에 확신한다. 과거와 달리 정치권보다 국민의 집단지성이 높아졌다. 국민들이 소수 엘리트에게 끌려가지 않고, 직접 미래와 정책을 결정하는 시대가 돼야 한다.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보다 카이스트 연구진의 집단지성이 훨씬 뛰어난데도 계속 청와대 보좌관이 정책을 정한다면 어떻게 선진국이 될 수 있겠나. 청와대와 대통령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
박 의원= "전적으로 공감한다. 대한민국은 영도자적 리더십이 필요 없는 나라다. 국부로 추앙받는 사람이 나라를 끌고 갈 게 아니라, 국민 의견이 잘 통합되도록 합의를 만드는 게 정치 리더의 할 일이다. 국회와 내각, 지방정부가 권력을 나눠야 한다. 청와대에서 좌지우지하는 방식으로 부처가 움직이는 것도 불행하다. 국무총리를 국회가 추천하도록 하자. 국회가 추천한 총리는 청문회도 필요 없고, 현재 사문화된 헌법상 권한을 다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새 정부, 지지자들에게 욕먹을 용기 내야”
김 앵커= "청와대가 너무 비대하고 청와대 행정관들이 행정부를 좌지우지하는 건 정상적이지 않다는 문제 의식이 공유되고 있는 것 같다. 새 정부에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
박 대표= "문재인 정부에 가장 아쉬운 건 국민 통합을 하지 못하고 극단적 진영논리로 갔다는 점이다.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은 지지자들에게 욕먹을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정치를 할 자격이 있다. 윤 당선인은 하나만 같아도 동지로 보는 리더십을 발휘해 국민통합을 이뤘으면 한다."
박 교수= "같은 의견이다. 문재인 정부가 남긴 비관적 유산은 40%의 똘똘 뭉친 지지자가 있다면 어떤 어젠다도 관철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다. 지난 대선 때 여야 대선후보도 극단적 방향으로 중간 투표자들을 고립시켰다. 양극화를 그만둘 정치적 인센티브가 없어 정치지도자의 리더십에 기댈 수밖에 없다. 윤 당선인은 양당의 대립적 공존관계를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 문제를 선제적으로 해결해줬으면 좋겠다. 아니면 파국이다."
이 의원= "윤 당선인은 민주당이 반대하는 사안에 먼저 힘을 쏟기보다 할 수 있는 것부터 했으면 좋겠다. 대표적인 게 행정구역 개편이다. 도를 없애고 행정구역을 30~40개로 나눠 자급자족 기능을 가진 도시가 기능할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행정구역을 개편하면 자연스레 중대선거구제 개혁, 권력구조 개편까지 이어갈 수 있다. 선진국형 권력분산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박 의원= "진정한 리더의 가장 멋있는 모습은 아닌 줄 알면서 지지자에게 끌려가는 게 아니라, 아니라고 말하고 모든 모욕을 짊어지고 가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검수완박 원안대로 강행하지 않으면 다음 선거는 없다’는 문자가 저에게 계속 오고 있다. 그래도 국회의원들은 용기를 가져야 하고, 특히 윤 당선인이 지지자 바람과 달라도 국가의 미래와 국민 행복을 위해 좋은 결단과 결심을 해주길 기대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