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美 2001년 탄저균 테러 사건
편집자주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9ㆍ11 테러 악몽이 여전했던 2001년 10월 2일 오전 2시 30분. 한 남성이 체온 39도의 고열과 구토감을 호소하며 플로리다주(州) 팜비치카운티 병원 응급실로 들어왔다. 그의 이름은 로버트 스티븐스(63). ‘아메리칸미디어그룹’ 산하 대중지(타블로이드) ‘선’의 사진부장이었다. 응급실 의사들은 그가 뇌수막염 의심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추가 검사에 나선 의료진은 이튿날 아연실색한 결과와 맞닥뜨렸다. 증상의 원인이 바로 탄저균이었던 것. 병원은 곧바로 탄저병 발병 소식을 보건당국에 알렸고, 그의 근무지는 폐쇄됐다.
스티븐스의 증세는 빠르게 악화했다. 병원에 스스로 걸어 들어왔던 그는 하루 뒤 인공호흡기 없이는 숨쉬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결국 입원 나흘 만인 5일 숨을 거뒀다. 1976년 이후 25년 만에 미국에서 발생한 탄저병 사망자였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생화학 테러 공포에 휩싸이게 만든 흰색 가루, ‘탄저균 테러 사건’의 첫 희생자이기도 하다.
언론사ㆍ의회, 탄저균 우편물 타깃
건강하던 남성을 단 며칠 만에 죽음으로 이끈 탄저균이 어디서 왔는지를 두고 미국 사회는 술렁였다. 특별할 것 없던 일상에 단 하나, 다른 점이 있었다면 그가 증상 발생 며칠 전 사무실로 온 정체불명의 소포를 열어 봤다는 것뿐이었다. 우편물 안에 탄저균이 있었다는 얘기다. 탄저균은 극소량으로도 생화학 무기로 전환돼 수많은 인구를 감염ㆍ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전 세계 143개국이 사용을 금지하는 협약도 체결했다. 탄저병은 피부형, 소화기형, 호흡기형으로 구분되는데, 특히 호흡기형의 경우 초기에 항생제를 투여하지 않으면 치사율이 80~95%에 이를 만큼 치명적이다.
스티븐스의 죽음은 이후 7년간 이어진 미국 탄저균 사건의 ‘신호탄’이었다. 이후 미국 곳곳에서 탄저균이 담긴 편지ㆍ소포가 발견됐다. 뉴욕에서는 유력 언론사가 타깃이 됐다. 12일에는 NBC방송 간판 앵커 톰 브로코의 비서 에린 오코너(38)가 브로코 앞으로 온 우편물을 개봉한 뒤 피부형 탄저병을 앓았다. 수일간 고열에 시달려야 했고, 가슴에는 검은 반점이 생겼지만 다행히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다. 같은 날, 뉴욕타임스(NYT)의 테러전문 기자 주디 밀러스 앞으로도 한 통의 소포가 도착했다. 정체 불명의 흰색 가루부터 위협성 편지까지, NBC 사례와 유사했다. NYT에는 비상이 걸렸다. 편집국엔 몇 시간 동안 소개령이 내려졌고, 13일자 신문 일부 페이지는 발행하지 못했다. 이날 또 다른 매체인 뉴욕포스트와 네바다주에 위치한 마이크로소프트(MS)사에서도 탄저균이 담긴 우편물이 발견됐다.
미국 민주주의 심장부인 국회의사당도 탄저균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10월 12일과 11월 16일, 약 한 달 간격으로 당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였던 톰 대슐 의원과 같은 당 상원 법사위원장인 패트릭 리히 의원 사무실에 수상한 흰색 가루가 담긴 상자가 도착했다. 수법은 같았다. 두 소포 모두 뉴저지주 주도(州都) 트렌턴 집배신센터 소인이 찍혀 있었고, 미국 안보를 위협하는 내용이 담긴 편지가 동봉됐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두 사람이 받은 편지의 필체도 비슷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두 사람에게 전달된 탄저균 종류는 이전 사건에서 FBI가 수집한 균주와 조금 달랐다. NYT는 “대슐과 리히 의원 앞으로 온 우편물 속 탄저균은 포자가 공기로 전파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고 분석했다. 고도의 정제 과정을 거치면서 살상 능력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그해 12월까지 미국에서 5명이 탄저병으로 숨졌고, 17명의 생명이 위독한 상황에 이르렀다. 감염자 중에는 생후 7개월의 아이도 포함됐다. 60일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이미 20세기 100년간 미국에서 발병한 탄저병(18건) 규모를 훌쩍 뛰어넘었다.
알카에다의 범행? 美 과학자 소행?
누가 죽음의 백색 가루를 보냈을까. 알카에다 수장 오사마 빈 라덴 등 이슬람 테러조직이 가장 먼저 용의선상에 올랐다. 당시 미국은 9ㆍ11 사태 직후 테러에 대한 응징으로 아프가니스탄 공격에 나서고 있었다. 테러범들이 생화학 무기를 이용해 미국에 보복했다고 본 것이다. 그럴듯한 정황도 속속 발견됐다. 탄저균 피해자들이 받은 편지에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죽음을” “알라는 위대하다” 등 미국과 동맹국을 힐난하고 이슬람을 찬양하는 내용이 담겼다. 중간중간 눈에 띄는 ‘철자 오류’는 범인이 비(非) 미국인일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일각에서는 언론사와 다국적기업이 공격 대상이 된 점에 주목했다. 9ㆍ11 테러 대상이 된 미 국방부 청사와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상징한다면, 언론사와 MS를 겨냥한 탄저균 살포는 ‘미국 문화’에 대한 테러라는 해석이 뒤따랐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도 알카에다 배후설을 공공연하게 꺼내 들었다. 딕 체니 당시 부통령은 “빈 라덴은 지난 몇 년간 생화학 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 무기를 획득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알카에다와 탄저균 테러 관련성을 시사했다. 당연히 미국 안팎의 이슬람인은 ‘잠재적 테러리스트’가 됐다. 당시 스티븐스가 근무했던 매체 구독자 중 중동식 이름을 가진 사람까지 모조리 수사 대상에 올랐지만 별다른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모든 과학적 증거는 범행이 미국 내에서 일어났을 가능성을 가리켰다. 전문가들은 미국에서 발견된 편지 속 탄저균 성분이 중동의 것과는 다르다는 데 주목했다. 바버라 로젠버그 미 과학자 연맹 생물무기그룹 담당 박사는 “의회에 배달된 편지 속 탄저균에는 이란 등이 생물학 무기 제조에 사용하는 ‘벤터나이트’가 아닌, 미국이 사용하는 ‘실리카’가 들어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편지에 사용된 균주는 ‘에임스(Ames)’라는 변종으로, 1980년부터 미군 전염병연구소가 세균전(戰) 연구를 위해 보관해 왔고, 미국 내 정부 관련 연구소와 캐나다, 영국 연구기관에 공급했다”고 보도했다. 탄저균의 유전자 배열과 특성을 감안할 때, 미국 내에서 생산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결국 같은 해 12월 미국의 대(對) 탄저균 테러 전선을 이끌던 FBI는 국내로 수사 방향을 돌렸다.
망상증 시달린 과학자의 단독 범행일까
수사망은 빠르게 좁혀졌다. FBI는 과학자 등 9,100명을 인터뷰했고 6,000건이 넘는 대배심 소환장이 발부됐다. 25만 달러(약 3억2,000만 원)의 현상금까지 내건 끝에, 탄저균 포자를 제조할 수 있는 미국 내 연구원 25명을 유력 용의자로 압축했다. 그리고 2005년 4월, 사건 발생 3년 6개월 만에 용의자가 단 한 명으로 모아졌다. FBI는 35년간 메릴랜드주 미 육군 생화학전연구소에서 근무하는 브루스 아이빈스(62) 박사의 단독 범행에 초점을 맞췄다.
수사팀은 △그가 소속된 연구소에 있던 변종 탄저균의 유전적 특성이 희생자들의 세포 샘플 분석 결과와 일치하는 점 △사건 발생 무렵 한 달 최고 30시간의 ‘수상한 야근’을 한 점 △우편물 발송지인 뉴저지주가 연구실 근처라는 점 △가끔 심각한 망상과 정신착란 증세를 보여 ‘미치광이 브루스’라는 별명을 얻었다는 동료 직원의 증언을 확보한 점 등을 토대로 그를 유력한 용의자로 꼽았다.
2008년 연방법원이 공개한 수사기록에는 FBI가 “기울어 가는 연구와 망상증에 시달리던 탄저균 전문가”로 묘사한 대목도 있다. 정신 병력이 있던 그가 자신이 개발한 탄저균 백신이 부적격 판정을 받자 홧김에 범행을 저질렀을 수 있다고 본 셈이다. 제프리 테일러 당시 연방검사는 아이빈스 박사가 자신이 개발한 탄저균 백신 필요성을 일깨우려 하거나,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가 임신중절 찬성론자인 대슐ㆍ리히 의원을 노렸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하지만 미심쩍은 부분은 한둘이 아니었다. 수사당국이 공개한 자료 대부분은 ‘정황 증거’에 그쳤다. NYT는 “해당 연구실에서 변종 탄저균에 접근할 수 있었던 연구원은 10명 이상인 데다 그가 탄저균 우편물을 발송했다는 명백한 증거도 없다”고 꼬집었다. 모든 정황이 아이빈스 박사를 유죄로 입증하기 위해 억지로 끼워 맞춰졌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몰아가기식 수사와 그에 따른 어정쩡한 증거는 끝내 법원의 판단을 받지 못했다. 2008년 7월 29일, 아이빈스 박사가 검찰 기소를 일주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까닭이다. 심적 압박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왔다. 2년 뒤인 2011년, FBI는 “일부 과학적 의문이 남아 있긴 하지만 유죄 증거가 압도적”이라고 주장하며 수사를 공식 종결했다.
결국 아이빈스 박사는 탄저균 테러 용의자로 역사에 남게 됐다. 그러나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결론 탓에 많은 미국인들은 이 사건을 말 그대로 ‘콜드케이스’로 보는 분위기다. 진범은 따로 있을 것으로 본다는 얘기다. 실제 그의 죽음 후 FBI가 그와 가족들에게 압박을 가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WP는 FBI 요원들이 그의 딸(24)에게 접근, 탄저균 희생자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당신 아버지가 한 일”이라고 윽박지르는가 하면, 아들에게는 사건을 도와준다면 250만 달러의 상금과 스포츠카를 사주겠다고 회유한 사실을 공개했다. 아이빈스 박사의 동료는 “그의 자살은 수사관들의 모욕과 압박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또 다른 동료에게 “FBI가 우리 가족을 위협했다”며 수사에 격분하는 내용이 담긴 이메일을 보낸 사실도 드러났다. 집요하고 과학적 수사의 개가가 아닌, 엉뚱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과잉수사였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지금까지도 미국 내에서는 수사 과정을 문제 삼으며 재수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탄저균 피해자 중 하나였던 대슐 의원은 몇 해 전 AP통신에 “수사 당국은 7년에 달하는 기간 동안 너무 많은 문제점을 보였다”며 엉터리 수사를 비판했다. 그러나 수사당국이 스스로 덮은 사건 파일을 11년이 흐른 지금 다시 열 리 만무하다. 9ㆍ11 테러 직후 미국 전역을 ‘백색 가루 공포’로 몰아넣었던 탄저균 테러의 진실은 영원히 미궁에 빠질지도 모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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