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핑계로 전범국 족쇄 푸는 일본
세 번 한국 버린 미국, 일 재무장 용인
신구 정부 힘 모아 국가 대전략 세워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일본이 심상찮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발걸음이 빨라졌다. 1904년 한반도와 만주에 대한 지배권을 놓고 전쟁까지 벌인 러시아와 일본은 지금도 쿠릴열도 4개 섬을 두고 영토 분쟁이 진행중이다. 그런데 숙적 러시아가 국제사회의 공적이 됐으니 일본엔 기회다. 이참에 2차대전 전범국이란 족쇄에서 벗어나 다시 ‘전쟁 할 수 있는 나라’로 복귀하겠다는 야욕까지 엿보인다.
우크라이나에 자위대 헬멧과 방탄조끼를 지원한 건 신호탄이었다. 이어 자위대 수송기도 띄웠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미국 핵무기를 일본에 배치해 공동 운영하는 '핵 공유'까지 거론했다. ‘핵무기는 보유하지도, 만들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비핵 3원칙을 깰 심산이다. 적이 일본을 공격하기 직전 미사일 발사 기지를 파괴하는 ‘적 기지 공격 능력’도 수면 위로 올렸다. ‘반격능력’으로 이름을 바꾸긴 했지만 무력 공격을 받았을 때에만 비로소 방위력을 사용하는 전수방위(專守防衛) 원칙까지 폐기하겠다는 이야기다. 자민당은 올해 국내총생산(GDP)의 0.9%인 방위비(5조4,000억 엔, 약 54조 원)를 5년 안에 배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일본의 행보가 미국의 용인 아래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1월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의 첫 화상 회담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중국 부상과 북핵 위협을 들먹이며 방위력을 근본적으로 강화하겠다는 운을 띄웠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일본 방위비 지출을 늘리겠다는 결정을 환영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승인이다. 중국을 견제해야 하고 북한 핵 미사일에 러시아까지 말썽을 부리며 골치가 아픈 미국에 일본의 재무장은 천군만마이다.
일본이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돌아오는 건 우리에겐 악몽이다. 한국 등 일본 군국주의 피해국 반발은 커질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개의치 않을 공산이 크다. 이미 3차례나 한국을 외면한 역사가 있다.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일본의 한국 지배를 용인했다. 1943년 얄타회담에선 소련의 한반도 신탁통치안을 받아들여 남북 분단의 씨앗을 뿌렸다. 1950년 애치슨라인에선 한반도를 제외, 전쟁의 빌미를 제공했다. 지금도 일본은 구성원이지만 우린 빠진 쿼드(QUAD)가 제2의 애치슨라인이 되는 것 아니냔 우려가 없잖다. 미 제7함대 항공모함이 최근 동해에서 일본 해상자위대 구축함과 4년 반 만에 연합훈련을 벌인 것도 찜찜하다. 다음엔 우리 땅 위에서 미일 군사 공조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은 선제 핵공격 협박까지 했다. 중국은 독재와 통제를 강화하며 광기의 시대로 돌아갈 참이다. 이런 급변기에 우린 요란한 정권 교체기를 보내고 있다. 우물 밖 변화엔 눈을 감은 채 신구 권력과 여야는 자신들 잇속을 지키는 데에만 혈안이다. 이미 배터리가 방전된 대통령도, 집무실 이전에만 꽂힌 당선인도 위기의식을 찾아볼 수 없다.
10여 일 후면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다. 다시 열흘 후면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한다. 미국 쪽으로 클릭 조정이 예상된다. 안보와 경제가 하나인 시대, 한미 동맹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면서도 미국에 물을 건 물어야 한다. 일본 재무장에 대한 입장이 뭔지, 한국은 고려하고 있는지, 한미일 군사 협력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유사시 자위대의 한반도 개입도 검토하는지, 이 경우 지휘권은 어디에 있는지 등 확인할 게 많다.
지금은 신구 권력이나 여야 구분 없이 지혜와 힘을 한데 모아 국가 대전략을 마련하고 일본 재무장에도 대비해야 한다. 검수완박 공방으로 한 줌 기득권 사수에 목맬 때가 아니다. 국가 최고 지도자의 제1책무는 나라를 지키는 것이다. 일본은 한 번도 우리 허락을 받고 온 적이 없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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