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이거 누가 이랬어요?" 사진 취재에 몰입해 있던 기자에게 아이가 다가와 물었습니다. 아이의 손가락은 기둥이 잘려 나가 밑동만 남은 가로수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지난 22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의 한 보도 위. 바로 옆 호텔 신축 공사장 가림막을 따라 심어져 있던 메타세쿼이아 등 아름드리나무들이 일제히 베인 채 밑동만 남아 있었습니다. 이곳을 지나던 주민 이미숙(41)씨는 아이의 손을 잡은 채 가로수의 아픈 흔적들을 한참 동안 살폈습니다. 이 일대 보도 70여m 구간에서만 잘려 나간 가로수가 총 70여 그루, 잘린 기둥의 개수만큼 덩그러니 남은 밑동을 바라보며 8세 아이는 마음 아파했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씨는 "가로수가 사라지기 전 아이와 함께 자주 산책하던 길"이라며 주민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가로수를 몽땅 베어버린 지자체를 향해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이곳의 가로수는 왜 하루아침에 무참히 베인 걸까요? 지난 2018년 인근에서 호텔을 신축 중인 시행사는 호텔이 완공되면 차량 통행량이 늘어 교통 흐름에 지장이 생기니 1차선 확장이 필요하다며 성남시에 가로수 절단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성남시 경관심의위원회는 가로수를 절단할 경우 도시 경관이 달라진다는 이유로 '절단 불가'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관할 구청인 분당구가 지난 3월 70그루에 달하는 가로수를 깡그리 베어 버린 겁니다.
이 같은 조치에 경관심의위원회가 거세게 항의했지만 성남시는 개정된 조례안을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지난해 4월 16일 개정된 ‘도시숲 등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조례’에는 '흉고직경(가슴높이 줄기 지름) 25㎝ 이상 대경목, 병해충 피해목, 노쇠 목 등 옮겨 심은 후 활착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수목은 제거한다'고 돼 있습니다.
오래된 가로수의 벌목을 사실상 허용하는 조례에 대해 최진우 가로수시민연대 대표는 "시간과 비용의 문제일 뿐, 이식이 안 되는 나무는 거의 없기 때문에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고, 벌목은 최후의 수단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 서울시는 지난 2008년 5월 광화문광장 조성 당시 세종로에 심어져 있던 수령 49~93년, 흉고직경 50~68㎝의 은행나무 29그루를 총 8억7,500만 원을 들여 1년여에 걸쳐 이식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최 대표는 "나무가 조금만 커도 바로 제거해 버리는 건 한마디로 '생태 학살'이나 다름없다"고 말했습니다.
분당구의 벌목 조치로 이득을 본 건 시행사뿐입니다. 2018년 경관심의위원회는 나무 한 그루당 예상 이식 비용을 1,000만 원 선으로 책정하면서 시행사는 70그루의 이식 비용 7억 원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식 대신 벌목을 하면서 그루당 404만1,428원씩 총 2억8,000여만 원만 지출하게 되어 시행사는 최소 4억 원가량을 아낀 셈입니다.
도심의 가로수는 도시 미관을 향상시키는 것은 물론 미세먼지 등 대기 오염물질을 줄여 주고, 뜨거운 여름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도시와 인간에게 꼭 필요해 '그린 인프라'라고도 불리는 '고마운' 가로수지만, 인간들이 자행하는 '생태 학살'로 인해 적지 않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8세 어린이 눈에도 처참해 보이는 밑동 가로수, 여러분 눈에는 어떻게 보이시나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