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rie R. Cassileth(1938.4.22~ 2022.2.26)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이 1985년 7월 결장암 진단을 받았다. 약 5㎝ 크기의 종양 두 개였다. 그는 곧장 메릴랜드 베데스다 해군 메디컬센터에서 종양 제거수술을 받았고, 미 국립암연구소 외과의 스티븐 로젠버그는 "전이가 없어 완치 확률이 50% 이상"이라고 밝혔다. 며칠 뒤 백악관은 "대통령은 평소처럼 쾌활하게 직무를 수행 중"이라고 전했고, 언론은 레이건의 건강하고 낙관적인 태도가 암 극복에 큰 도움이 되리라는 의료 전문가들의 말을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백악관은 이듬해 6월에야 문제의 종양이 악성(암)이 아니었다고 밝혔고, 레이건은 19년을 더 살고 2004년 폐렴 합병증으로 별세했다. 하지만 지금도 레이건은 "암을 이겨낸 대통령"으로, 그가 투병 중 챙겨 먹었다는 어떤 버섯을 홍보하는 글이 인터넷을 떠돌고 있다.
'암도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속설
'병도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희망, 즉 마음만 단단히 먹으면 암도 이겨낼 수 있다는 말은 지금도 환자들이 흔히 듣는 조언이자 격려일 테지만, 레이건이 수술 받던 당시에는 의사들도 대체로 동조하거나 적어도 적극 부정하진 않던 일종의 의료상식이었다. UCLA 정신의학과 교수 조지 프리먼 솔로몬(George Freeman Solomon)은 1978년 저서 'Getting Well Again'에서 '심상 기법(visualization technique)'이란 걸 소개했다. 백혈구가 혈관을 타고 몸 속을 돌면서 암세포를 잡아먹는 상상만 해도 면역기능이 개선되고 암 예후도 좋다는 요지였다. 그의 책은 미국서만 50만부 넘게 팔리며 100여개 언어로 번역 출간됐고, 그는 암센터(Fort Worth Cancer Center)를 열어 환자를 돌보며 6,000여 명의 카운셀러를 양성했다. 저명 정치 저널리스트 겸 작가 노먼 커즌스(Norman Cousins, 1915~1990)는 79년 자신이 앓던 퇴행성 질환인 강직성척수염을 비타민C와 웃음요법으로 극복했다며 그 사연을 책('Anatomy of an Illness')으로 소개했다. 뉴욕타임스는 대체요법으로 암을 이겨냈다는 이들과 치료법 전문가들이 TV 아침 토크쇼에 하루 걸러 초대되곤 했다고 썼다. 암 5년 상대생존율이 50% 안팎에 머물고, 암이 불치병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던 때였다.
그 분위기에 85년 한 의료사회학자가 찬물을 끼얹었다. 필라델피아 펜실베이니아의대 암센터의 배리 캐슬리스(Barrie R. Cassilelth, 1938.4.22~ 2022.2.26)였다. 그는 동료 학자들과 함께 82년부터 암환자의 성격 및 정서적 태도가 병증과 수명에 미치는 영향을 3년간 연구, 환자가 어떤 마음을 먹고 투병하든 암 진행 및 재발 여부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요지의 논문을 85년 뉴잉글랜드의학저널에 발표했다. 그는 기대수명 이상 생존한 환자들도 "숨진 이들과 심리학적으로 전혀 차별성이 없었다"며 병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건 "근거 없는 속설일 뿐(largely folklore)"이라고 주장했다. 사례가 있지 않느냐는 반박에는 "당신이 낙관적 태도 덕에 살아난 암환자 한 명을 대면 나는 똑같이 투병하다 숨진 환자 200명을 댈 수 있다"고도 했다.
"당신이 낙관적 태도 덕에 살아난 암환자 한 명을 대면
나는 그렇게 투병하다 숨진 환자 200명을 댈 수 있다"
배리 캐슬리스, LA타임스 1985년 인터뷰에서
캐슬리스도 기분 등 마음이 호르몬 분비 등으로 몸에 영향을 준다는 건 인정했다. 다만 그는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살고 싶어 한다는 가정이 못마땅하다"고, "만일 그들이 살아내지 못하면, 그들(의 마음)이 실패해서가 아니라, 통제할 수 없는 생물학적 과정을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 믿음이 환자에게 근거 없는 죄의식마저 갖게 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미국 암환자 상대생존율(Cancer relative survival rates)은 1975년 48.68%에서 2013년 69.28%로 개선됐다.(한국은 2019년 기준 70.7%) 암 치료의 가능성과 희망은 그렇게 늘어났지만, 사이비 대체-보완 의학의 유혹과 부작용은 이후로도 끊이지 않았다.
로타바이러스 개발 주역 중 한 명인 폴 오핏(Paul Offit)이 2013년 대체의학의 명암을 조명한 '대체의학을 믿으시나요?(Do You Believe in Magic?)'란 책에 소개한 사례다. 미국 일리노이 주의 한 외과의사(Joseph Mercola)는 미심쩍은 건강보조품과 의료기기를 웹사이트를 통해 판매하다 2011년 FDA에 적발됐다. 그가 백신 대체품으로 판매한 '태닝 침대(tanning bed)는 피부암 발병 위험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확인됐고, 자기가 개발한 피부 온도 측정 카메라를 이용하면 유방촬영술(mammography)을 받지 않고도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홍보해 경고를 받았다. 노스캐롤라이나의 한 외과의(Rashid Buttar)는 암환자에게 "독성을 제거하고 면역기능을 증진시킨다"며 식용 과산화수소수를 처방했다. FDA는 2010년 그 의사에게 "FDA 승인을 받지 않은 처방이란 사실을 모든 환자에게 고지"토록 했다. 그는 웹사이트를 통해 일부 건강보조식품을 의약품으로 홍보하며 판매했다. 그가 FDA 경고를 받고 판매를 중단한 제품 중에는 "임상적으로 확인된 노화 및 수명연장 약"도 있었다. 인도 전통 처방 약제 중 하나로 건강보조식품으로 널리 알려진 아유르베다(Ayurvedic medicine) 제품에서 2010년 다량의 중금속이 검출되기도 했다.
"디톡스? 종교적 정화의식의 잔재일 뿐"
대표적인 사례로는 이탈리아 모더나대 생리학 교수 겸 의사 루이지 디 벨라(Luigi Di Bella, 1912~2003) 해프닝을 들 수 있다. 혈액암 연구자였던 그는 비타민과 멜라토닌 등 호르몬제제를 조합한 항암 칵테일요법(일명 디 벨라 요법)으로 약 1만 명의 암 환자를 치료했다고 주장, 세계적 관심을 끌었다. 1997년 이탈리아 보건당국이 71년 이래 그의 환자 314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 제한적이나마 치료효과가 확인된 건 1% 미만이었고, 생존율도 일반 항암치료 환자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그의 처방을 받은 환자 134명을 두 달간 관찰한 다른 조사에서는 환자 75%의 증상이 악화했고 49%는 독성부작용마저 보였다.
이탈리아 정부는 하루 치료비용이 350달러에 달하던 그의 요법을 의료보험 지원 대상에서 배제했다. 디 벨라는 주류 의학계 음모라며 조사 결과를 부정했고, 환자 및 보호자들은 정부 청사 앞에서 대규모 연좌농성을 벌였다. 당시 보건장관 로사리오 빈디(Rosario Bindi)는 98년 인터뷰에서 "나는 희망의 살인자라 비난 받고 있다.(...) 하지만 과학적 근거 없는 치료법을 승인할 경우 우리는 통제불능 상태에 빠질 것이다"라고 말했고, 이탈리아 종양학회장(Dino Amadori)은 "살해 협박까지 받고 있다"고 했다.
98년 말 아풀리아(Apulia)주 북동부 레체(Lecce) 법원은 뇌종양 진단을 받은 2세 아동의 디 벨라 치료에 의료보험 혜택을 주라고 판결했다. 소년은 얼마 뒤 숨졌고, 시민들은 정부 탓에 치료가 늦어져 아이가 숨졌다며 시위를 벌였다. 우파 민족주의 정당 '북부동맹' 등이 개입해 시민들을 선동했고, 아풀리아와 롬바르디 주정부는 중앙 정부 방침에 반해 디 벨라 요법에 보험 혜택을 주기로 결정했다.
캐슬리스는 몸의 독소를 청소한다는 이른바 '자연요법'을 "종교적 정화의식의 잔재"일 뿐이라고 단언했고, 디 벨라의 처방과 일부 주정부의 결정을 "기괴하고 터무니없는 일(grotesquely outrageous)"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공공보건서비스가 검증되지 않은 비과학적인 처방을 대안으로 인정하는 것은 배임행위"라고 말했다.
디 벨라의 칵테일 요법은 하지만 여러 변형된 형태로, 지금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사이비 대체의학이 번식하는 배경
오핏은 저 책에서 "대체의학산업은 자연에서 나온 건 모두 안전하다는 순진한 믿음과 규제 당국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이용한다"고, "대체요법은 최상의 경우 무해하거나 덜 유해한, 비싼 위약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일반 병원이 환자를 관료제적이고 비인격적으로 대하는 반면 대체보완의학 진영은 환자에게 사적 관심을 기울이며 더 큰 만족감을 주는 경향이 있다고, 뉴욕대 랭곤메디컬센터 의료윤리팀장 아서 캐플런(Arthur Caplan)은 분석했다. 캘리포니아 의대 의료심리학자 리디아 테모쇼크(Lydia Temoshok)는 "암에 대한 대중적 오해는 복합적 원인으로 발병되는 암을 단순화하려는 바람에서 비롯된다"고 "대중들은 예컨대 '마음이 암을 만든다'는 식의 단순 명쾌한 진단을 선호하고, 또 믿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대체의학 수요가 끊이지 않는 궁극적인 이유는 가장 강렬한 본능인 생존 욕망이고, 검증된 현대의학이 그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 조사기관은 2021년 현재 전세계 대체-보완의학 시장 규모는 약 1,000억 달러로, 연 평균 22% 성장해 오는 2028년이면 4,047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약 8년 암 투병 끝에 췌장암으로 숨진 건 2011년이었다. 잡스는 의료진의 수술 권유를 거부한 채 침술과 허브요법, 장 청소, 당근-과일주스 등 식이요법으로 투병하다 암이 간으로 전이된 뒤에야 수술을 받았다. 캐슬리스는 'USA Today' 인터뷰에서 "잡스의 췌장암은 드물게 치료가 가능한 종류였다"고, "그의 사인은 본질적으로 자살"이라고 격한 어조로 비판했다. 그렇게 현대의학은 질병과 더불어 대체-보완의학의 부작용 및 위세와도 싸워야했다.
캐슬리스가 의료사회학자의 길을 택한 건 베닝턴칼리지 학부 때의 경험 영향이 컸다고 한다. 그는 3학년 방학 봉사활동으로 필라델피아 주 경계의 파우널(Pownal)이란 마을 교실 하나짜리 학교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쳤다. 워낙 작고 외진 마을이어서 학부모들과도 친구처럼 지냈는데, 그 중 두 아이의 엄마가 말기암으로 고통 받는 걸 곁에서 속수무책 지켜봐야 했다고 한다. 그는 병원들도 포기한 환자의, 절망 속에 점점 심해지는 고통을 견뎌야 하는 그들의 여생에 개입하고자 했다. 앨버트 아인슈타인 칼리지(심리학 석사)를 거쳐 79년 펜실베이니아대(유펜)에서 의료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유펜의대 암센터에 취업해 미국 최초 말기환자 통증 완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데 간여하며 대체보완의학의 가능성을 함께 연구했다. 그 첫 결과가, 참담하게도, 85년 논문이었다. 그는 말기환자의 욕망을 흔들어 이윤을 추구하는 행위에 과학자의 윤리를 넘어 인간적으로 분노했다. 하지만 뉴사우스캐롤라이나대와 듀크대, 하버드대 등서 강의하며 사례 연구를 이어갔다.
'대체'가 아닌 제한적 '보완의학'
침술과 허브요법, 마사지, 명상, 음악요법 등 일부 대체보완의학을 전통 의료의 항암스케줄에 활용하는 '통합'을 처음 시도한 것도 캐슬리스였다. 1999년 뉴욕 메모리얼슬로언케터링 암센터(MSKCC)에서 직원 없이 혼자 시작한 '통합의료서비스'였다. 그는 그 요법들이 알려진 바 치료에는 효과가 없지만 통증 완화나 정서적 안정 등 말기 환자의 삶의 질 개선에는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예컨대, 머리나 목 방사선치료를 받은 암환자 중 침이 분비되지 않아 말하거나 음식물을 삼키는 데 어려움을 겪던 환자가 침을 맞은 뒤 침 분비 기능이 개선된 예가 많았다. 극단적인 대체의학 비판론자들은 '위약효과'라고 폄하하며 그의 '통합' 시도를 일종의 '변절'로 의심하기도 했다. 캐슬리스는 "먹지도 말하지도 못하던 환자가 먹고 말하게 됐는데, 그게 위약효과 때문이든 아니든 뭔 상관이냐?"고 반문했다. 다만 그는 대체(alternative)의학이 아닌 보완(complementary)의학이란 용어를 고집했다.
MSKCC를 시작으로 2000년대 이후 미국 주요 의대들은 잇달아 관련 파트를 신설, 기존 의료체계를 보완하는 추세다. 미 국립보건원(NIH)은 2013년 국립암센터의 대체의학 활용도 연구에 2억3,300만 달러를 지원했다. 한의학 비중이 상대적으로 큰 한국에서는 대체-보완의학(혹은 통합의학)의 개념 자체가 미국과 다소 다르지만, 2005년 가톨릭의대가 국내 최초로 통합의학교실을 개설했고, 이듬해 서울대 의대부터 여러 대학병원이 그 변화에 동참했다.
캐슬리스는 미국암학회 미검증항암요법 소위원회와 NIH 대체의학국(현 국립대체보완의학센터) 자문위원을 역임하며, 평생 사이비 의학과 싸우는 한편 통합의학의 장을 확장하는 데 힘썼다. 2006년 그가 은퇴할 무렵 MSKCC 통합의료서비스는 60 여명의 직원을 둔 조직으로 성장했다. 그는 두 차례 결혼-이혼하며 첫 남편과 세 아이를 두었고, 2008년 한 종양학자와 재혼해 2016년 사별했다.
"통합의학 분야의 전설" 배리 캐슬리스가 캘리포니아 베벌리힐스의 한 요양시설에서 알츠하이머병 합병증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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