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의 나라, 고장난 EPR]
<1>플라스틱 쏟아내도 푼돈만 부과
현행 제도, 재활용 비용 부과 면제 범위 넓어
생산 포장재 30% 정도만 기업이 비용 부담
"독일은 면제 없어, 예외 때문 효과 떨어져"
플라스틱 포장재를 만든 기업에게 사회적 재활용에 필요한 비용을 납부하게 하는 '생산자책임재활용(EPR) 제도'는 우리나라 폐기물 정책의 핵심이다.
하지만 기업들에 부과하는 분담금이 턱없이 낮은 것 외에도 아예 부과 자체를 면제받는 범위가 너무 넓어 제 기능을 못 한다. 그린피스와 충남대가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2017년 기준 EPR 제도가 적용되는 생활계 폐기물 플라스틱류는 전체 생산량의 약 30%에 불과할 것으로 분석했다.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플라스틱 등 합성수지, 종이팩, 금속캔 등 포장재를 제조할 경우 매출액이 한 해 10억 원 미만이거나 출고량이 4톤 미만이면 재활용 분담금을 안 내도 된다. 스티로폼 등 발포합성수지는 매출액 10억 원 미만이거나 출고량 0.8톤 미만, 유리병은 매출액 10억 원 미만이거나 출고량 10톤 미만이면 면제된다. 수입품도 규모가 작으면 재활용 의무를 지지 않아 분담금을 안 내도 된다.
면제의 이유는 소규모 자영업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이 크다. 만약 플라스틱 포장을 제조·판매하는 모든 사업자에게 재활용 의무를 부과하면 영세한 사업체들까지 분담금 부담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 유통업체나 배달플랫폼도 이미 생산·수입 단계에서 EPR 분담금이 부과된 포장재를 유통시키는 것뿐이라는 이유로 분담금을 내지 않는다. 배송 과정 등에서 유통업체가 막대한 포장을 추가하는 것은 고려되지 않는 것이다.
그나마 지난해 4월부터 생산자가 직접 면제 사업장 여부를 입증하도록 제도가 개선되면서 사각지대가 약간 좁혀졌다. 이전까지는 생산자들의 신고가 의무가 아니었고, 누락 여부는 한국환경공단이 주먹구구식으로 파악하는 구조였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연구소장은 “EPR의 원칙은 모든 생산자들이 책임을 지고 폐기물 비용을 분담한다는 것인데 자꾸 예외를 두면 정책 효과가 떨어진다”며 “제도의 왜곡을 막으려면 독일처럼 면제 대상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EPR 분담금을 내는 기업도 포장재 전체에 대해 내는 게 아니다. 생산한 제품 100%에 대해 재활용 책임이 있는 게 아니라 재활용 의무율에 해당하는 부분만 책임진다. 의무율은 페트병이 83%, 비닐 90%, 단일 재질 플라스틱용기 84.5% 등이다. 페트병 100개를 생산하면 83개만 재활용 의무가 있는 것이다. EPR 포장재 전체를 보면 의무율은 약 75%인데 이는 종이팩의 의무율이 19%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재활용되지 않고 버려지는 EPR 품목은 2020년 59만2,576톤이다.
재활용 의무율에도 이유는 있다. 현실적으로 100% 재활용은 불가능한 데다, 시장 상황이나 기술 수준, 분리수거량에 따라 달성 가능한 재활용 성과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재활용 의무율은 사실상 분담금 부과 기준으로 쓰일 뿐, 실제 재활용률과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부는 2020년 재활용률을 87.4%로 발표했는데 이는 단순히 재활용 선별장으로 넘어간 양을 뜻한다. 실제 소각해서 연료로 쓰는 것을 제외하고 물질재활용된 것만 따지면 재활용률은 20~30%에 그치는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에는 마스크 포장 비닐 상당수가 EPR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헛점도 드러났다. 자원재활용법 시행령 18조상 ‘내용량이 30㎖ 혹은 30g 이하인 의약외품의 포장재의 경우 재활용 의무 대상에서 면제한다’는 내용 때문이다. 개별 포장 마스크의 경우 무게가 30g 이하로 가볍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EPR 분담금을 미리 냈던 마스크 생산업체 10여 곳은 최근 분담금 일부를 환급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플라스틱의 나라, 고장난 EPR
<1>플라스틱 쏟아내도 푼돈만 부과
<2>벌칙금조차 너무 적다
<3>부족한 비용은 세금으로
<4>누더기 산정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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