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인간이 돌고래에게 저지른 가장 잔인한 짓

입력
2022.04.30 14:00
23면
0 0


2017년 5월 서울대공원에서 만난 태지는 사육사를 유독 잘 따랐다. 고은경 기자

2017년 5월 서울대공원에서 만난 태지는 사육사를 유독 잘 따랐다. 고은경 기자

서울대공원 마지막 돌고래큰돌고래 '태지'를 처음 만난 건 2017년 5월. 당시 시민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제주 앞바다 방류를 앞둔 남방큰돌고래 '금등이'와 '대포'였지만 실물을 봐서일까. 정작 수족관 한쪽에 이들과 분리된 채 혼자 남아 있던 태지에게 마음이 갔다. 금등이, 대포와 달리 사육사를 유독 따르며 사진 포즈를 취해 주던 모습, 장난끼 어린 눈빛이 5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 속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다음 태지를 본 건 그해 11월 주 서귀포시 돌고래 체험시설 '퍼시픽리솜'(옛 퍼시픽랜드)에서다. 금등이와 대포가 떠나고 홀로 남겨진 태지는 우여곡절 끝에 쇼와 체험에 동원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위탁을 자처한 퍼시픽리솜으로 이송됐다. 퍼시픽리솜으로 이사한 지 5개월 만에 본 태지는 관계자가 뻗은 손을 쳐내는 등 예민해 보였다. 위탁기간 종료, 세 번의 위탁기간 연장 끝에도 태지는 갈 곳이 없었고 결국 2019년 퍼시픽리솜 소유가 됐다.

2017년 11월 제주 서귀포시 퍼시픽리솜(옛 퍼시픽랜드) 내실에서 본 태지의 모습. 당시 관계자의 팔을 쳐내는 등 예민한 모습을 보였다. 고은경 기자

2017년 11월 제주 서귀포시 퍼시픽리솜(옛 퍼시픽랜드) 내실에서 본 태지의 모습. 당시 관계자의 팔을 쳐내는 등 예민한 모습을 보였다. 고은경 기자

태지는 돌고래 학살로 악명 높은 일본 와카야마현 다이지 마을 앞바다에서 잡혀 2008년 서울대공원에 왔다. 잔인한 포획 과정을 겪고 살아남은 돌고래의 정신적 충격은 말로 할 수 없을 것이다. 태지 역시 서울대공원 수족관 구석에서 혼자 움직이지 않는 등 이상행동을 보였다. 사육사의 끈질긴 노력, 동료 돌고래들과의 교류로 인해 마음의 문을 열었고, 서울대공원 돌고래쇼에서 이른바 '에이스' 자리까지 올랐다.

태지 추정 나이는 22세, 돌고래생 절반 이상인 14년을 수족관 쇼 돌고래로 살았다. 서울대공원에서 퍼시픽리솜으로 온 지 5년이 지난 지금, 이제 와서 또 갈 곳이 없다고 한다. 2017년 퍼시픽리솜을 인수한 호반그룹은 해당 부지에 숙박시설을 짓겠다며 지난해 말 수족관을 닫았다. 이후 4개월 만인 최근 태지를 포함 큰돌고래 '아랑이', 남방큰돌고래 '비봉이'를 또 다른 돌고래 체험시설인 거제씨월드로 보낸다고 서울대공원에 통보했다.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는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호반그룹 본사 앞에서 퍼시픽리솜 돌고래들을 거제씨월드에 보내는 것을 막고 전문가, 시민사회단체 등과 돌고래를 위한 최선의 대안을 논의할 것을 요구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는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호반그룹 본사 앞에서 퍼시픽리솜 돌고래들을 거제씨월드에 보내는 것을 막고 전문가, 시민사회단체 등과 돌고래를 위한 최선의 대안을 논의할 것을 요구했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동물자유연대, 핫핑크돌핀스 등 동물보호단체들은 돌고래 세 마리가 거제씨월드로 가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며 연일 기자회견과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거제씨월드에서는 2014년 개장 이래 11마리의 돌고래와 흰고래(벨루가)가 죽어 나갔다. 2020년에는 사람이 벨루가 등 위에 올라타 수영장을 도는 체험프로그램이 알려지며 공분을 샀다. 지금도 돌고래를 타는 것 이외에 관람객과 입 맞추기는 물론 강도 높은 공연까지 이뤄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태지, 아랑이, 비봉이는 돌고래쇼뿐 아니라 사람까지 태워야 하는 처지가 된다.

방류도 쉽지 않다. 비봉이28세 추정으로 나이가 적지 않다. 원 서식지인 제주에 방류를 시도해볼 수 있지만 실패할 경우 대비할 플랜B가 있어야 한다. 태지와 아랑이는 더 힘들다. 해양포유류학자인 나오미 로즈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큰돌고래에 대해 연구된 게 거의 없다"며 "태지뿐만 아니라 다이지에서 잡힌 어떤 돌고래도 성공적인 방류는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관련기사 ☞"준비 안 된 고래 방류, 죽음으로 모는 일"… 해양포유류 전문가의 일침).

2017년 5월 금등이와 대포가 방류되기 전 서울대공원에 마지막으로 모여 있는 태지(왼쪽 첫 번째), 금등이, 대포. 금등이와 대포는 방류 후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고은경 기자

2017년 5월 금등이와 대포가 방류되기 전 서울대공원에 마지막으로 모여 있는 태지(왼쪽 첫 번째), 금등이, 대포. 금등이와 대포는 방류 후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고은경 기자

퍼시픽리솜 측에 묻고 싶다. 지금까지 돈벌이에 동원해 왔던 돌고래들을 이제 문 닫는다며 '고래 무덤'으로 불리는 체험시설로 보낼 수밖에 없는지. 또 이 과정에서 얼마나 전문가와 시민단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돌고래를 위한 최선의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했는지 말이다. 원초적 원인제공자인 서울대공원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은 태지, 아랑이, 비봉이의 '해피엔딩'을 위해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때다.

고은경 애니로그랩장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직접 제보하실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리며, 진실한 취재로 보답하겠습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