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지원 서비스는 '그림의 떡'
24시간 돌봄 안전망 절실한데
새 정부 공약은 기존 정책 '재탕'
"중학교 2학년인 큰딸이, 나중에 엄마랑 아빠 없으면 자기가 동생을 돌봐야 하냐고 묻더라고요. 어떻게 버텼는데... 나 죽을 때 같이 가는 게 맞나 싶기도 해요."
발달장애인 정현우(11)군 어머니 유영혜(42)씨는 딸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울먹였다. 온몸에 종양이 생기는 결절성 경화증을 앓는 현우는 지능이 2세 수준이다. 시도 때도 없이 뛰쳐나가는 바람에 도어록을 현관문 안팎으로 달았다. 그런 동생을 딸이 나중에 자신처럼 아등바등 돌보고 있을지 모른단 생각에 유씨는 감정이 복받쳤다. 유씨는 지난달 19일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다른 발달장애인 부모들과 함께 삭발을 했다. 그리고 자신이 아닌 아들, 딸을 위해 거리로 나섰다.
나라 도움 절실한데... 배제되는 게 현실
1일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발달장애인 24시간 돌봄 체계 구축'을 구호로 내걸고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19일 단체 삭발식 이후부터였으니 열흘이 넘었다.
양육 부담을 줄여 주겠다며 2014년 발달장애인법이 제정됐지만, 여전히 돌봄의 부담은 오롯이 부모와 가족에게 돌아가고 있다. 특히 최중증이거나 상대방을 공격하는 도전행동을 보여 단체생활이 어려운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은 양육 부담이 더 크다. 정부가 지원하는 활동 지원 서비스는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 주간활동은 단체 활동이 대다수고, 활동보조사도 돌봄 난도가 높다는 이유로 모집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국가의 도움이 가장 절실한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서비스 이용 대상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김은지(가명·27)씨 어머니 한혜승(56)씨는 수도 없이 배제를 경험해 왔다. 그는 "도전행동이 있으면 학교나 복지관 등에서 잘 받아주지 않고, 부모 입장에서도 아이가 친구를 때리거나 소란을 피우는 경우가 잦아지면 미안한 마음에 발길을 끊게 된다"면서 "공격성 때문에 활동보조사와도 단둘이 두기도 어려워 중학교 때부터는 거의 매일 붙어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가 확산한 2년간은 하루에 6시간 남짓 다니던 평생교육센터도 문을 닫아, 돌봄 부담을 몽땅 가족이 져야 했다.
돌봄 부담 가중과 고독감 심화는 부모 마음마저 병들게 한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에 따르면, 2012년부터 올해까지 10여 년간 돌봄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진 사건은 18건에 달했다. 혹시 사고라도 날까 봐 집안 베란다 방충망마다 자물쇠를 걸어 둔 유영혜씨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점점 고립되는 느낌이 든다"고 토로했다.
부모들은 이 투쟁이 자신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후(死後)를 위해서라고 호소한다. 돌봄 체계가 촘촘하지 않은 상황에서 부모마저 세상을 떠나면, 아무도 발달장애인 자녀의 삶을 보살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혜승씨는 "내가 죽고 나면 은지는 누가 돌볼 수 있겠나. 노숙자가 되거나, 요양시설에 수용돼 살 게 뻔하다"며 "24시간 돌봄 체계 요구는 발달장애인이 부모 없이도 생활할 수 있도록 안전망을 하루빨리 마련해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24시간 돌봄체계, 새 정부 구체적 방안 살펴야"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보름 가까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근에서 호소를 이어가고 있지만, 출범을 앞둔 윤석열 정부는 이전 정부 정책을 재탕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인수위는 지난달 19일 '장애와 비장애와의 경계 없는 사회 구현을 위한 장애인 정책'을 내놓으면서 "24시간 돌봄 체계 시범사업을 광주에서 2024년까지 실시하고 있고, 이 결과를 평가해 2025년에 도입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는 불과 5일 전 현 정부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이미 다룬 내용이다.
전문가들은 새 정부가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돌봄에 끝이 없으니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여겨 단식농성뿐만 아니라 극단적 선택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면서 "정부가 정책을 통해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24시간 돌봄 체계 마련은 장애계의 오랜 숙원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정착이 안 되고 있다"면서 "실현되지 못한 이유를 점검하고, 예산 확보와 전문 인력 양성 과정 등 구체적인 방안을 살피는 시도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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