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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언·폭행에 멍드는 공직사회… 정부 근절 대책은 4년째 '나 몰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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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언·폭행에 멍드는 공직사회… 정부 근절 대책은 4년째 '나 몰라라'

입력
2022.05.01 16:40
수정
2022.05.02 14:47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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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방지' 지침 지킨 광역 지자체
17곳 중 6곳… 전담 센터 없는 곳 태반
실태 파악 않고 사건 처리... 신뢰도↓

지난해 9월 직장 내 갑질 피해를 호소하던 대전소방본부 전 직장협의회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발생해 전국공무원노조가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후 대전시는 서둘러 갑질근절 조례 제정, 설문조사, 예방교육 등에 들어갔다. 정부의 공공기관 갑질근절 대책 마련 지시 시점보다 3년이나 늦은 조치였다. 연합뉴스

지난해 9월 직장 내 갑질 피해를 호소하던 대전소방본부 전 직장협의회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건이 발생해 전국공무원노조가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후 대전시는 서둘러 갑질근절 조례 제정, 설문조사, 예방교육 등에 들어갔다. 정부의 공공기관 갑질근절 대책 마련 지시 시점보다 3년이나 늦은 조치였다. 연합뉴스

A씨는 공무원들과 같이 일하는 공무직 직원이다. 하루는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공무원인 상사에 얘기했다가 "아직까지 이것도 모르냐"며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다. A씨는 "업무에 대해 질문하면 사무실이든, 복도든 상관없이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낸다"며 "전등 교체, 청소 같은 부서 허드렛일과 잡일은 나한테만 시킨다"고 하소연했다.

공공기관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일하는 B씨는 얼마 전 징계를 받았다. 자기 업무를 자꾸 떠넘기는 동료 공무원에게 부당하다고 문제를 제기했더니 욕설이 날아온 일이 발단이다. 그는 "욕을 한 공무원은 징계위원회에도 회부되지 않았고, 같이 목소리를 높였다는 이유로 나만 징계를 받았다"고 토로했다.

공직사회에서 버젓이 벌어진 직장 내 괴롭힘이다. 2018년 7월 정부가 수립한 '공공분야 갑질 근절 종합대책'이 무색하다. 정부 지침이 마련된 지 4년째지만 괴롭힘 신고 시스템 구축, 예방 교육, 가해자 처벌 및 제재 강화라는 기본적 조치조차 실행하지 않은 기관이 한둘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17개 광역시·도 중 11곳이 정부 지침 불이행

주요 지자체 직장갑질 근절 대책 시행 여부. 직장갑질119·이은주 의원실 제공

주요 지자체 직장갑질 근절 대책 시행 여부. 직장갑질119·이은주 의원실 제공

1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이은주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전국 17개 광역시·도의 직장 내 괴롭힘 사건 신고·처리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정부 지침대로 갑질 방지 조례, 매뉴얼 등을 마련한 곳은 서울, 인천, 울산, 경기, 전북, 경남의 6곳뿐이었다. 2018년 정부는 공공분야 갑질 근절 대책을 수립하며 각 지방정부에 조례와 규칙·훈령 또는 조례와 지침·매뉴얼을 함께 마련하라고 했다. 하지만 강제가 아닌 권고였던 터라, 지침을 지키지 않은 곳이 절반을 훌쩍 넘는다.

공무원과 비공무원을 갈라놓는 곳도 있다. 울산과 경남은 조례를 만들긴 했지만, 공무원에만 적용하도록 했다. A, B씨가 당한 일처럼 공무원이 공무직 노동자나 위탁기관 노동자를 괴롭히는 걸 막지 못하는 구멍이 있는 셈이다.

못 믿을 신고 시스템에 묻히는 '갑질'들

17개 광역시·도의 조례 제정, 실태조사, 예방교육, 신고센터 운영 등 정부 공공기관 갑질근절 종합대책 4대 핵심 과제 이행 현황. 직장갑질119 제공

17개 광역시·도의 조례 제정, 실태조사, 예방교육, 신고센터 운영 등 정부 공공기관 갑질근절 종합대책 4대 핵심 과제 이행 현황. 직장갑질119 제공

괴롭힘 신고 처리 절차의 신뢰성도 떨어진다. 광역지자체 중 직장 내 괴롭힘 전담 센터를 설치한 곳은 서울, 경남 2곳에 그쳤다. 갑질 실태조사를 지난 2년 동안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곳도 4곳(대구·세종·강원·전남)이나 됐다. 전문 교육을 받은 담당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실태 파악 의지도 보이지 않으니 갑질을 당해도 참고 넘어가는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중앙부처에서 일하는 C씨는 괴롭힘에 시달리다 몸까지 상해 병원 치료를 받을 정도지만 신고하지 않았다. C씨는 "육아기 단축근무를 하는 분들이 있어 동료들 일까지 떠맡느라 수차례 업무 분장을 요구했지만 묵살당했다"며 "성과 평가도 낮게 받았고, 문제 삼았단 이유로 따돌림까지 당해 신고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공공기관 기간제 근로자인 D씨는 "같이 일하는 근무자에게 폭행을 당해 신고했지만, 어떤 보호조치도 없었고 개인적 문제라고 무시당했다"고 밝혔다.

실제 2020~21년 지자체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공식 신고가 접수된 건수는 연평균 135건이다. 전국 광역지자체 공무원 수(5만3,487명)의 0.25%다. 비공무원 노동자 숫자를 고려하면, 신고로는 괴롭힘이 거의 잡히지 않는다고 봐도 되는 수준이다. 신고까지 했더라도 처리 결과를 보면, 괴롭힘으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취하 등으로 조사 중 종결된 비중이 72.8%다.

반면 직장갑질119가 올 3월 중앙과 지방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별도 조사한 설문조사에서는, 괴롭힘을 경험했다는 비중이 26.4%에 달했고, 신고 경험은 4.8%였다. 신고 체계가 유명무실하다는 방증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020~2021년 지자체 갑질 신고 처리 현황(단위: %)
직장갑질119·이은주 의원실

폐쇄적 조직 방치 언제까지…"중앙정부가 나서라"

직장갑질119는 실효성 있는 제도 정착을 위해 △관련 조례 제정 및 계획 수립, 체계적 시행 △주기적 실태조사 △안전한 상담·신고 체계 마련 △예방 교육 시행 △공공기관 평가 반영 등이 필요하다고 촉구한다.

김성호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괴롭힘에 대해 지자체별 대응 편차가 매우 크기 때문에 중앙정부가 감독과 점검으로 기준선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은주 의원은 "폐쇄적이고 위계질서가 엄격한 공직사회일수록 직원을 보호하고 갑질과 괴롭힘을 자정할 수 있는 내부 장치가 더 강력하게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맹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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