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101세 시어머니 48년 모신 며느리 "며느리 아니라 딸이죠"

알림

101세 시어머니 48년 모신 며느리 "며느리 아니라 딸이죠"

입력
2022.05.07 09:40
수정
2022.05.07 20:11
0 0

의성 이춘매씨, 1975년 결혼해 48년째 시어머니 봉양
새마을 부녀회장직 15년간 맡아 공인으로서도 모범
"오히려 시어머니 덕분에 힘든 세월 모두 견뎌냈어요"


며느리 이춘매(왼쪽)씨와 시어머니 우옥련(오른쪽)씨가 마당 평상에 앉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상은 기자

며느리 이춘매(왼쪽)씨와 시어머니 우옥련(오른쪽)씨가 마당 평상에 앉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상은 기자


경북 의성 안평(安平)은 이름처럼 안전하고 평안한 마을이다. 사건 사고도 없고 어쩌면 너무 조용해 무료함을 느낄 정도다. 안평은 65세 이상 고령자가 전체인구의 53%를 차지해 의성 군 내부에서도 고령자 인구 점유율이 높은 편이다. 최근 안평에는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사연이 발생해 주변, 특히 고령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고 있다.

사연의 주인공은 이춘매(67)씨. 이씨는 최근 고인이 된 남편 김태규(75)씨와 1975년 결혼, 시어머니 우옥련(101)씨를 48년째 극진히 모시고 살아왔다. 그간 한 가정의 주부로서 칭송을 받아왔을 뿐 아니라 새마을 부녀회장직을 15년간 맡아 공인으로서도 모범이 되어왔다.

그가 새마을 부녀회장 시절 매일 같이 동네 구석구석을 돌며 어려운 이웃과 마을 어르신들을 챙긴 일화는 모든 이들이 감탄해 할 정도였다. 이씨가 8남매 중 장남인 김태규씨에게 시집왔을 당시 시아버지는 돌아가신 후였고, 그해가 3년 상의 마지막 해였다.

홀 시어머니와 적지 않은 시동생 시누이를 챙기는 결혼 생활은 단순히 ‘힘들다’라고 표현할 정도를 넘어섰을 것이다. 맏며느리의 생활이 육체적으로 고될 뿐 아니라 정신적 스트레스가 적잖이 쌓이는 일이었겠지만 이씨는 이를 당연하게 여겼다. 더욱이 홀 시어머니를 친정 엄마처럼 격의 없이 살갑게 모셔 주위로부터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이씨는 "주변 분들이 시어머니를 50년 가까이 모시고 사는 것을 보고 대단하다고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결혼 초기부터 항상 저의 건강을 챙겨주는 이는 다름 아닌 시어머니였고 싫은 소리 한번 하신 적 없으셨다. 또한 제가 몸이 아플 때, 힘이 들 때 위로해 준 분은 바로 시어머니였다. 시어머니가 있어 힘든 세월 견뎌냈고 사랑스런 아이들을 반듯이 키워 주신 것또한 시어머니였다"고 고마워했다.

이웃들은 "아들이 지방으로 출장 가 장기간 집을 비워도 아들은 기다리지 않으시지만 며느리가 단 20분이라도 눈에 보이지 않으면 찾으신다. 그럴 때면 며느리가 웃는 얼굴로 '엄마 나 찾았어'라고 웃으며 다가가곤 한다"고 고부간의 아름다운 모습을 전해준다.

시어머니를 극진하게 모시는 이춘매씨는 최근 들어 큰 고민이 생겼다. 남편 김태규씨가 지난 4월5일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과 아픔에 휩싸여있지만 이를 아직 시어머니에게 알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시어머니가 받을 충격이 너무 클 것이기 때문이다.

남편은 몇 년 전부터 문제가 있던 심장 부위를 작년에 수술을 받았다. 수술 직후 병원은 김 씨에게 6개월 정도는 안정을 취해야 하니 될 수 있으면 일은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시골 생활이라는 것이 혼자 쉬고 있을 여건이 되지 않는 것은 뻔한 일. 널려 있는 일이 눈에 들어오는 데다 아내가 혼자서 애쓰며 일하는 모습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마늘 거취 작업을 도왔던 것이 화근이었다. 작업 중 2m 높이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쳐 뇌출혈로 이어졌다. 대학병원에서 입원과 치료를 받고 그 후 재활병원 입원 치료를 통해 점차 병세는 호전되어갔다.

가족 모두는 얼마 후 있을 퇴원, 그리고 집에서의 생활을 위해 집의 리모델링을 단행했다. 휠체어 통행이 자유롭게 대문 주위 벽을 허물고 마당에서 집안으로 진입하는 계단의 턱을 없애는 공사도 마쳤다.

가끔 가위에 눌린다는 아버지를 위해 자녀들은 풍수학자를 초빙, 집안의 수맥을 찾기까지 했다. 그러나 집 공사를 마친 이틀 후 재활병원에서 온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김태규씨가 가시는 마지막을 함께 해야 할 것 같으니 병원으로 오라"는 연락이었다. 이것이 마지막이 되었다. 2022년 4월5일. 그러나 시어머니 우옥련 여사는 아직까지 아들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줄 알고 있다. 가족들은 가장의 사망을 우 여사에게는 비밀로 하고 있다, 우 여사가 남은 삶을 마칠 때까지 모두 함구하기로 한 것이다. 우 여사는 오늘도 손주들이 주는 용돈을 받아 조그만 철제 상자에 꾸깃꾸깃 모으고 있다. 아들의 재활병원 퇴원비에 보태기 위해서다.

이춘매씨는 남편의 죽음도 안타깝고 슬프지만 시어머니가 낙담해 식사라도 못해 몸이 축나서는 안 된다는 데 온 신경을 쓰고 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 같은 분을 만나게 된 것이 본인 인생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라며, 아마도 전생이 있다면 시어머니와 자신은 모녀지간이지 않았을까 가끔 생각하기도 한다.

앞으로 함께 할 시간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곁을 지키면서 시어머니와 추억쌓기를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간 남편 故 김태규씨에게는 "어머니는 내가 잘 모시고 있을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여기서 고생 많이 했으니 그곳에서는 편안하게 지내고 있으면 좋겠다"고 빌고 있다.

의성 안평면 한 시골집에는 이처럼 시어머니와 며느리로 만났으나 지금은 엄마와 딸로 살고 있는 이들이 있다. 전문호(56) 의성 안평면장은 "핵가족, 황금만능주의 시대라고 하지만 우리 고장 안평면에는 이춘매, 우옥련씨처럼 자랑스러운 효 사상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이를 다음 세대에도 반드시 전승시켜야 한다. 효 사상은 세계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우리의 무형 문화이며 이를 전승시키는 것은 현세대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전 면장은 "직접 실천하는 효를 보고 자란 어린이들은 인성과 효성을 품은 인격체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이춘매씨의 시어머니의 대한 지극한 효행은 안평의 자랑을 넘어 의성의 자랑이다. 안평이란 마을 지명 그대로 안(安)안전하고 평(平)평안한 마을 만들기와 효 사상에 있어서 타 시군에 모범이 되는 마을 만들기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전문호 의성 안평면장은 "효 사상은 세계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우리의 무형 문화이며 이를 전승시키는 것은 현세대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박상은 기자

전문호 의성 안평면장은 "효 사상은 세계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우리의 무형 문화이며 이를 전승시키는 것은 현세대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박상은 기자


한편 안평에는 100세 이상 어른이 두 분 계신다. 매년 새해가 밝으면 제일 먼저 이분들을 찾아 새해 인사를 드리고, 면장이 새로 부임하면 이분들께 부임 인사를 드리는 것이 마을의 전통이다. 안평 소재 안평초등학교 전교생 18명과 신평 분교 4명을 포함 총 22명의 초등학생들은 마을 학교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음식 만들기, 공예 제작 등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와 손주 세대가 함께 할 수 있는 아이템을 구상하고 있다.

박상은 기자 subutai1176@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