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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연방대법원 낙태권 보장 판례 뒤집을 듯… 판결문 초안 유출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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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연방대법원 낙태권 보장 판례 뒤집을 듯… 판결문 초안 유출 ‘파문’

입력
2022.05.03 19:19
수정
2022.05.04 00:0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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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권 보장한 1973년 판결 무효화 내용 담겨
여성 기본권 박탈 위기… 7월 최종 판결 공개
보수 환영 vs 진보 반발… 11월 선거에도 영향

2일 미국 시민들이 워싱턴 연방대법원 청사 앞에 모여든 낙태권 옹호 시위를 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2일 미국 시민들이 워싱턴 연방대법원 청사 앞에 모여든 낙태권 옹호 시위를 하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보수 우위인 미국 연방대법원이 여성의 임신중단(낙태) 권리를 보장한 법원 판결을 무효화하기로 결정했다는 보도가 나와 미국 사회에 파문이 일고 있다. 정치권은 찬반으로 나뉘어 설전을 벌였고, 낙태권을 옹호하는 시민들은 법원으로 몰려와 거세게 항의했다. 11월 중간선거에서도 낙태권을 둘러싼 찬반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재부상할 전망이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2일(현지시간) 연방대법원이 1973년 ‘로 대(對) 웨이드 사건’ 판례를 뒤집기로 했다면서 98쪽짜리 다수 의견 판결문 초안을 입수해 공개했다. ‘로 대 웨이드’ 판례는 태아가 자궁 밖에서 생존 가능한 임신 24주를 기준으로 그 이전까지는 낙태를 허용, 여성의 낙태에 대한 헌법상 권리를 확립한 기념비적 판결이다.

연방대법원은 1992년 ‘케이시 사건’ 등을 통해 이 판결을 재확인했지만, 공화당이 장악한 주(州)들은 낙태권을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해 ‘로 대 웨이드’ 판례에 맞서 왔다. 그러다 지난해부터 연방대법원이 임신 15주 이후 낙태를 금지한 미시시피주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리하면서 기존 판례가 49년 만에 깨질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보수 성향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이 작성한 이 초안에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은 애초 터무니없이 잘못됐다”며 “낙태에 대한 국가적 합의를 이끌어내기는커녕 논쟁을 키우고 분열을 심화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헌법에는 낙태에 대한 언급이 없고 어떤 헌법 조항도 낙태권을 명시적으로 보호하지 않는다”며 “이제는 헌법에 귀를 기울이고 낙태 문제를 국민이 선출한 대표에게 돌려줘야 할 때”라고 적시됐다. 낙태권은 법이 아니라 정치 영역에서 다뤄야 할 사안이라는 얘기다.

폴리티코는 지난해 12월 미시시피주 낙태 제한법 관련 구두 변론 이후 열린 대법관 회의에서 과거 공화당 정부가 임명한 보수 성향 대법관 4명이 얼리토 대법관과 같은 의견을 냈고, 민주당 정부가 지명한 대법관 3명은 반대 의견을 냈다고 전했다. 보수로 분류되는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둘 중 어느 의견을 지지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번 판결문 초안이 최종 결정은 아니다. 대법관들이 회람하는 과정에서 내용이 변경되는 경우가 적잖고, 판결 공개 직전 대법관들이 의견을 바꾸기도 한다. 이 초안도 석 달 전인 2월에 작성된 것이라 그 이후 상황이 달라졌을 수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는 추측했다. 연방대법원은 6월 말까지 의견을 수렴해 7월 최종 판결을 발표할 예정이다.

만약 초안대로 결정될 경우 반세기 동안 헌법으로 보장받던 여성의 낙태권은 박탈당하게 된다. 연방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각 주가 개별적으로 낙태 제한ㆍ금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공화당이 장악한 24개 주에서 낙태를 사실상 불법화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사회는 찬반 논쟁으로 들끓고 있다. 낙태 반대 단체 ‘수잔 B. 앤서니 리스트’를 이끄는 마저리 다넨펠저 회장은 “미국인은 선출된 대표를 통해 태아를 보호하고 여성을 존중하는 법안을 토론하고 제정할 권리가 있다”며 환영했다. 임신 6주 이후 낙태 금지를 규정한 텍사스주의 켄 팩스턴 법무장관도 “텍사스는 태아를 보호하고 미국 전역에서 낙태가 사라지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트위터에 썼다.

반면 민주당과 진보 진영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공동 성명을 내고 “근현대사에서 가장 파괴적 판결 중 하나”라며 “수많은 여성들이 신체의 자율성과 헌법상 권리를 박탈당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시민들은 연방대법원으로 몰려와 밤새도록 항의 시위를 벌였다. 낙태권 옹호 단체는 3일 뉴욕, 샌스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전역에서 집회를 열기로 했다.

미 언론들은 낙태권 논쟁이 11월 중간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CNN방송은 “올해 1월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69%가 ‘로 대 웨이드’ 판결 번복을 반대했다”며 “연방대법원이 판례를 뒤집으면 향후 선거에서 민주당원, 특히 여성의 투표율이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연방대법원 판결문 초안이 유출된 것 자체도 논란이다. 연방대법원에 사건이 계류 중인 상황에서 판결문 초안이 유출된 건 현대 사법 역사상 전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폴리티코는 “법원 절차에 정통한 인사로부터 초안을 입수했다”고 밝혔지만 일각에선 최종 판결에 앞서 여론을 떠보기 위한 의도적 유출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연방대법원은 초안 진위 여부 및 유출 경위에 대한 질의에 답변하지 않았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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