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호크마 샬롬'은 히브리어로 '지혜여 안녕'이란 뜻입니다. 구약의 지혜문헌으로 불리는 잠언과 전도서, 욥기를 중심으로 성경에 담긴 삶의 보편적 가르침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합니다.
"젊은이여, 젊을 때에, 젊은 날을 즐겨라. 네 마음과 눈이 원하는 길을 따라라. 다만, 네가 하는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만은 알아라."
전도서 11:9
젊을 때 즐기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모호하다. 젊을 때 원하는 대로 즐기라더니, 나중에 이 모든 것에 대하여 심판이 있을 것이란다.
확실한 것은 즐기는 건 젊을 때 해야 제맛이다. 성경도 인정한다. 즐거움의 최고치는 젊을 때야 느껴볼 수 있다. 젊을 때 고생하여 돈 많이 벌어 두었다가 중년에 즐기겠다고 하지만, 젊을 때만큼 만끽하긴 어렵다. 손목에 롤렉스를 차고 젊은이들 사이에서 신나게 춤추며 놀아보려 해도, 나이 제한에 걸려 클럽에는 문 안으로도 못 들어간다. 중년의 당신에게는 거실 바닥에 매트 깔고 유튜브를 보며 신나게 홈트를 따라 하길 권한다. 로마의 한여름 더위 아래 가이드의 깃발을 따라 단체관광을 하는 어른들을 보면 국적을 불문하고 대부분 실신하기 직전이다. 양서류처럼 젖어 있어 그들 곁에는 가까이 가기가 꺼려진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자기 키만 한 배낭을 메고 손에 큰 생수통을 들고도 씩씩하게 다닌다. 젊은 친구들은 옷이 땀에 흠뻑 젖어도 멋있다. 젊은이들은 지하철역에 서로 모여 노숙을 해도 낭만이지만, 나이가 들면 돈 들여서 좋은 호텔에서 자지 못하면 여행 나서기가 두렵다.
무엇보다도 젊을 때는 오감이 생생해서 즐기는 감도가 다르다. 무한리필집 삼겹살을 그때가 아니고선 그렇게나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무슨 맛인지도 모를 만큼 멍청하게 떠들고 놀 수 있는 웃긴 친구들이 곁에 있을까? 쳐다만 봐도 배꼽이 빠지도록 웃음이 나오는 유치한 감성이 되살아날 수 있을까? 폰에서 조악하게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도 마음 뭉클하고 눈가가 젖지만, 나이가 들면 비싼 오디오가 마음을 가까스로 뚫고 들어와야 한다. 그래서 아직도 가슴 설레게 하는 노래는 대부분 십 대 때 듣던 노래인가 보다. 그러니 성경도 인정하는 것 같다. 즐기는 건 젊을 때 하라고.
하지만 인생은 제로섬(zero-sum)이다. 젊어서 많은 시간을 즐기는 것에 탐닉했다면 인생에서 지불해야 할 값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위 전도서 구절은 이를 심판이라고 무시무시하게 표현했다. 즐길 때 즐기더라도 마음에 늘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전도서는 말한다.
"빛을 보고 산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해를 보고 산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오래 사는 사람은 그 모든 날을 즐겁게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어두운 날들이 많을 것이라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다가올 모든 것은 다 헛되다."
전도서 7-8
그러다 보니 인간은 여러 가능성을 열어 놓고 살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서 네가 무슨 재난을 만날지 모르니, 투자할 때에는 일곱이나 여덟로 나누어 하여라."
전도서 2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부지런히 일하여라. 어떤 것이 잘될지, 이것이 잘될지 저것이 잘될지, 아니면 둘 다 잘될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전도서 6
대체 즐기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하지만 전도서는 역설이 그 장기이다. 젊어서 마음껏 즐기고 후일도 대비하는 것, 젊은이는 둘 다 동시에 할 수 있다. 젊음이 메리트라서 가능하다.
일생 단 한 번밖에 없는 젊은 그때, 마음껏 즐기고 도전하고 실수하고 실패하는 것이 미래를 잘 대비하는 것이다. 젊어서는 과하게 즐겨도 멋지고 눈감아 주지만, 어른이 그러면 안쓰럽기 그지없다. 젊어서는 무모하게 도전해도 멋있고 격려를 받지만, 나중에 그러면 철없어 보인다. 젊어서는 실수해도 용서해 주지만, 중년이 그랬다간 끝장나는 수가 있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라는데 젊을 때 이를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 이십 대에는 인생 계획을 서너 번 갈아엎어도 살날이 창창하다. 실패해도 즐길 수 있다면 성공은 더 가까워질 것이다. 이렇게 젊음의 특권을 제대로 즐기지 않으면 심판이 따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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