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분광학과 광기술 분야를 연구하는 고재현 교수가 일상 생활의 다양한 현상과 과학계의 최신 발견을 물리학적 관점에서 알기 쉽게 조망합니다.
지구와 가장 비슷한 환경의 화성은 인류가 직접 방문할 첫 번째 행성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화성을 향한 궤도 위성이나 착륙선의 수가 가장 많았고, 지금도 여러 대가 활동 중이다. 그런데 오랜 탐사의 역사 속에서 화성의 소리를 최근에야 처음 기록해 연구했다는 사실은 좀 놀랍다. 물론 과거에도 마이크를 장착한 탐사선이 착륙한 바 있으나 고장이나 기술적 문제로 작동된 적은 없다.
작년 2월 화성에 착륙한 미국 나사의 퍼서비어런스 탐사 로봇에는 두 대의 마이크가 장착되어 있어 장시간 화성 표면의 소리를 녹음해 지구로 전송했다. 그 결과를 분석한 연구팀의 논문이 최근 발표됐다. 청각은 우리가 주변 환경을 파악하기 위한 대표적 감각 중 하나다. 지구 기압의 불과 0.6% 정도로 희박하고 대부분이 이산화탄소인 화성의 대기에서 퍼지는 소리는 어떤 특징을 띨까?
소리는 공기의 밀도가 주기적으로 변하며 전달되는 파동이다. 내가 말을 하면 목 속의 성대가 공기를 진동시킨다. 그 진동이 초속 340m 정도의 속도로 퍼져 상대방의 귓속 고막을 흔들고, 이것이 청각 신호로 변환되어 뇌로 전달된다. 소리의 속도는 대기의 밀도, 구성 성분, 온도에 따라 달라지기에 화성의 소리가 지구와는 많이 다를 것이라 예상되었다.
퍼서비어런스는 화성의 바람과 난류가 만드는 소리뿐 아니라 소형 헬기 인제뉴어티 날개의 회전 소리, 암석 조사를 위해 자신이 발사한 레이저가 암석을 녹이며 만드는 충격파 등 자신의 소리까지 포함, 다양한 소리를 조사해 흥미로운 결과를 얻었다. 우선 화성 대기 속 소리의 속도는 지구보다 느리다. 소리의 높이(피치)에 따라 속도가 다소 달라졌지만 초속 약 240~250m 정도로 지구에 비해 초속 100m 정도 더 느림을 알 수 있었다. 이 정도면 가까운 거리에선 별 차이가 없겠지만 상당히 먼 거리에서는 소리의 전달 속도의 차이를 체감할 수 있을 정도다.
게다가 소리가 전파되며 약해지는 정도는 음높이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났다. 종파인 소리는 소리가 전달되는 방향과 나란히 공기 분자들이 진동한다. 화성 대기의 대부분은 이산화탄소다. 탄소 하나와 산소 두 개로 구성된 이산화탄소는 소리의 파동이 통과할 때 파동의 에너지 일부를 자신 내부의 분자 진동에 해당하는 열로 바꾸며 소리를 약화시킨다. 퍼서비어런스가 다양한 음높이의 소리를 조사한 결과, 화성에서 고음은 대기 중 흡수가 심해 먼 거리를 전파하기 힘들었다. 즉 지구에서는 별 문제없이 전달되는 새소리나 자전거 벨소리처럼 피치가 높은 소리는 화성의 대기에서는 멀리까지 퍼지기 힘들다는 것이다. 인간이 화성의 대기에서 숨쉬며 소리를 듣는 건 불가능하지만, 그럴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화성에서의 소리 환경은 흡사 벽이 하나 가로막힌 상태로 들리는 둔탁한 음과 비슷할 것이다.
소리는 너무나 흔하고 친숙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주변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전달한다. 화성의 소리도 마찬가지다. 화성의 바람과 난류가 주로 어떤 음높이의 소리를 만드는지, 소리의 높낮이에 따라 얼마나 먼 거리까지 전달될 수 있는지 등은 화성의 대기에 대한 소중한 정보를 제공한다. 소리의 과학이 대기학과 직접 연결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화성 대기에 대한 정밀한 모델을 세울 수 있다. 게다가 탐사 로봇이 이동하며 탐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스스로 만드는 소리는 로봇의 정상적인 작동 유무를 알려줄 근거도 된다.
우리의 고향 지구와 가장 닮은 화성의 소리를 이제 듣기 시작한 인류는 머지않은 미래에는 두꺼운 대기를 가진 이웃 행성 금성이나 토성의 최대 위성인 타이탄이 들려줄 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행성과 위성의 소리가 들려줄 흥미로운 이야기가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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