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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승부'·'슬램덩크'만 아신다면…진짜 농구, 휠체어 농구의 매력 속으로

입력
2022.05.07 05:0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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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휠체어 농구

90년대 뜨거웠던 농구 열기에 울고 웃던 추억
'슬램덩크' 작가의 휠체어 농구 만화 '리얼'은
인간의 삶·장애의 고통·스포츠 본질 다뤄

바퀴로 이동해 공수 교대 빠른 휠체어 농구
알지 못했던 농구의 진짜 매력 배우게 돼

21년 만에 패럴림픽 진출한 한국 선수단
올림픽 최종 10위…선수권대회 활약도 기대돼

"도심 속 문턱에 자유롭지 못한 휠체어
농구 코트 벗어나도 종횡무진할 수 있길"

편집자주

강소희 작가, 서효인 시인이 스포츠로 풀어내는 세상 이야기. 스포츠에 열광하는 두 필자의 시점에서 이 시대의 스포츠를 응원하고 지적합니다.


1994년에 방영된 MBC 드라마 '마지막 승부'. 당시 농구 열풍을 담은 드라마로 젊은이들의 승부와 좌절, 사랑을 그려냈다. 배우 장동건, 손지창, 심은하 등이 출연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4년에 방영된 MBC 드라마 '마지막 승부'. 당시 농구 열풍을 담은 드라마로 젊은이들의 승부와 좌절, 사랑을 그려냈다. 배우 장동건, 손지창, 심은하 등이 출연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농구대잔치’와 ‘오빠 부대’로 대변되는 1990년대 농구 열기는 지금 세대로서는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의 것이었다. 당시 연세대나 고려대 농구 선수는 어지간한 배우나 가수보다 더한 인기를 누렸다. 지금은 지난 시즌 KBL(한국농구연맹) 우승팀과 최우수선수(MVP)가 누구냐고 물으면 아는 사람이 얼마 없을 테지만, 당시에는 팀마다 식스맨 이름까지 줄줄 외우는 팬이 많았다. 현역 최고의 농구 스타마저 그의 플레이나 기록이 아니라 허재의 아들로 더 알려지는 판국이니, '라떼(나 때)'를 가장 그리워할 스포츠 종목은 아무래도 농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대의 인기 스포츠답게 농구는 다방면으로 콘텐츠의 영역을 확장하기도 했다. 서점 매대에는 이상민, 허재뿐 아니라 마이클 조던, 찰스 바클리의 소식까지 두루 다루는 농구 잡지가 좋은 자리를 차지했고, 농구 선수는 각종 광고를 섭렵했다. 장동건, 손지창, 심은하는 농구를 소재로 한 MBC 드라마 ‘마지막 승부’에 출연했으며 드라마의 OST는 지금도 농구 하면 떠오르는 노래가 되었다. 그중 압권은 일본에서 건너온 만화 ‘슬램덩크’일 것이다. 등장인물의 이름, 그것도 본래의 일본 이름과 별 상관없이 임의로 번역한 여러 이름은 강산이 두 번은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고유명사로 쓰인다. 강백호, 서태웅, 정대만, 채치수, 송태섭 그리고 안경 선배까지 만화에 나오는 고등학교 농구부의 베스트 5는 물론 식스맨까지 이름과 별명을 외워버린 것이다.


1990년대 농구 만화의 전설로 불리는 '슬램덩크'. 주인공 강백호가 상북고 농구부에 입단하면서 점차 농구의 매력에 빠져드는 이야기다. 최고의 플레이어 서태웅을 라이벌로 삼는가 하면 정대만, 채치수, 송태섭 등 같은 팀원들과 함께 전국고교농구대회 우승을 목표로 정진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0년대 농구 만화의 전설로 불리는 '슬램덩크'. 주인공 강백호가 상북고 농구부에 입단하면서 점차 농구의 매력에 빠져드는 이야기다. 최고의 플레이어 서태웅을 라이벌로 삼는가 하면 정대만, 채치수, 송태섭 등 같은 팀원들과 함께 전국고교농구대회 우승을 목표로 정진한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어디 그뿐인가. 전국 제패를 목표로 한 그들의 승부가 전국 최강팀을 잡는 이변으로까지 이어질 때, ‘슬램덩크’의 한 장면 한 장면에 우리는 울고 웃었다. 수업 시간에는 몰래 만화책을 보고, 쉬는 시간에는 골대로 달려가 짧게나마 농구공을 튕겼다. 그랬던 ‘슬램덩크’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나도 되나 할 정도로 급작스러워서 조만간 후속편이 나오리라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각각의 방식으로 성장한 강백호와 서태웅을 만화의 세계에서 완전히 놓아준다. 그리고 조금은 다른 농구로, 그러나 엄연한 진짜 바스켓볼을 다룬 만화 ‘리얼’로 독자를 찾아온다.

‘리얼’은 휠체어 농구를 전면에 내세운다. ‘슬램덩크’가 다소 낭만적으로 농구 경기를 작화하는 데 있어 과장된 측면이 있다면 ‘리얼’은 제목 그대로 과장 없이 담백한 농구를 지면에 부려놓는다. 다만 그것이 휠체어 농구라는 점이 비장애인의 시선에서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다. 우리는 휠체어 농구를 유심히 본 적이 없고, 비장애인의 농구와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른다. 어쩌면 그것은 스포츠가 아닌 장애인의 인간 승리이거나, 비장애인이 마땅히 관심을 가져야 할 감동과 동정의 한 장면으로 소비될지도 모른다. 거장의 작품답게 ‘리얼’은 휠체어 농구를 통해 인간의 삶과 장애의 고통, 스포츠의 본질을 깊이 있게 다루지만 그의 다른 작품에 비해서 그다지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한다. 작품은 여태껏 부정기 연재로 이어지고 있으며, 언제 완결될지는 요원하다고 한다.


'슬램덩크' 원작을 그린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휠체어 농구를 소재로 한 만화 '리얼'을 부정기 연재하고 있다. 대원씨아이 제공

'슬램덩크' 원작을 그린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휠체어 농구를 소재로 한 만화 '리얼'을 부정기 연재하고 있다. 대원씨아이 제공

물론 휠체어 농구가 만화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 세계에서 휠체어 농구는 박진감 넘치고 치열하다. 기본적으로 휠체어 바퀴로 이동하니 공수 교대가 빠를 수밖에 없다. 휠체어가 차지하는 공간이 있으므로 비장애인 농구보다 스크린과 공간 점유의 중요성이 커지기 때문에 알고 보면 볼수록 농구의 진짜 매력을 확인할 수 있다. 비장애인 농구에서 공을 쥐고 세 걸음을 가면 트래블링 반칙이듯 휠체어 농구에서도 드리블 없이 휠체어를 3회 이상 밀면 반칙이다. 선수는 엉덩이를 휠체어에서 뗄 수 없고, 휠체어가 뜰 만큼 점프를 해서도 안 된다. 휠체어는 전진만 가능하며 후진은 반칙이므로 방향을 제어하는 선수들의 기술을 보는 것도 휠체어 농구를 관람하는 재미가 되겠다.


제39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둘째 날인 2019년 10월 16일 서울 송파구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제주특별자치도 대표팀과 세종특별자치시 대표팀 선수들이 경기하고 있다. 휠체어 농구에서 선수는 엉덩이를 휠체어에서 뗄 수 없고, 휠체어가 뜰 만큼 점프를 해서도 안 된다. 코리아타임스

제39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둘째 날인 2019년 10월 16일 서울 송파구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제주특별자치도 대표팀과 세종특별자치시 대표팀 선수들이 경기하고 있다. 휠체어 농구에서 선수는 엉덩이를 휠체어에서 뗄 수 없고, 휠체어가 뜰 만큼 점프를 해서도 안 된다. 코리아타임스

우리나라는 도쿄패럴림픽 휠체어 농구에 21년 만에 진출 유럽 강호와 대등한 경기를 펼친 끝에 최종 10위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아시안게임에서는 꾸준히 좋은 성적을 올렸으며 앞으로 세대교체를 통해 더 좋은 경기력을 선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기대감의 이유는 KWBL(한국휠체어농구연맹)에 있다. KWBL은 2015년 창립해 2022년 현재 6개 팀이 있는 명실상부한 스포츠 리그다. 최근 서울시청 선수단을 승계해 팀을 창단한 코웨이를 비롯해 대구광역시청, 고양홀트, 제주삼다수, 무궁화전자, 춘천시장애인체육회가 리그에 참여해 매년 자웅을 겨루고 있다.


지난해 8월 27일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패럴림픽 남자 휠체어농구 A조 예선에서 만난 한국과 일본의 경기. 한국의 오동석 선수가 골밑슛을 시도하고 있다. 도쿄=사진공동취재단

지난해 8월 27일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패럴림픽 남자 휠체어농구 A조 예선에서 만난 한국과 일본의 경기. 한국의 오동석 선수가 골밑슛을 시도하고 있다. 도쿄=사진공동취재단


지난해 8월 27일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패럴림픽 남자 휠체어농구 A조 예선에서 만난 한국과 일본의 경기. 한국의 조승현 선수가 빠르게 돌진하고 있다. 도쿄=사진공동취재단

지난해 8월 27일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패럴림픽 남자 휠체어농구 A조 예선에서 만난 한국과 일본의 경기. 한국의 조승현 선수가 빠르게 돌진하고 있다. 도쿄=사진공동취재단

2021년 리그 득점왕은 대구시청의 장경식, 리바운드 1위는 춘천시의 김상열, 어시스트 1위는 춘천시의 조승현 선수다. 제주삼다수 소속의 김동현은 유럽 세미프로리그에 진출한 경력도 있다. 오는 21일부터는 태국에서 아시아·오세아니아휠체어 농구선수권대회가 열린다. 세계휠체어농구선수권대회는 2022년 11월 두바이에서 열릴 예정이다. 우리나라는 인천에서 열린 2014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역대 최고인 6위의 성적을 올린 적이 있다. 올림픽 이후 우리나라 휠체어 농구가 어떤 성적을 올릴지 기분 좋은 궁금증이 생긴다.

농구 코트에서는 휠체어를 쉽게 찾을 수 있고 휠체어 또한 코트 안에서 종횡무진 움직일 수 있지만, 우리가 무심코 발걸음을 옮기는 도심의 거리나 비장애인이 매일 이용하는 대중교통 및 공공시설에서는 휠체어를 비롯해 장애인의 모습을 찾기 어렵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장애인의 숫자가 적기 때문일까? 2021년 기준 우리나라 등록 장애인은 264만여 명으로 전체 인구 대비 5%가 넘는다. 어림잡아 스무 명 중 한 명은 장애를 갖고 있으며, 이를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으로 한정하더라도 수많은 사람이 발걸음을 옮기는 장소에 휠체어 하나 안 보인다는 건 어딘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이야기다. 대표적으로 버스와 전철이 그렇다. 바쁜 아침 출근하는 장애인은 없을까? 곳곳에 도사린 계단과 경사, 너나 할 것 없이 몸을 비집고 끼어들어 타는 엘리베이터는 장애인에게 어떤 의미일까? 많은 비장애인에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인 문턱이 될 수도 있다.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3월 28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25차 출근길 지하철 시위에 안내견 조이와 참여한 가운데 국민에 대한 사과의 의사를 전하다 무릎을 꿇고 있다. 최주연 기자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3월 28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25차 출근길 지하철 시위에 안내견 조이와 참여한 가운데 국민에 대한 사과의 의사를 전하다 무릎을 꿇고 있다. 최주연 기자

출근길,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되는 이슈로 인한 시위가 일어나고 그 때문에 지각한다면 아마 당신은 상당히 짜증이 날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 시위가 일어나는 가끔이 아닌 어제와 오늘, 그리고 기약 없는 내일까지 이동권의 제한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장애인은 당신보다 짜증이 덜 날까? 난 모른다. 다만 생각을 해보자는 거다. 우리는 가끔 TV로 보는 휠체어 농구 같은 스포츠로 장애인을 인간 승리의 메타포로 소비하거나, ARS 기부를 요청하는 공익 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서 절절한 감동과 페이소스(연민)를 일으키는 촉매로 활용하는 듯하다. 그러다 장애인이 그 이상의 역할을 맡으려 할 때 몹시 당황한다. 혹자는 화를 낸다. 서울 시내 곳곳에서 시위는 일어나건만 장애인의 그것에는 ‘볼모’니 ‘비문명’이니 하는 말을 함부로 붙인다. 타인의 고통을 알아보려 하지 않은 채, 자신의 불편에 지나치게 몰입한 채로.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휠체어 농구 선수가 경기 일산에서 열리는 컵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전철을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면, 그는 경기에 뛸 수 있을까? 3호선을 타면 환승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가 비장애인이라면 지겨운 일상에 불과한 ‘전철 타기’를 실행하는 건 불가능한 도전에 가깝다. 그는 자가용을 탈 테고 도착지에는 어쩌면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 불법 주차된 차량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부모님이니 지인의 도움 없이 혼자서 대중교통을 타고 서울에서 경기도로, 서울에서 부산으로 다닐 수 있기를 바란다. 서울 곳곳을 ‘풀 코트 프레스’하고 수도권 전역을 ‘백 코트’하며 전국의 여행지를 ‘트랜지션’하기를 바란다. 그 과정에서 어쩌면 장애인의 삶을 존중하는 비장애인과 팀을 이뤄 ‘픽 앤드 롤’이나 ‘픽 앤드 팝’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둘은 현대 농구에서 매우 유용한 전술이다. 그것은 현대 사회와 공동체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난해 9월 5일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패럴림픽 남자 휠체어농구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미국 선수들이 서로를 축하하는 모습. AP

지난해 9월 5일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패럴림픽 남자 휠체어농구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미국 선수들이 서로를 축하하는 모습. AP


서효인 시인·문학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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