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쇄 없이 최저 치명률로 막아낸 한국
성과 부정은 시민 신뢰 갉아먹는 일
박수 쳐 주고 새 정부 자산으로 삼기를
하루 900명이 감염된 신천지 유행에 패닉했던 게 언제였나 싶다. 수만 명이 확진되는 지금은 공포 대신 약봉투를 받아 든다. 밤거리는 활기차고 가게엔 사람이 넘친다. 지난 2년 코로나19 방역을 총평해 보면 봉쇄 없이 세계 최저 치명률(0.13%)로 막아낸 성과가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마스크 해제에 과학적 근거가 없다” “정치 방역”이라고 딴지 거는 인수위가 도리어 당혹스럽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방역의) 공을 현 정부에 돌리려는 것 아니냐”고 했는데 현 정부의 공이 왜 아니겠는가.
굳이 따진다면 국민의힘(미래통합당)이야말로 방역을 정쟁으로 삼았다. 비판은 일관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았다. 처음엔 “우한 폐렴” 용어를 고집하며 중국 봉쇄를 주장했다. 그러더니 영업시간 제한에는 근거가 뭐냐며 반대했다. 늦은 백신 확보를 비판하던 황교안 전 대표는 야당 지자체장 지역에 우선 백신을 지원해 달라고 미 정부에 요청해 국민을 경악케 했다. 재난지원금이 ‘선거용 돈 풀기’라더니 더 큰 금액의 손실 보상을 약속했고, 지금은 공약 번복 논란이 일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 여러 과오가 있지만 코로나 대응 성과는 부정할 수가 없다. 위중증·사망 위험이 컸던 초기에 대규모 진단과 엄격한 추적·격리로 확산을 억제하고 국민 86.8%(성인 96.4%)가 백신을 맞을 때까지 유지했다. 그 덕에 많은 목숨을 구했고 코로나를 독감처럼 대해도 되는 때가 왔다. 확진자 다수가 접종자라 백신이 무용하다는 황당한 주장은 무시해도 좋다. 접종 전 1,700만 명이 감염됐다면, 100만 명이 죽고 컨테이너에 시신이 쌓였던 미국의 비극이 우리 것이었을 터다. 중국처럼 2,200만 대도시를 봉쇄하거나 호주처럼 국경을 막은 적도 없다. 물론 국민의 협조와 희생 덕분이지만, 투명한 방역당국이 구심점이 되지 않았다면 사재기와 각자도생이 그 자리를 차지했을 것이다.
아쉬운 점이 없을 리 없다. 손해를 감수한 소상공인 보상에 인색했던 것이 첫째다. 보상 없이 거리두기는 지속 가능하지 않았고, 피해를 취약계층에 몰아줬다. 백신 부작용 대처도 더 적극적이면 좋았겠다. 인과성이 소명되지 않은 것은 의학의 한계일 수 있는데, 함께 집단면역으로 가는 길에 불운했던 몇몇에게 짐을 지워선 안 되었다.
그러니 새 정부는 전 정부를 폄하해 빛나려 할 필요가 없다. 마스크 아니어도 성과를 낼 기회는 많다. 한국이 백신 도입 시기를 놓친 배경에는 공무원의 책임회피 본능이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미 2020년 4월 해외 백신 선구매 의견을 냈는데 정부는 그해 10월에도 감사원에 문제가 없을지 확인했다. 2009년 신종 플루 백신을 고가에 수입했다가 남자 국회의 “예산 낭비” 질타와 감사가 이어진 일을 생생히 기억하는 탓이다. 감염병 대응 예산에 면책을 제도화하는 게 새 정부가 할 일이다. 고비마다 반복된 격리 병상 부족도 민간병원 비협조만 탓할 게 아니라 실질적인 보상 제도로 해결해야 한다. 감염병전문병원·공공병원 확충은 예산 부족, 비효율 비판과 싸워야 하는 일인데 해낸다면 분명 박수 받을 때가 올 것이다. 2년 넘게 헌신하면서 겨우 버티거나 탈진해 떠난 의료진을 격려하고 돌아오게 할 대책도 강구하기 바란다.
팬데믹은 지치는 싸움이었으나 우리는 결코 지지 않았다. 정쟁과 백신 음모론이 있었지만 압도된 적이 없다. 정부는 신뢰를 유지했고 시민은 경탄스러울 만큼 협조적이었다. 이 소중한 신뢰자산을 차기 정부가 물려받아야 한다. “비과학적”이라고 깎아내려 믿음을 허무는 것은 제 무덤을 파는 일이다. 문재인 정부의 방역 성과를 평가하고 노고에 박수 치는 게 어떤가. 곧 윤석열 정부의 자산이 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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