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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의 재활용 미이행 '벌칙금'은 2003년 이후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

입력
2022.05.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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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의 나라, 고장난 EPR]
<2>벌칙금조차 너무 적다
환경부, 4번 연구용역 하고도 반영 못 해


1㎏의 비닐 폐기물을 안으니 팔로 한아름이다. 복합재질(other) 플라스틱이나 비닐은 재활용이 어려워서 대부분 소각되거나 매립된다. 그런데도 생산 업체는 ㎏당 354원만 내면 재활용 책임을 다한 것으로 간주된다. 김하겸 인턴기자

1㎏의 비닐 폐기물을 안으니 팔로 한아름이다. 복합재질(other) 플라스틱이나 비닐은 재활용이 어려워서 대부분 소각되거나 매립된다. 그런데도 생산 업체는 ㎏당 354원만 내면 재활용 책임을 다한 것으로 간주된다. 김하겸 인턴기자

지난해 재활용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부과금 상위 50개 기업들이 낸 벌칙금, 즉 재활용부과금은 ㎏당 평균 625원이다. 재활용 책임을 방기한 대가 치고는 미미하다. 부과금이 낮은 이유는 부과금 산정 기준이 되는 재활용기준비용이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가 시작된 2003년 이후 단 한 차례도 재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준비용은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 시행령으로 정하는데 개정 권한이 있는 환경부가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

그나마 올해 1월 환경부가 일반 종이팩과 멸균팩의 재활용기준비용에 차등을 두는 시행령 개정안을 마련하고, 내년부터 시행키로 한 것이 유일한 변화이다. 멸균팩은 내부가 알루미늄으로 코팅돼 재활용이 어려운 편인데도 일반 종이팩과 기준비용이 동일하다. 이 때문에 잔재물로 버려지는 등 애물단지 취급을 받아왔다.

19년 전 만들어진 재활용기준비용이 그간의 인건비 상승이나 재활용시장 변동, 재활용 처리기술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이 기준비용은 당시 폐기물 품목별로, 수집과 운반 및 선별가공, 재활용 및 최종 처리에 소요되는 예상 비용을 기준으로 산정됐다. 이 기준에 재활용 미이행량과 미이행가산금액(미이행량에 따라 115~130%)을 곱해서 부과금이 결정된다.

인건비만 보더라도 2003년 시간당 최저임금은 2,510원이었지만 현재는 약 4배에 달하는 9,160원이다. 재활용 가능한 폐기물을 손으로 직접 골라내는 재활용 선별업체들의 특성상 임금상승은 비용 증대로 직결됐지만 재활용 기준비용에는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2018년 환경부가 실시한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 재활용기준비용 현실화 방안에 관한 연구’에서도 적정 인건비 등을 고려할 경우 복합재질필름(비닐)류의 재활용 기준비용은 현행 467원보다 19.9% 인상한 560원, 유색 페트병은 현행 235원보다 53.2% 높인 360원이 돼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기준비용 재산정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환경부는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4차례에 걸쳐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했다. 하지만 매번 개정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예산을 들여 시행한 연구결과도 무용지물이 됐다. 그동안 재활용 시장상황이 계속 변화해 기존 연구결과를 현실에 적용하기 어려워졌다는 게 이유였다.

2018년에 이어 2021년에도 관련 연구를 진행한 배연정 서울대 그린에코공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은 “2018년 이후에는 유가물 가격이 많이 떨어졌지만, 2020년을 기점으로 해서 최근까지 가격이 엄청나게 폭증했다”며 “최근 연구내용은 당시 결과가 거의 소용없을 정도로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유가물이란 분리배출된 폐기물을 수집해 모은 재활용 가능 자재를 말한다.

기준비용 개정이 되지 않은 데는 정부의 의지 부족이 꼽힌다. 재활용기준비용을 개정하려면 생산자·공제조합·회수사업자·재활용사업자 등 많은 이해관계자와의 협의가 필요한데, 이를 추진해야 하는 정부부처는 개편만 거듭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개정 작업을 하려면 연구용역부터 공청회 등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환경부 담당 공무원이 보통 1년 반이면 떠난다”며 “새 담당자는 기준비용 같은 장기 과제보다 그때그때 발생하는 폐기물 문제 해결에 급급하다보니 매번 흐지부지 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기업이 재활용의무를 충족하기 위해 납부하는 '재활용분담금'과, 이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때 '벌칙금' 명목으로 내는 '재활용부과금'의 산정기준이 다른 것도 문제를 복잡하게 하고 있다. 분담금을 내지 않으면 가산해서 부과금을 내게 하는 보통의 단순한 체계를 따르지 않는다.

환경부 관계자는 "분담금 산정에는 회수선별업체나 재활용업체의 수익을 빼고 원료 구입 비용을 반영하는데, 부과금의 기준비용은 말 그대로 재활용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라서 다르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재활용문제의 중요성이 커진 만큼 기준비용 현실화 노력을 재개하겠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난해 시작한 재활용기준비용과 2027년 장기재활용목표율을 재산정하는 내용의 연구용역이 마무리단계에 있다”며 “연구 내용을 바탕으로 기준비용 개선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플라스틱의 나라, 고장난 EPR

<1>플라스틱 쏟아내도 푼돈만 부과

<2>벌칙금조차 너무 적다

<3>부족한 비용은 세금으로

<4>누더기 산정 방식

신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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