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흑해서 러軍 함정 또 격침
기념일 앞둔 러, 민간인 잔혹 공격
12년 만에 '둠스데이' 띄워 핵 위협
최후통첩? 협상? 푸틴 메시지 주목
러시아의 제2차 세계대전 승리 기념일(전승기념일ㆍ9일)을 앞두고 전선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육지와 해상에서 거침없이 반격하며 러시아에 굴욕을 안겼고, 설욕에 나선 러시아는 동ㆍ남부 지역 총공세에 나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전승기념일에 전면전이라는 최악의 카드를 꺼낼 것이란 전망도 짙어지면서 전쟁 장기화 우려도 커지고 있다.
8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은 전날 흑해 즈미니섬 인근에서 무인기(드론)를 이용해 러시아군 세르나급 상륙정 한 척을 격침시켰다고 밝혔다. 길이 25.6m 폭 5.8m 규모의 상륙정은 군사장비나 부대원을 상륙시키는 용도로 쓰이며 최대 92명이 탈수 있는 소형 함정이다. 지난달 우크라이나군 공격으로 침몰한 흑해함대 기함 모스크바함(500여 명 탑승)에 이어 또다시 러시아군 자존심에 적지 않은 생채기를 남길 전망이다. ‘군사적 위용’을 나라 안팎에 과시해야 하는 전승기념일 직전에 되레 무능을 노출하게 된 탓이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매년 5월 9일 열리는 러시아군 흑해함대 군사 행진이 올해는 바다 밑바닥에서 진행될 것”이라고 비꼬았다. 우크라이나의 반격은 육상에서도 이어져, 제2 도시 하르키우에서는 러시아군을 대포 사정권 바깥까지 밀어냈다.
굴욕을 당한 러시아도 공세 강도를 한 층 끌어올렸다. 전승기념일까지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승리 없는 승리의 날’을 맞게 되는 까닭에, 더욱 잔혹해지는 모습이다. 피해는 고스란히 민간인들을 향했다. 이날 러시아군은 동부 루한스크주(州) 빌로호브리카 지역의 학교에 폭탄 한 발을 떨어뜨렸다. 건물에는 마을 주민 90명이 대피 중이었는데, 지금까지 구조된 사람은 30여 명뿐이다. 주 당국은 잔해 속에 남은 사람들이 숨졌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러시아군은 남부 최대 항구도시이자 전략요충지인 오데사에도 6발의 순항 미사일을 발사했다. 사망자는 없었지만 민간인 거주 지역과 공항 활주로가 파괴되면서 도시 곳곳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 올랐다. 러시아의 대규모 공습 우려에 수도 키이우 시 당국은 주민들에게 경계령을 내리기도 했다.
국제사회는 9일 전승기념일 열병식에서 푸틴 대통령이 내놓을 메시지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오전 10시(한국시간 오후 4시)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병사들을 사열한 뒤 연설에 나선다. 서방은 그가 이 자리에서 ‘특수군사작전’이라는 표현을 버리고 전면전을 선언하거나 동ㆍ남부 점령을 명분으로 승리를 자축한 뒤 군사작전 중단을 선언할 것이라고 본다. ‘최후통첩’과 ‘협상’ 중 어떤 카드를 내미느냐에 따라 전쟁의 향방이 결정된다는 얘기다.
현재로선 희망보다는 암울한 전망에 더 무게가 쏠린다. 영국 BBC방송은 푸틴 대통령의 연설비서관 출신인 러시아 정치평론가 아바스 갈리야모프를 인용, “전승기념일에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최후 통첩을 보낼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실제 러시아 국방부는 열병식에 ‘IL-80’, 이른바 ‘둠스데이’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둠스데이는 핵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 등 최고위급을 태우는 공중 지휘통제기로, 전승기념일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2010년 이후 12년 만이다. 지난달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사르마트’를 시험 발사한 데 이어 또다시 노골적인 핵 위협에 나섰다는 얘기다. 로이터통신은 “푸틴 대통령이 서방에 강력한 ‘종말’ 경고를 보내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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