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는 목마름으로’ ‘오적’을 발표해 1970년대 문단에서 벌어진 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저항시인으로 자리매김한 김지하 시인이 8일 별세했다. 향년 81세. 고인은 최근 1년 동안 투병한 끝에 이날 오후 강원 원주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토지문화재단 관계자가 전했다.
고인은 군사독재정권의 폭력과 그에 편승한 기득권의 부패를 정면으로 비판한 반독재 저항가였다. 민주화 운동 이후에는 동서양을 넘나들며 종교와 사상을 재해석해 생명과 환경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생명사상가로 변신한 것도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민주화를 요구하는 청년들의 분신이 잇따르던 1991년, 이러한 현상을 ‘죽음의 굿판’에 비유한 글을 언론에 기고하면서 민주화를 주도한 세력의 비판을 받았다. 2012년에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면서 ‘변절자’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2018년 새로운 시집을 내놓으면서는 박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것이 잘못된 판단이었다며 촛불집회와 미투 운동을 긍정하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본명이 김영일인 고인은 1941년 2월 4일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나 1954년 강원도 원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서울 중동고교를 졸업한 후 서울대 미학과를 나왔다. 1963년 ‘목포문학’에 김지하라는 이름으로 ‘저녁 이야기’라는 시를 발표했고 1969년에는 김지하라는 필명으로 ‘황톳길’ 등의 시를 ‘시인’ 지에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고인은 최근까지 활발한 시작 활동을 펼쳤고 '남(南)'(1984) '살림'(1987) '애린 1'(1987) '검은 산 하얀 방'(1987) '이 가문 날에 비구름'(1988) '나의 어머니'(1988) '별밭을 우러르며'(1989) '중심의 괴로움'(1994) '화개'(2002) '유목과 은둔'(2004) '비단길'(2006) '새벽강'(2006) '못난 시들'(2009) '시김새' (2012) '흰 그늘'(2018) 등의 시집을 남겼다.
고인은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한 문인으로 이름을 남겼다. 서울대 재학 중이던 1964년 한일회담을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했다가 4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등단 직후인 1970년에는 ‘사상계’에 판소리 가락을 빌려 부패한 재벌과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비판한 ‘오적’을 발표했고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이 사건은 김지하가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1974년에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을 언도받았다가 국내외 지식인들이 구명운동을 벌인 끝에 이듬해 풀려났다. 그러나 같은 해 인혁당 사건이 조작됐다고 고발하는 글을 언론에 발표했다가 다시 투옥됐고 1980년 형 집행정지로 석방됐다.
1975년에 발표해 적극적으로 독재에 저항했던 '타는 목마름으로'로 노벨평화상과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른 경력이 있으며, 아시아 아프리카 작가회의 로터스 특별상(1975년 수상), 브루노 크라이스키 인권상, 정지용 문학상, 만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장남 김원보(작가)씨와 차남 세희(토지문화재단 이사장 겸 토지문학관 관장)씨가 있다. 부인 김영주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은 지난 2019년 향년 73세로 별세했다.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고(故) 박경리의 외동딸이다. 빈소는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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