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공정’ ’자유’ ’소통’ 지향할 가치 제시
당선 후 내각 인사, 협치 등에서 기대 못 미쳐
취임사 매일 보고 옳은 길 가는지 되묻기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10일 생애에서 가장 긴 하루를 맞이할 것이다. 현충원 참배에 이은 취임식, 용산 집무실 개막 행사, 경축 연회로 이어지는 숨 가쁜 일정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나라와 민족의 명운이 자신의 어깨에 달렸다는 중압감에서 한순간도 벗어날 수 없는 날이 될 거라는 의미다.
대통령 취임식은 자신에게 한시적으로 맡겨진 국가를 어떻게 이끌겠다고 밝히는 일종의 고유제(告由祭)다. 종묘사직과 억조창생 앞에서 읊던 고유문은 대통령 취임사에 해당한다. 오롯이 국가와 국민만을 생각하며 최고지도자로서의 각오와 약속을 한 줄 한 줄 담았을 것이다. 이념과 진영, 지역, 세대, 성별 등 모든 것을 떠난 국익의 결정체인 셈이다.
윤 당선인이 직접 쓰다시피 했다는 취임사의 핵심은 '자유·공정·연대'라고 한다. 자유는 그가 대선 때 정치인이 추구해야 할 가치관으로 자주 연급했던 말이다. 윤 당선인이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실체가 모호한 면이 있지만 권력의 헌법 남용 자제를 뜻한다는 점에서는 지향해야 할 가치임에 분명하다. 검찰총장 재직 시 권력의 압력이 그 배경이라면, ‘통합’과 ‘연대’는 당시 우리 사회 진영의 골이 얼마나 깊이 파여 있는가를 절감한 데서 비롯됐을 것이다. 공정과 상식도 문재인 정부의 위선적 행태를 바로잡겠다고 정치에 뛰어든 그이기에 물러설 수 없는 가치이자 좌표인 셈이다.
대선 승리 후 지난 두 달 윤 당선인의 행보는 이런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국민에게 가장 강력한 메시지를 발산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인 첫 내각 인사는 빛이 바랬다. 도덕성에 흠결이 많은 후보들 면면에서 적잖은 국민이 윤 당선인이 생각하는 공정과 상식의 기준이 무엇인지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통합과 협치의 행보가 없었던 점도 아쉽다. 전례 없는 허니문 실종이 초박빙 대선 결과와 한 달도 안 남은 지방선거 때문이긴 하지만 당선인의 행동도 돌아봐야 한다. 진정 협치를 원한다면 야당 당사를 찾아가고, 머리를 맞대고, 함께 식사를 해야 했다. 국민과의 소통이란 것도 직접 마이크를 든다고 되는 게 아니라 반대편 목소리를 귀담아듣고 잘못은 바로잡아야 이뤄진다.
대통령의 취임사는 두고두고 족쇄로 작용한다. “역대 대통령 취임사 중 가장 훌륭했다”(윤여준 전 장관)던 문재인 전 대통령 취임사는 몇 해 안 가 조롱의 대상이 됐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란 말은 문 정부를 희화화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이나 미사여구로 분칠할 게 아닌 것이다.
지난 모든 대통령이 진심과 정성으로 취임사를 써 내려갔지만 제대로 실천한 이는 없다. 국민 통합과 협치, 정의를 말하지 않은 대통령은 단 한 명도 없지만 좌절하고 실패했다. 기득권 정치에 때 묻지 않은 윤 대통령으로선 모든 것을 걸고 전인미답의 길에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취임사에 적은 대로만 하면 절대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제안을 하자면 대통령 취임사를 집무실 벽에 걸어 놓았으면 한다. 임기 5년 동안 매일 집무실을 오가며 취임 첫날의 대국민 약속을 잊지 말라는 뜻이다. 윤 대통령은 최근 방송에서 미국 트루먼 대통령이 책상에 써 놓았던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 문구를 언급했다. 그런 심정으로 취임사를 보며 수시로 옳은 길을 가고 있는지 되묻기 바란다. 그것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첩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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