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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째 친부모 찾는 덴마크 변호사… "입양기록, 당사자에게 오롯이 제공돼야" [오늘 입양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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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째 친부모 찾는 덴마크 변호사… "입양기록, 당사자에게 오롯이 제공돼야" [오늘 입양의날]

입력
2022.05.11 04: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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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기록 받을 권리' 행동 나선 홍민씨>
"입양기록, 입양기관 자산 아닌 개인정보"
함께 입양된 형제는 두 달 만에 친부모 찾아
"한국 정부, 입양기록 완전 제공 제도 마련을"

편집자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958년부터 2020년까지 해외로 입양된 한국 아동은 17만 명이 넘는다. 해외 입양이 집중됐던 1970, 80년대에 모국을 떠났던 이들이 이제 30, 40대 성인이 되면서 친생부모를 찾고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5월 11일 입양의 날, 한국을 찾아온 두 입양인을 만났다.

덴마크 변호사 홍민씨. 홍씨는 1974년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덴마크로 입양됐다.

덴마크 변호사 홍민씨. 홍씨는 1974년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덴마크로 입양됐다.

"우리 삼남매는 덴마크, 필리핀, 한국 출신 입양인입니다. 셋 중 친부모님을 찾지 못한 건 저뿐입니다. 제가 논산역 근처 병원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아는 데에만 11년이 걸렸어요."

이달 4일 서울 종로구 해외입양인 쉼터 '뿌리의 집'에서 만난 피터 뭴러(한국명 홍민·48)씨는 "나의 친부모 찾기 여정은 12년째 진행 중"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홍씨는 생후 6개월이던 1974년 9월 15일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덴마크로 입양됐다.

홍씨가 친부모에 대한 기록을 찾기로 결심한 것은 딸들이 태어나면서다. 홍씨는 세 딸(10세·6세·4세)의 아버지다. 유럽인 사이에서 한국인 외모로 살아가야 할 아이들에게 정체성을 찾아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크면서 "아빠는 왜 할머니랑 다르게 생겼어?" "할머니는 아빠의 가짜 엄마야?" 같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첫째 딸이 학교 친구들이 자신을 '갈색'으로 그린다며 울며 돌아오는 일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홍씨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아빠는 한국에서 덴마크로 입양됐고 친부모님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뿐이었다.

입양기록 단 3장… 요청할 때마다 내용 달라져

홍민씨가 홀트아동복지회로부터 받은 입양기록 일부.

홍민씨가 홀트아동복지회로부터 받은 입양기록 일부.

그러나 친부모 찾기가 이토록 힘들 줄은 몰랐다. 홍씨가 2011년 홀트로부터 처음 받은 입양기록은 겨우 3장짜리였다. 생일, 성별, 건강상태, 그리고 '서울의 길거리에서 태어났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1970년대 한국에서 길에서 태어났을 리가 없다는 생각으로 홀트에 두 번째로 연락하자 이번엔 '대전의 경찰서에서 발견됐다'는 전혀 다른 정보가 돌아왔다. 2020년 세 번째로 기록을 요청하고서야 '논산의 병원에서 태어났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엄마가 어린 미혼모였고 양육을 포기했다는 내용도 기록에 있었다.

홍씨는 "내가 만난 입양인 대부분은 나처럼 처음 얻었던 정보와 나중에 얻은 정보가 전혀 달라지는 경험을 한다"고 말했다. 해외 입양이 한창이던 시절에 국내 입양기관에선 '길에 버려진 채 발견됐다'는 식으로 입양서류를 꾸며 번거로운 친생자 관계를 정리하는 게 관행처럼 이뤄졌다고 한다. 그런 가짜 기록과 진짜 기록이 뒤섞여 있다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입양인들은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지난달 29일, 입양 후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홍씨는 일주일간의 짧은 일정을 쪼개 이튿날 논산역을 찾았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린 엄마가 논산역에 당도한 기차에서 내려 병원으로 걸어갔을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뿐이었다. 덴마크 입양인 한분영 한국외대 교수의 도움을 받아, 홍씨 출생 당시에도 있었던 논산역 인근 산부인과 3곳을 찾았지만 당시 의사가 모두 세상을 떠난 데다 출생기록도 남아있지 않았다.

"입양기록이 입양기관 자산? 당사자 개인정보"

홍씨의 양부모는 세 아이를 입양해 키웠다. 필리핀 출신인 홍씨 누나, 덴마크 국내에서 입양된 남동생은 모두 친부모를 찾았다. 동생의 경우 2개월도 채 걸리지 않았다. 친부모 정보가 입양서류에 정확히 기재돼 있었던 덕분이다. 동생은 서류에 있는 이름을 주 아카이브에서 검색해 친부모 정보를 받은 뒤 친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만났다. 12년째 정확한 입양기록을 찾아 헤매면서 "한국 아닌 다른 나라에서 입양됐다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했다"는 홍씨와 대조적이다.

덴마크에서 검사 출신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홍씨는 "한국에선 입양기록을 입양기관 자산이라고 생각하지만, 덴마크에선 입양인 기록을 당사자의 개인정보로 다룬다"고 강조했다. 덴마크에서 이런 방식이 가능한 것은 태어나기 전부터 친부모 정보를 기록하는 제도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홍씨 또한 세 딸이 태어날 때마다 병원 진료 단계부터 사회보장번호가 부여되고 부모 이름이 함께 기록됐다고 한다.

"입양인이 온전한 기록 받을 수 있어야"

홍씨는 한인 입양인들이 본인 입양기록을 아무 제약 없이 받을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그가 9,000명가량으로 추산되는 덴마크 한인 입양인을 대상으로 정확한 입양기록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증거 수집'에 나선 이유다. "우리는 화를 내려는 게 아닙니다. 한국 입양기관들은 입양인이 자기 기록을 찾으면 기관 자산으로 여기고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입양인에게 입양기록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증명하고 한국에 공유하려고 합니다."

홍씨는 나아가 한국 정부나 국회 차원에서 입양기록이 폐기되거나 숨겨지지 않고 입양인에게 제공될 수 있도록 제도적 해법을 마련해주길 바라고 있다. 그런 점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빠짐없이 아동복지망에 편입되도록 하는 '출생통보제' 법안과, 미혼모 등의 익명 출산을 보장해 아이 유기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또 다른 '기록 없는 입양아' 탄생 여지를 남기는 '보호출산제' 법안이 국회에 동시 계류 중인 고국 상황이 홍씨는 불만스럽다. 홍씨는 "한국은 굉장한 부국인데 왜 입양 환경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나"라며 "부모의 감정보다 아이의 권리가 더 중요하다. 덴마크라면 친부모가 누군지를 기록하는 일이 유기를 조장한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지적했다.

홍씨는 대부분 자녀를 둔 나이가 된 한인 입양인에게 입양기록을 찾는 일은 친부모를 찾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제가 하려는 일은 오로지 제 아이들을 위해서예요. 다른 외모의 사람들 속에 섞여 살아야 할 우리 아이들에게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갖는 건 성장 과정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인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도와줬으면 합니다."

원다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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