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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기생 학술지

입력
2022.05.10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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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9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동훈 법무장관 후보자는 딸의 학술지 논문 게재에 대해 “고등학생이 연습용으로 한 리포트 수준의 짧은 글”이라며 “입시에 사용된 사실이 없고, 사용할 계획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후보자 딸이 게재한 학술지는 제대로 된 심사 없이 돈만 내면 게재할 수 있는 ‘약탈적 학술지’로 학문 생태계를 교란하는 행위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계기로 학계에서만 알려졌던 약탈적 학술지의 폐해가 공론화되는 모습이다.

□ 약탈적 학술지는 미국 콜로라도대 교수인 제프리 빌이 2010년대 들어 논문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투고료를 받아 이익을 챙기는 학술지와 출판사를 폭로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진 개념이다.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을 내세운 ‘오픈 액세스 운동’의 취지를 악용해 무료 공개를 위한 출판비용 명목으로 연구자를 약탈하는 행태를 고발한 것이다. 순진한 연구자들이 이런 유사 학술지에 속는 경우가 있지만 일부 연구자들은 공생 관계도 맺었다. 유사 학술지라는 것을 알고도 논문 실적을 올리는 용도로 활용된 것이다. 제프리 빌은 이후에 ‘약탈적 학술지’ 개념에 더해서 이를 ‘기생적 학술지’라고 불렀다.

□ 한 후보자 딸이 논문을 게재한 학술지는 제프리 빌이 더 엄밀히 개념화한 용어로 보면 약탈적 학술지가 아니라 기생적 학술지에 걸맞다. 한 후보자 딸이 투고료를 약탈당한 게 아니라 입시용 스펙 쌓기를 위해 공생 관계를 맺었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이 논문이 당장 입시 용도로 활용되지 않았다고 하나 이런 식의 논문 게재가 국제고 학생들의 일반적 행태라면 더 심각한 문제다. 한국 입시 사회가 어린 학생들의 연구 윤리를 마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 고위 공직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음해성 신상 털기라는 비판이 많았지만, 점점 더 계층 격차가 심화하는 한국 사회에서 상류층의 탈법과 편법을 공론화하는 역할을 해왔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통하는 각종 편법 증여와 탈세 수법, 교묘한 전관예우 방식, 허위와 과장으로 점철된 스펙 쌓기 등 일그러진 면모의 일단이 그나마 드러난 곳이 청문회였다.

송용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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