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군 안평면, 6.25 전쟁 후 경로당 없어
안평면장과 운람사 주지 스님 의기투합
"제대로 된 경로당을 주민 품에 안겨 드리겠다"
경북 의성은 단연 초고령 사회다.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점유율이 7%를 넘으면 고령화 사회, 14%가 넘으면 고령 사회, 20%를 넘게 되면 초고령 사회라 불리지만 의성군은 2022년 4월 기준 43.5%로 전국 최고권이다. 그 가운데 의성 안평면 신안 2리는 65세 이상 점유율이 55.6%로 단연 높다. 그렇기 때문에 경북 의성처럼 초고령 사회로 접어든 지역에서 경로당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특히 의성은 귀농 귀촌 및 고령자 복지 정책에서 최근 몇 년간 우수한 성과를 거두어 주민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곳이다. 당연히 마을에 편의점은 없어도 경로당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의성군에서도 40년 이상 풀지 못한 경로당 난제를 최근 조계종과 지역 리더 한 명이 해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안평면(安平)은 이름 그대로 안전하고 평안한 고을. 경북에서도 어르신들이 살기 좋은 곳으로 이름난 곳이지만 안평면 신안 2리에는 6.25 전쟁 이후 지금까지 경로당이 존재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곳에는 경로당이 없었을까?
의성 하면 떠오르는 것은 마늘과 동계 스포츠 종목 컬링의 팀 킴(Team Kim)이다. 의성군 18개 읍·면 가운데 하나인 안평면 경우 대표 선수가 사찰 운람사(雲嵐寺). 천등산 등줄기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가 마치 구름 같아 보인다는 것이 그 이름의 유래다. 의성의 대표 사찰인 조계종 16교구 본사 고운사 관할 사찰이다.
조계종이 안평면의 40년 숙원 사업을 해결한 연원은 무엇일까? 1970년 말까지 새마을 운동은 전국적으로 활기차게 진행된 국가 프로젝트였다.
이 운동으로 삼천리 강산이 역동적으로 변화해 가던 시절, 안평면에는 새마을 운동에 사용하던 도구 및 농기구 그리고 양곡 등을 보관할 창고가 필요했다,
마을 창고를 건립하려면 당연히 필요한 것이 부지. 마을 중앙에 사용하지 않고 있던 공터는 주민 모두가 원하던 장소였다. 하지만 이곳은 조계종 소유였다.
당시 조계종 측은 마을 주민의 간곡한 부탁을 마다하지 않고, 부지는 물론이고 양곡 저장용 건물 앞 공간까지 총 250여 평을 주민에게 제공했다. 좋은 위치에 꼭 필요한 공간이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위치가 너무 좋았던 것이 나중에 마을 주민들의 발목을 잡게 될 줄은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다.
1980년에 접어들면서 전국적으로 각 자치단체에서 앞 다투어 경로당 건립되기 시작했다. 주민들의 편의 공간과 소통의 장으로 사랑받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안평면 신안 2리 조그만 이곳 시골 마을에 꼭 필요한 위치에는 이미 양곡 창고가 들어서 있고, 그 옆에는 논과 밭 과수원들이 자리를 차지한 상황.
얼마 후 양곡창고가 리 모델링을 거쳐 경로당으로 둔갑하게 된다. 그렇다. 의성 안평 신안 2리에는 1980년 초반부터 명목상으로 경로당이 존재는 한 셈이다. 하지만, 양곡 창고로 지어진 건물에 경로당이란 명패를 부쳐, 내부 인테리어를 했지만 그 기능은 문제가 꽤나 있었다. 마을 주민 잔치는 물론 경로당을 찾는 어르신들의 식사 준비 공간조차 마땅찮았다. 80대 어르신들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가려면 맨 먼저 30㎝ 높이의 장애물을 넘어야 했다. 지팡이를 짚고 이곳을 하루에도 몇 번씩 넘나들 때마다 깊은 심호흡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내부에는 2개의 방과 하나의 보일러 공간이 있다. 이들 공간 사이에도 역시 25㎝ 높이의 장벽이 존재한다, 어르신들께는 생활하기에 결코 쉽지 않는 공간이었다. 그동안 이런 불편 상황을 알면서도 안평면이 모른 척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지나간 전임 면장들도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은 했으나 풀 수 없는 과제가 있었다. 바로 경로당으로 쓰이는 양곡 창고의 부지 탓 때문이었다. 조계종 소유 부지는 조계종 본사 총무원의 최종 심의를 거쳐야 양도할 수 있으며 2000년 이후 조계종은 특별한 사유가 아닌 이상 토지 처분은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첫 번째 해결의 실마리는 2009년 운람사 주지 스님으로 온 등오(65) 스님이 마련했다. 스님은 사찰 신도, 마을 주민들은 물론이고 지나다 우연히 들른 이들에게도 정성을 담아 마음을 전달했다. 세속인들과의 소통에 지극정성인 탓에 "운람사에 오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온 사람은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부임 당시 신도 80여명이 지금은 700여명이 넘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두 번째 실마리는 2021년 부임한 전문호(56) 안평면장이다. 전 면장은 의성군청 복지과장을 역임했다. 복지과장을 하면서 쌓은 행정 능력과 인맥, 타고난 성실성, 적극성이 이곳에서 빛을 발하게 되었다.
전 면장은 부임 후 제일 먼저 주민들이 무엇을 가장 원하는지 파악에 나섰다. 제일 먼저 밖으로 표출된 것이 마을 숙원 사업 즉 경로당 건립이었다. 주민 의견을 수렴한 후 그는 바로 움직였다. 조계종 소유지인 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운람사 등오 스님을 찾아갔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전 면장을 맞은 등오 주지 스님은 인자한 미소와 함께 "이제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라는 말을 해왔다. 평소 주민들과 소통하던 스님은 잊을 만하면 반복돼 나오던 경로당 안건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등오 스님은 "상위 사찰인 의성 고운사 등운(64) 주지 스님에게 연락을 넣어 둘 터이니, 고운사를 찾아 이야기해 보십시오"라고 길을 일러 주었다. 그렇게 해서 찾아간 조계종 16교구 본사 고운사.
고운사 등운 주지 스님 역시 화통했다. "가치 있는 일입니다. 당연히 저희가 도울 수 있는 일은 돕겠습니다"며 최종 승인 권한이 있는 조계종 본사 총무원에 건의, 일사천리로 마무리 지었다.
흐뭇한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고운사 등운 주지 스님은 조계사 총무원으로부터 부지 문제해결의 확답을 받고 의성군 관계자를 찾았다. "마을 주민들을 도울 수 있게 해주어 도리어 감사하다"며 "부지 문제를 해결할 테니 의성군이 제대로 된 경로당 건립을 위해 힘써 달라"고 당부했다. 의성군 관계자도 "마을의 숙원 사업이었던 난제를 풀어주어 감사하며, 늦은 만큼 제대로 된 경로당을 건립, 주민들 품에 안겨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전문호 안평면장은 "앞으로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고령화 현상은 더욱 가속화 될지도 모른다. 향후에는 장년층이 노년층을 보살피는 것이 아닌, 노 노 케어(노인이 노인을 보살피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경로당은 마을 어른들께서 평상시 시간을 보내고 여가 활동을 하는 것은 물론 마을 복지 회관과 노인 주택 역할도 겸할 수 있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전 면장은 "숙원이던 경로당 문제를 해결한 것은 조계종의 배려 덕분이다. 또한 첫 실마리를 풀어준 운람사 등오 주지 스님의 애민심에 큰 감사를 드린다"고 덧붙였다. 또한, 운람사 등오 주지스님은 "이러한 보람과 가치 있는 일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에 도리어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신도든 아니든 마을 주민들은 모두 운람사의 가족과 다름없다. 세상만사 관계 속에서 모든 것이 만들어지며 관계 속에는 너와 내가 없고 오직 우리라는 하나만 존재한다"고 미소 지었다.
이제 남은 것은 경로당 신축에 전폭적인 지지를 해준 의성군으로 바턴이 넘어갔다. 이 역시 잘 마무리될 것으로 마을 주민 및 모든 관계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신규 경로당은 2022년 5월 말 시공, 11월 중 준공 예정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