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이 세 번째 찾아왔을 때, 친구는 긴 휴가를 내고 내게 말했다.
"요즘은 노인들을 보며 사는 법을 배워."
"어떻게?"
"뭐든지 천천히 해. 일어나는 것도, 앉는 것도, 걷는 것도. 그런 속도 조절이 필요해. 빨리 달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끝까지 달리는 게 중요한 거니까."
그 친구를 쫓아 러닝클럽에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초보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지친 줄 모르고 무조건 빨리 달리는 것. 나는 가장 먼저 지쳤고, 결국 완주를 할 수 없었다. 달리기만 그럴까?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오늘을 태워 내일을 위해 쓴다. 인생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고, 일을 마치면 완전히 지쳤다고 생각한다. 무기력하고 방어적이 되고, 짜증이 많아지고, 기억력이 감퇴된다. 번아웃 된 인물이 궁금하다면 현실적인 드라마로 입소문을 타고 있는 JTBC '나의 해방일지'의 미정을 보면 된다. 드라마에서 미정은 혼자 중얼거린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고, 긴긴 시간 이렇게 보내다가 말라 죽을 것 같아요."
"그냥 지쳤어요. 모든 관계가 노동이에요. 눈 뜨고 있는 모든 시간이 노동이에요."
미정을 보며 우리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돈 버는 일은 힘들지. 누가 일을 좋아서 하나. 힘들어도 꾹 참고 하는 거지. 드라마에서 미정은 본인의 일을 너무나도 사랑해 일에 자신의 혼을 담는 인물로 나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은 그냥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만 번아웃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직장을 자아실현의 장으로 여기는 사람, 돈이 아니라 업이 좋아서 일하는 사람, 그러니까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에게도 번아웃이 온다. 일이 곧 나의 삶이고, 결과물이 곧 나이기 때문에 이들은 스스로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한병철은 '폭력의 위상학'에서 자기 착취는 자유의 감정과 함께 이루어지기 때문에 타자 착취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며 더 많은 성과를 가져온다고 말한다. 성과 주체는 스스로 불타 버릴 때까지 스스로를 착취한다. 내가 사랑하는 일이니까라고 중얼거리며 나는 나의 주인이자 노예가 되어 스스로를 가혹하게 몰아붙인다. 우리는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번아웃에 빠질 수 있다.
번아웃에 걸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번아웃에 대한 책을 쓴 박종석 교수는 '우린, 조금 지쳤다'에서 번아웃에 빠진 사람들에게 "문밖으로 한 발만 내딛어 봐"라고 말한다. 생각하는 것조차 귀찮을 정도로 이미 소진된 사람에게 몸을 움직이라는 조언은 어렵게 느껴지지만, 저자는 번아웃 상태에서는 작은 성취를 통해 스스로에게 성공 경험을 부여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나의 해방일지'에서 자신을 추앙하라고 권하는 미정에게 구씨는 묻는다. 추앙하다 보면 다른 사람이 되는 게 확실하냐고. 미정은 이렇게 답한다.
"한 번도 안 해봤을 거 아니에요. 난 한 번도 안 해봤던 걸 하고 나면 그 전하고는 다른 사람이 돼 있던데."
나와 동료들이 만드는 잡지 '딴짓'은 밥벌이에 매몰된 사람에게 스스로를 위한 다른 활동을 해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축구공을 차보라고, 그림을 그려보라고, 여행을 떠나보라고 부추긴다. 번아웃에 걸린 당신에게, 휴식과 함께 딴짓을 권하고 싶다. 당신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딴짓은 무엇일까? 그것을 하고 나면 당신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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